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2)_psychological safety
육군 소위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선배들에게 혼나고 깨지는 게 일상이었다. 나는 그때 윗사람이 원하는 인재상이 곧 아랫사람에게 엄한 중간관리자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른바 신임 소위의 패기로 사병들을 더 휘어잡으라고, 잘 관리하고 있음에도 더 엄하게 다루라는 압력을 받았다.
지금의 나라면 보는 앞에서만 적당히 하는 척할 수 있을 텐데 그때는 그런 요령조차 없었다. 그래서 중간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많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그런데 2년 후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나는, 회사에서도 똑같이 엄격하고 가혹한 중간관리자가 인정받는 모습을 보고 사뭇 놀라게 되었다.
엄격한 리더십은 명확한 장점이 있기에, 군대 지휘관이 부하 장교에게서 그러한 모습을 기대할 것이다. 강력한 통제는 질서 유지에 매우 효율적이다. top-down 식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조직의 경우, 쓸데없이 여러 의견이 나오는 것보다는 한 몸이 되어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가혹한 리더는 구성원들의 신망을 잃을 수 있다. 그래서 지휘관은 이 페르소나를 직속 부하에게 전가한다. 강력한 통제와 규율을 강조하면서도, 지휘관은 인자함의 덕목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지휘관들은 양면성을 가진다. 병사들에겐 한없이 인자하고, 직속 부하들에게는 한없이 가혹하다. 신망을 잃지 않으면서도, 명령에는 일사불란한 조직을 만드는 비결이다.
직장에서의 상사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팀 內 차석이 팀원들을 대신 엄격하게 관리해 주면, 팀장은 많은 일이 편해진다. 팀원들이 윗사람의 지시사항에 군말 않고 따르기 때문이다. 알아서 벌벌 떨고 시키는 일을 해오니 내가 나쁜 놈이 되지 않아도 된다.
2016년, 구글은 매우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구글 조직에서 팀 성과를 극대화하는 요인을 파악하려는, 이른바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Project Aristotle)에 대한 결론이었다. 연구에서는 성과 극대화를 위한 아래의 5가지 요인 中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연구했다. 아래의 다섯 가지 요인 중 조직 성과 향상을 위해 어떤 요인이 가장 중요할지, 이 글을 읽는 우리도 한 번 유추해 보자.
1) Impact (영향력) 내 업무는 팀과 조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2) Meaning (의미) 내 업무는 나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와 목표와 연관되어 있다
3) Structure and Clarity (구조와 명확성) 팀이 명확한 역할, 목표를 가지고 있다
4) Dependability (신뢰성) 각 팀원들이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수행할 것이라는 믿음
5) Psychological Safety (심리적 안정감) 실수하더라도 비난받지 않는다는 안정감
구글은 팀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분석하기 위해 180개 이상의 팀을 대상으로 구성원들의 협력 방식, 의사소통 패턴, 개인적인 경험 등을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진은 팀 성과가 높은 팀과 그렇지 않은 팀을 비교하여 어떤 요인이 고성과 팀을 만드는 데 중요한지 파악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상과 정반대였다. Psychological Safety(심리적 안정감)이 조직 성과에 있어 가장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음이 발견된 것이다. 심리적 안정감이 확보되지 않으면, 다른 요인들이 있어도 팀 성과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는 기존의 통념에 반대되는 결과다. 기존의 조직관리 전문가들은, 최근 세대가 일의 의미와 영향력을 중시하며, 명확한 업무분장을 가장 선호한다고 이야기해 왔다. 반면 심리적 안정감이나 신뢰성 등은 크게 주목받지 않았다. 하지만 연구 결과 오히려 이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후 구글은 팀원과의 심층 인터뷰, 설문 조사를 통해 각 팀의 동료들이 느끼는 심리적 안전감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얻었다. 이를 통해 도출된 psychological safety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Psychological safety is a shared belief that team members feel safe to take chances without being marginalized or punished."
*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하더라도(feel safe to take chances) 무시당하거나 혼나지 않을 것이라는(without being marginalized or punished) 공통의 믿음 (shared belief)이다.
Amy Edmondson이 정의한 것 또한 이와 유사하다.
“A belief that one will not be punished or humiliated for speaking up with ideas, questions, concerns, or mistakes”
* 아이디어, 질문, 걱정, 실수를 이야기해도 혼나거나 무안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구성원들이 회의시간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조직이 있다. 윗사람의 분노에 찬 성화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인 몇 마디만 던질 뿐, 다시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 그런 현상의 원인은 십중팔구 부서장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 모습은 보나 마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것도 아이디어라고 내냐고 무안을 주거나, 발제한 사람이 일을 떠맡는 결자해지 문화가 강하거나.
부서장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모든 일의 최종 책임자는 본인인데, 소극적인 팀원들이 이해가 안 되고 답답할 것이다. 어차피 팀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생각이 없다면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일단 참고 들어주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는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회의의 맥락과 전혀 관계없는 아이디어나, 경영진 의중과 다른 의견, 실무 이해도 없이 던지는 아이디어는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것이다.
직장에서의 생존을 위해 정보가 매우 중요하지만, 부서장이라면 정보 못지않게 구성원들의 정서를 살펴야 한다. 정보로만 이루어진 대화란 없다. 최근 생성형 AI도 정서에 공감하는 기능을 강조하지 않는가. 직위가 낮고 연차가 짧은 팀원들은 조직 내에서 약자의 포지션이고, 윗사람의 차가운 한 두 마디에 의욕을 잃고(정서↓) 입을 닫기(정보↓) 쉽다.
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주 쓰는 몇 가지 표현을 수정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대신 ‘이런 접근도 가능하지 않을까?’
‘뭔 말인지는 알겠는데~’ 대신 ‘정말 동의해. 추가로 이야기하자면~’
‘어떻게 해결할 거야?’ 대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어색하더라도 이런 식의 간단한 표현 수정 만으로도 팀원들은 조직장에게서 보호받고 있음을 느끼고,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개진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과 달리, 가혹/엄격한 통제는 오히려 구성원들을 긴장시키고 실수를 유발한다. 하지만 조직장이 안전망(safety net)을 마련해 주면 오히려 팀원들의 사기는 올라가고 실수가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전편에서 이야기했듯, 좁은 다리 위에 안전그물을 설치하면 오히려 사람들은 떨어지지 않는다. 떨어져도 괜찮다는 안정감은 사람들을 떨어지지 않게 만든다.
조직의 공로와 책임은 대부분 부서장의 몫이다. 하지만 조직을 이끌어감에 있어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조직장이 아닌 팀원들에게서 나온다. 입을 닫고, 생각을 멈추고, 시키는 대로만 일하는 팀원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psychological safety의 정의와 중요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