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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코집사 Aug 17. 2024

나의 직장생활 이야기(10)

인사평가(2)

기업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인사평가 tool은 단연코 KPI이다. KPI는 Key Performance Indicators의 약어로, 개인의 성과를 대표할만한 핵심 정량지표를 선정해서 전년비 신장률 혹은 목표비 달성률을 측정하여 점수화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영업부서는 매출과 이익목표를 설정할 것이고, 생산부서의 경우 품질지수, 수율, 설비 가동률, 온라인 마케팅 부서의 경우 트래픽 증가율이나 전환율 등이 될 것이다. 


KPI의 특징은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지표를 통해 성과를 측정하므로 객관적인 평가의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수치화된 결과만큼 납득하기 쉬운 것은 없다. 매출 100억을 달성한 직원이 매출 80억을 달성한 직원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일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출처 : flex blog


이를 입시제도에 빗대자면 수능 점수만으로 줄 세우는 정시 제도와 유사해 보인다. KPI와 수능의 공통점은 정량화된 단일 지표를 운영한다는 점이다. 피평가자가 동일한 시험을 치르고 동일한 지표에 따라 평가받으므로 투명성과 공정성이 자연스럽게 확보된다. 


반대로 단일 지표에 의존하다 보니 지표 외의 중요한 요소들이 평가에서 배제된다는 한계점이 있다. 학생에게는 시험점수 외에도 장기적인 잠재력이나 창의성, 인성, 대인관계 능력 등이 중요한 요소이듯, 직장인에게도 커뮤니케이션 능력, 문제 해결 능력, 조직문화 적응력, 리더십 등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정성적 요소들을 평가할 방법이 없다 보니 끊임없이 여러 대안들이 연구되고 제안되는 것이다.


 ※ 한 가지 전제하여야 할 것은 기업 인사평가는 작성한 성과지수가 그대로 반영되지 않고 ‘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되므로, 수능과 완전히 동일한 방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정량화된 평가지표’라는 큰 틀에서의 유사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기존 KPI를 보완한 평가제도 예시로는 201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구글의 OKR, 그리고 다면평가 제도를 들 수 있다. 먼저 OKR은 Objectives and Key Results의 약어로 조직의 목표(Objectives)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성과(Key Results)를 설정하여, 직원들이 조직의 목표와 일치(Aligned)된 방향으로 업무를 수행하도록 독려하는 방법론이다. 이를 위해 잦은 커뮤니케이션인 CFR(Communication, Feedback, Recognition)을 수시로 수행해야 하며, 목표는 가급적 도전적이고 측정 가능한 것으로 수립하도록 권장된다.



우리 회사도 몇 년 전부터 이를 전 계열사에 도입하여 평가 tool로 활용하고 있다. 나는 당시 담당 실무자였고,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OKR의 도입을 내심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내가 반대했던 이유는 OKR을 평가・보상과 연계하는 것은 본래의 OKR의 철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OKR은 달성하기 어려운 도전적인 목표를 수립하도록 요구하므로, 직원이 모든 목표를 완벽히 달성하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결과가 아니다. 하지만 OKR이 평가・보상과 연계되는 순간, 직원들은 비교적 달성하기 쉬운 목표를 수립해서 100%의 달성률을 추구할 것이다. 이는 OKR의 본래 취지인 도전과 혁신을 저해한다. OKR은 성과 평가 도구로서의 활용보다는 목표 설정과 달성 과정에 중점을 둔 관리 도구로 활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article에서 OKR을 당당히 ‘평가제도’로 소개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회사생활이 다 그러하듯, 개인의 신념과 무관하게 결국 OKR제도를 평가 tool로 안착시켰다. 당시엔 보고서를 통과시킬 새로운 키워드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철학을 운운하기에는 많은 정치적인 요소가 얽혀 있었기에…


두 번째로 다면평가는 평가자를 기존 관리자(팀장, 임원)에서 상사, 동료, 부하직원 및 유관부서 등 이해관계자까지 확대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다면평가가 핫해진 배경에는 특유의 top-down 식 의사결정 구조와 경직된 조직문화가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하향식 평가만 존재하던 시기의 중간관리자들은 평가자인 윗사람에게만 신경을 집중하고 후배 직원들을 도구처럼 부려대는 경향이 심했다. 심지어 부하직원들을 쥐 잡듯 잡으며 타이트하게 관리할수록 ‘일 잘하는 중간관리자’로 생각하는 문화가 있었다. (지금도 이런 생각을 가진 임원이 상당히 많다.) 이러한 직장 내 갑질로 인한 부작용이 심해지자, 관리자의 횡포에 대한 대안으로 360도 피드백, 즉 다면평가가 제시된 측면이 있다. 따라서 다면평가는 현재까지도 동료를 평가하는 기능보다는, 관리자를 견제하는 도구라는 인식이 강한 실정이다. 



평가 시즌 때마다 팀장, 임원급 관리자들이 토로하는 이야기가 있다. ‘다면평가’ 때문에 부하직원 눈치가 보여서 도무지 일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요즘 직원’들은 정당한 업무지시에도 왜 해야 하냐는 둥 이유를 묻기 일쑤이고, 실수한 내용에 대해 질책이라도 할라치면 ‘다면평가’를 무기로 휘둘러대니 관리 난이도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특히 그놈의 ‘MZ세대’들은 가진 역량에 비해 자기 효능감이 너무 높아 더욱 어렵다고 한다. 


