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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코집사 Jul 14. 2024

말과 면접에 대한 단상

내가 겪은 면접에 대한 이야기


말에는 참 요상한 힘이 있다. 화자의 실제 삶이 어떠하든, 그의 지적 역량과 무관하게 그 언변이 그럴듯하면 마치 그것이 그 사람의 본질인 양 보이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아나운서의 경우, 작가 혹은 기자가 작성한 메시지를 정확한 음성과 감정으로 대신 읽어주는 것이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만으로 지적 수준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받는다. (나보다 훨씬 뛰어나신 그분들의 역할을 비하할 의도는 아니다. 내가 아는 가장 우수한 학교선배 중 하나도 현재 아나운서로 재직 중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보이고 들리는 것에 마음을 뺏기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사람을 판단하기에 언변과 외모처럼 효율적인 수단이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로 면접을 통해 지원자의 인상과 언변을 확인한다. 물론 취업면접은 숙련된 전문가들과 그들만의 전문성이 있는 분야고, 정리된 여러 전문적인 이론과 기법이 있다. 하지만 신입사원 면접의 본질은 회사와 지원자 간의 '합'을 확인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대체로 면접 시작 후 30초 ~ 1분 이내에 인상과 말투, 표현방법을 바탕으로 합격 여부에 대한 첫 판단이 이루어진다. (나머지 25분을 정말 합격시킬지를 검증하는 시간으로 활용한다) 


회사 입장에서도 이를 잘 알기에, 면접관 육성을 위해 기본교육 외에 다른 투자는 거의 하지 않는다유명한 STAR(Situation, Task, Action, Result) 기법이나 BEI(Behavioral Event Interview/행동기반면접) 등을 통해 지원자의 과거 행동을 파악한다고 한들, 그 지원자가 숙련된 거짓말을 하는 경우 이를 간파하기는 쉽지 않다. 꼬리질문을 통해 검증할 수 있다고 반박할 수도 있지만, 지원자는 많고 시간은 한정된 상황에서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경력이 아닌 신입 면접에서는 내용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취업을 열심히 준비한 20대 중후반의 삶의 컨텐츠는 들어보면 대부분 대동소이하다. 또한 면접 때 나오는 실수들도 대부분 비슷하다. 


준비한 답변을 써먹기 위해 묻는 질문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동문서답을 하거나, 

20대 중반의 대학생이 이뤄낸 성과라고 보기 어려운 과장된 경험을 이야기하거나, 

사회적 통념과 완전히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것 등이다.


연습 과정에서 이런 실수들만 피하고,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경험일지라도 과장하지 않고 진솔하게 이야기하며, 그 과정에 직장인이 좋아할 만한 두괄식 화법을 한 스푼 얹는다면 매우 훌륭한 답변이 될 것이다. 이 조건들을 갖추었는데도 탈락한다면, 면접 내용이 문제라기보다는 그 회사와 'fit'이 잘 맞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그놈의 'fit'은 어떻게 맞추냐고? 거기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른 회사의 면접관들이 어떤 지원자를 선호하는지는 나로서도 알기 어렵다. 다만 내가 겪은 좁은 세상에 대하여 이야기할 뿐이다.




상술했듯 아무리 우수한 지원자들이라 할지라도 그 경험의 양과 질은 대동소이하다. 대체로 이런 식이다.


"23년 6월부터 3개월간 00에서 진행한 00 프로젝트에 팀장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그때 기존 틀을 깨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 약 20% 매출 증진 경험이 있습니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블라블라블라..."


지원자의 경험을 묻는 질문에서, 최근 2~3년간 이 포맷과 상이하게 대답하는 지원자를 거의 보지 못했다. 포맷 자체만 보면 대단히 훌륭하지 않은가.


1. 경험 시점 및 본인의 role을 언급하여 객관성 확보 (보통 다들 팀장 했다고 한다)

2. 최종 성과를 객관적 수치로 두괄식 답변,

3. 과정을 포함한 경험의 세부내용 설명


대강 이런 틀이다. 유능한 직장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보고용 포맷과 상당히 유사하다. 문제는 보고받는 사람이 그날 하루에만 100여 건의 같은 보고를 받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비슷한 포맷의 대답을 50개쯤 들은 후면 듣는 사람의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아무리 양질의 경험일지라도.



면접관 입장에서 대학교 프로젝트 과제에서 목표했던 매출을 200% 달성했든 300% 달성했든, 외부 요인으로 인해 50%밖에 달성 못했든 대체 무슨 상관이겠는가. 오히려 인턴 신분임에도 기업의 특정 부문 매출을 30% 이상 신장시켰다는 식의 이야기는 거짓말로 느껴질 확률이 크다. 

즉, 중요한 건 경험의 양적 수치보다는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팀 분열로 인해 결국 프로젝트는 실패했지만, 인간관계과 리더십에 대한 000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직 대학생이라 대단한 성과는 이뤄본 적 없지만, 단 한 번의 지각 없이 00을 수행했습니다. 성과는 이러한 성실함을 바탕으로 피워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형태의 대답은 어떠한가? 매우 탁월한 성과로 보이지는 않지만 현실적이다. 고만고만한 대답 사이에서 누군가 이런 솔직한 대답을 한다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질 것 같다. 대단할 것 없는 대답이지만 이렇게 진솔하게 답변하는 지원자를 거의 보지 못했다. 무엇인가를 갖추고 갈고닦는 일은 면접장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영역이다. 면접장에 들어가는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려한 스펙과 과장된 경험이 아닌 차분하고 진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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