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이야기(3)_임원면접
1차 면접 후 의외의 합격 소식을 전해 듣고 내 마음은 복잡해졌다. 합격의 기쁨이 컸지만, 사실 그 회사는 내가 진심으로 가고 싶던 회사는 아니었다. 홈쇼핑이라니. 난 여느 또래들처럼 평생 홈쇼핑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예 TV를 거의 안 보고 살았다. 내 관심사는 잡지, 책 등의 텍 스트와 라디오 같은 청각 매체였다. 군대에서도 TV만 보는 사병들에게 책도 좀 가까이하라고 꼰대처럼 잔소리를 하곤 했었다. 그나마 보던 TV채널은 YTN, 연합뉴스, JTBC 뉴스룸. 아 마녀사냥은 열심히 봤구나...
하지만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 진짜 가고 싶던 기업이었던 P사와 S사는 이미 탈락한 상황이었다. 남은 회사 중 그나마 가장 큰 회사가 아닌가. 게다가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재수'를 해본 적이 없다. 대학도 한 번에 들어갔고, 휴학 한 번 없이 4년 만에 졸업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제대와 동시에 취업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사회에 뛰어들어야 한다. 남들보다 일찍 사회에 뛰어들어서, 경험의 양을 미리미리 확보해두어야 한다. 나는 아직 무언가를 판단할만한 경험치를 지니지 못했으니까. 어중간하게 휴학이나 취업준비로 시간을 낭비하며 허송세월하느니 정석대로 스텝을 밟고, 제 때 문을 열고, 무엇인가를 경험해 내면 그때 분명히 보이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판단에도 옳은 방향이었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삶의 원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주어진 일은 열심히 해내는, 재미없는 제도권 인간이다. 만약 입사 시기를 놓쳐 몇 개월쯤 시간이 뜨면, 아무런 경험과 역량 없이 주어지는 자유가 나를 성장시키기보다는 불안하게 만들고 방황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강박은 서울에 있는 기업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산에서 10대를 보낸 나는, 서울 생활에 대한 촌놈 특유의 이상한 로망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고등학교 때는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독서실과 학교만 오가며 생활했다. 유일한 낙은 밴드부실 그리고 교회가 전부였다. 그러다 주어진 20대의 자유에 눈이 번쩍 뜨였고 그게 스무살이라서 누린 것들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서울에 왔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것이라고 혼동했으리라. 4년간 대학 생활을 하면서 마주친 대부분의 것들이 내겐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취업한다면 을지로, 여의도, 테헤란로에서 그럴듯하게 입고 출근해보고 싶었다. 물론 언젠가는 고향 땅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 젊고 뭔가 해내야 할 일이 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일지 궁금했다.
이쯤 생각하니 오히려 잘된 일 같았다. 백화점이 망설여졌던 이유는 '주말출근'과 '순환배치로 인한 지방발령 risk' 두 가지였다. 하지만 홈쇼핑은 주말 고정출근도 없고, 사옥이 서울에만 있어 지방발령 risk도 없었다. 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 어머니 역시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입사를 결심했다.
임원면접 휴가를 허락받기 위해 대대장실에 들어갔다. 그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셨던 대대장님은 처음으로 '면접이 왜 이렇게 잦냐. 하하하’ 라며 꼽을 주셨다. 속으로 생각했다. '다행히 더 이상 갈 면접이 없으니까 안심하세요'라고. 다른 한 두 군데의 면접이 남아있었으나, 갈 마음이 없는 회사들이었다. 이제는 반드시 이 회사에 합격해야 했다.
규모가 작은 회사이거나, 임원이 유달리 열정적인 사람이거나 하지 않는 이상은, 신입 채용에 있어 임원 면접은 그다지 변별력을 가지지 않는다. 경력직 면접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신입 채용은 대부분 시스템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진 경력도 없고, 직무역량도 없고, 오로지 가능성으로 평가해야 하는 게 신입 채용이기 때문이다. 시스템대로 진행되는 채용을 하는데 임원들의 귀한 시간을 많이 뺏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대부분의 절차는 임원 면접 이전에 종료되고, 'A는 살리고 B는 떨어뜨릴 예정인데, 그래도 될지 직접 봐주세요' 정도의 의미로 임원 면접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면, 임원면접 이전에 당락에 대한 의사 결정을 완료하고 이를 확인받는 통과의례로서 임원면접이 기능하는 것이다. 물론 특정 임원의 벼락같은 통찰력으로 결과가 바뀌는 경우도 드물게 발생하기는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 사실을 몰랐기에, 잔뜩 긴장한 채 임원면접장으로 향했다. 면접관은 총 세 분. 그중 한 분은 나중에 사장까지 역임하실 분이었다. 나머지 두 분 또한 지금은 퇴임하신 까마득한 분들. 임원면접 특유의 뜬구름 잡는 듯한 하지만 짐짓 날카롭게 느껴지는 질문 몇 가지가 오갔다. 당시는 2014년도였고 온 대한민국을 큰 슬픔에 빠뜨렸던 선박 사고가 있었던 해였으므로, 그 사고와 관련된 개인의 의견을 묻는 질문도 있었다.(지금 생각하면 큰 의미는 없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난 질문마다 그럴듯하게 대답했던 것 같다. 면접장을 나오면서 합격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다 끝났다. 난 이 회사에 다니게 될 것이다. 남은 군생활 한 달 정도는 아름다운 이별과 새로운 커리어를 준비하는 기간으로 삼아야겠다 생각했다.
며칠 뒤, 예상대로 합격 통보가 주어졌다. 입사일은 7월 7일. 제대일이 6월 30일이니까, 내게는 단 일주일의 여유시간이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는 이를 숨막히게 여기겠지만 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나는 빼곡하고 잘 정리된 스프레드시트를 보면 안심이 되는 유형이다. 이보다 긴 여유기간이 내게 주어진들 뭘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짧은 인생동안 일주일 이상의 여유기간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상경했다. 대학시절 학기 중에는 틈틈이 홀로 사색하는 기간이 많았으나, 오히려 방학이면 각종 아르바이트 (대부분은 과외)와 ROTC 입영 훈련, 교회 해외봉사 참여 등 거의 여유시간이 없었다. 만약 취업에 실패했다면? 6월 말 제대 후 하반기 공채시즌까지 몇 개월이 비었겠지만 난 그 시간 동안 뭘 어떡할지 몰라 허둥댔을 것이다. 당시의 내게는 돈을 쓰고 어딘가에 놀러 간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난 남은 기간 동안 조용히 열어야 할 다음 문에 대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