영화관의 입구를 들어섰을 때 "아 내가 극장에 왔구나!" 하고 실감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달콤한 '팝콘' 냄새입니다.
특히 한 여름날의 무더위에 피신하듯 들어선 극장가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온몸에 부딪쳐오는 향긋한 팝콘 냄새의 마중은 내가 오늘 좋은 곳에 왔음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그 누가 알았을까요?
행복하게 출발했던 영화가 충격적인 반전에 의해 비극으로 마무리되기도 하는 것처럼 영화관람의 행복을 돋우어 줄 것만 같던 스낵 가도 사실은 영화산업에 존재하는 커다란 모순이며 종종 관객을 비극으로 몰아가는 복선으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요.
사실 팝콘과 콜라는 극장과 어울리지 않는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팝콘과 콜라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공장소에서 먹기 최악인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팝콘은 경쾌한 씹는 소리와 함께 가볍고 놓치기 쉬워서 사방으로 날아다니고 통째로 바닥에 쏟는 것도 보통이죠.
콜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동시다발적인 트림을 유발하고 빨대를 이용할 때 나는 꽈르르~ 하는 소음은 덤입니다.
놀라운 점은 극장이라는 시스템이 이 소란스러운 음식을 상영관 내에서 먹을 수 있는 대표 스낵으로 지정했다는 것과 우리는 어느덧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에티켓은 무너지고 매출은 오르고
역사적으로 되돌아보면 사실 팝콘은 극장 안에서 금지되었던 음식이라고 합니다. 영화 상영관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기존의 연극 관람이나 오페라 관람의 연장선으로 여겨져있었고 에티켓 또한 그것들에서 계승되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연극과 오페라에 비해 다소 무게감이 적은 영화라는 콘텐츠에 기업들은 '스낵바'라는 추가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는 하나의 문화를 정착시키는데 성공합니다.
기업 이득을 취하기 위해 사실상 스스로 공공 에티켓을 무너트리고 그로 인해 발생되는 불쾌함은 고스란히 관객의 몫으로 돌리기로 한 것이죠.
즐거움에 대한 비용으로 불쾌함을 지불
팝콘과 콜라가 극장가의 스낵 문화를 탄탄하게 다져놓더니 이제 후배들을 양성하기 시작합니다.
치킨, 햄버거, 핫도그 등의 등장이죠.
과거엔 극장 내에서 먹을 엄두도 못 냈던 음식들이지만 말 그대로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쉬운 법이죠. 이제는 극장 자체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아예 여러 가지 메뉴를 세트로 주문해서 거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좌석에 음식을 올려놓을 수 있는 테이블까지 설치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제 극장 안은 푸짐한 먹거리들의 향기와 쩝쩝거림으로 가득해졌습니다.
누군가의 즐거움이 더욱 커진 만큼 또 다른 누군가가 지불해야 할 불쾌함의 비용 역시 더 커지게 된 셈이죠.
그름에 길들여지면 옳음이 된다
불과 3~40년 전쯤의 한국에선 흡연자들에게 매우 관대했었습니다.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음식점을 비롯한 각종 공공장소에서 눈치 볼 것 없이 편안하게 흡연을 할 수가 있었죠.
눈치는커녕 어딜 가나 재떨이를 제공하는 것이 예의였으며, 자동차에도 기본적으로 재떨이가 장착되어 있었으니까요.
극장 또한 담배를 피우며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좌석에 재떨이가 구비되어 있었는데 지금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꽤나 충격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어른다운 일이고, 공경해야 할 어른이 어디서 담배를 피우든 참고 존중해야 했었으니까요.
이 과거 한국의 흡연 문화는 어떠한 문화가 인프라를 형성하고 자리를 잡으면 그름도 옳음처럼 길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인가?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처럼 더 큰 편의와 즐거움의 제공이라는 명목 아래 극장 본연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은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인간에겐 기본적으로 '오감'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인간은 이 5가지 감각을 통해 다양한 불편을 감지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서로 조심하지 않으면 5가지 감각 중 하나가 고통을 받기 십상이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는 '집중해서 영화를 감상하기'라는 이곳에 온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게 되겠죠.
이런 점들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클래식, 오페라, 뮤지컬 등의 공연장에서도 관람 도중에 닭 다리를 뜯지 못할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물론 극장 문화의 하나로서 깊게 뿌리내린 스낵바는 이제 극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극장을 갔는데 팝콘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아마 서운할지도 모르죠.
눈의 즐거움과 입의 즐거움을 합치면 더 큰 즐거움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극장가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의 종류가 다양하게 늘어갈수록 영화라는 본연의 목적을 세울 자리가 줄어드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타성에 푹 잠기기 전에 우리는 극장에 왜 모였는지를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