이런 고충에 대해서는 일면 동의하나 사실과 다른 측면도 많다. 다면평가로 인해 고충을 토로하는 팀장이나 임원은 매번 정해져 있다. 고정적으로 점수가 낮은 사람은 자신을 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표현대로 ‘MZ세대’ 느낌이 물씬 나는 직원도 있겠지만, 여전히 다수의 직원은 합리적이다. 이 사람이 내게 하는 것이 정당한 업무지시인지 단순한 감정적 짜증 표출인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압박과 질책, 쥐어짜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구성원들의 심리적 안정감psychological safety 이 높은 조직 성과를 야기한다는 조사결과도 있지 않은가.(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뤄보려고 한다) 또한 자기 평가자에만 잘하고, 유관부서 협조가 안 되는 직원도 많은데, 이렇듯 조직 생산성에 악영향을 끼치는 직원들도 식별 가능하다. 따라서 일부 부작용이 있겠지만 다면평가는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인사평가에 민감한 이유는 보상(월급)과 승진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 특히 개발자 같은 직무는 직급이 올라가면 본인의 커리어패스를 선택할 수 있다. 본인의 선택에 따라 전문성 있는 실무자 track을 밟을 수도, 혹은 조직을 매니징 하는 관리자 track을 밟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사무직은 대부분 승진 시 관리자 role을 수행하게 된다.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어떤 직원에게 우수 평가를 부여해야 하는가? 그야 물론 훌륭한 성과를 거둔 직원이다. 그렇다면 어떤 직원을 승진시켜야 하는가? 마찬가지로 훌륭한 성과를 거둔 직원이라고 생각하는가? 내 생각에 이는 정답이 아니다. 특정 직위 이상으로 승진 시 갑자기 관리자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실무자로서의 필요 역량과 관리자로서의 중요 역량은 완전히 다르다. 승진은 우수한 실무자가 아닌 훌륭한 조직 관리 역량을 지닌 사람을 시켜야 한다. 



몇 년 전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라는 웹소설이 메가 히트를 쳤고 최근엔 웹툰으로도 연재되고 있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고 1부는 김 부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김 부장은 팀장이 되기 전, 매우 우수한 실무자였던 사람이다. 업무능력은 물론 야근, 주말근무, 접대골프 등도 빠지지 않고 누구보다 성실했던 직원이다. 그렇게 팀장이 된 김 부장에게 직속상관인 상무는 이런 조언을 한다.


“팀장은 리더야. 보고서 만드는 사람이 아니야. 보고서에는 팀원의 다양한 의견들이 담겨 있어야 해. 팀장이 전부 필터링해 버리면 그건 팀 보고서가 아니지. 리더는 자신이 돋보이기보다는 구성원들이 돋보이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는 사람이야. 팀원일 때는 우사인 볼트여도 상관없지만 팀장이 되면 히딩크 같은 감독이 되어야지.”


“자네도 알지? 내가 팀장 달기 전까지는 별로 인정 못 받았던 거. 팀원들이 나보다 체력도 좋고,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 내가 팀원들보다 나은 게 없더라고. 그래서 팀장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뭔지 알아? 팀원들 일하기 좋은 환경 만들어주는 거였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 때와 달라. 회사가 전부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여기에 올인하겠다는 마음도 없거든.”


“권위의식, 자존심 다 내려놓고 모르는 게 있으면 가르쳐 달라고 했어. 알고 있던 것도 확신이 없으면 찾아가서 가르쳐달라고 했고. 그러니까 신기하게 다들 열심히 알려주더라고. 자기들이 공부해서라도 도와주려고 해. 본인들이 공부하고 가르치기까지 하면 그 지식은 완전히 자기 게 되는 거잖아. 그러다 보면 업무 효율도 올라가고, 팀 실적도 좋아지고, 팀 고과도 잘 받고, 다들 회사 일에 재미 붙이고. 그런 게 선순환이지.”


보통의 경우 우수한 인사평가를 받은 순서대로 승진하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매우 합리적이고 공정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실무자로서 우수했던 사람이 일찍 팀장이 된다. 팀장이 되어 팀원들을 돌아보니 업무 완성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코칭도 하고 힌트도 주었지만,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본인이 나서서 주도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마이크로 매니징이 시작되고 어떤 권한도 위임받지 못한 팀원들은 팀장만 바라보게 된다. 유능했던 김 대리, 김 과장, 김 차장이 승진하면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어떤 대안이 있을까? 과거 우리 회사는 보상 평가와 승진 평가를 구분해서 운영했다. 업무 성과가 우수한 직원은 보상 평가를 통해 높은 연봉을 지급하고, 관리 역량을 갖춘 직원은 승진 평가를 통해 승진 기회를 제공하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애초에 승진이 가장 높은 연봉 상승 기회였으므로, 직원 인식상 보상 평가의 효용성이 그리 높지 않았다. 관리자들은 승진 대상자들에게 ‘승진 평가’를 몰아주고, 승진 대상이 아닌 저 연차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보상 평가’를 지급하는 경향이 생겼다. 결국 제도는 폐지되었다. 현시점에서는 교육을 통해 관리자 role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수립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으로 보인다. 

김 빠지는 결론이지만, 제도를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번 글은 ‘평가제도’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자는 취지였기에, 이상적인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는 추후에 다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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