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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코집사 Jul 13. 2024

나의 직장생활 이야기(5)

입사 동기와 직장에서의 선후배의 의미

회사생활에서 같이 입사한 동기의 의미는 각별하다. 신입사원은 갓 전입온 이등병과 같아 회사생활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다. 비품 신청, 프린터 고장 의뢰 등 막내들이 도맡는 사소한 업무의 담당자는 누구인지, 그룹웨어·회사 ERP는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품의서 양식은 어떤 것을 참고해야 하는지, 하다 못해 내선전화 활용법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물어보며 적응해야 한다. (특히 요즘 세대들은 유선 전화기 활용 경험이 없어 더 어색해하는 것 같다.) 


물론 어느 정도 시스템을 갖춘 회사들은 대부분 신입사원 매뉴얼을 구비하고 있다. 하지만 매뉴얼이 늘 완벽하지 않다 보니 사람에게 물어봐야 할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OJT 멘토로 배정된 사수는 너무 바빠 보이고, 궁금한 내용은 너무 사소해서 물어보기 조심스럽고 눈치 보이니까... 이럴 때 동기 채팅방이 큰 힘을 발휘한다. 동기 30명 중 한 명 정도는 친절한 사수를 만나 꼼꼼한 지도를 받는 운 좋은 친구가 있기 마련이다. 그의 노하우가 동기 전체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내가 짐짝이 된 듯한 신입사원 시절, 동기간의 정보 교류와 감정적 위로가 없었다면 아마 버티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입사 동기는 총 6명이었다. 1살 연상 3명과 동갑내기 3명. 이 6명 중 3명이 같은 사업부로 배치받게 된다. 우리 셋은 전부 회사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했고, 파티션 너머로 매일같이 깨지고 혼나는 모습을 보여주며 서로 고충과 위로를 공유했다. 입사 초기 하루가 멀다 하고 모여서 술을 마셨으며, 다른 회사의 신입사원들과 3:3 미팅을 하기도 했다. 도어락 번호를 공유해서 한밤중에 우리 집에 술 취해 들어오는 등 좌충우돌한 기억들은 지금도 신입사원 때의 추억의 일부로 남아있다.




우리 회사는 상반기, 하반기 연 2회 공채를 진행했는데 우리는 상반기도 하반기도 아닌 ‘전역장교 전형’으로 입사한 낀 세대였다.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회계년도를 기준으로 입사시점을 판단한다. 평가와 승진을 1년 단위로 시행하기 때문에 같은 년도 입사자면 동일한 해에 승진 경쟁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입사원 때는 누가 몇 개월이라도 먼저 입사한 선배냐에 대해 예민하기 마련이다. 나를 포함한 6명은, 상반기 입사자가 입사한 지 3개월 뒤에, 하반기 입사자들은 아직 인턴이던 시점에 인턴 없이 정직원으로 입사했다. 어중간한 입사시점으로 인해 우리는 어디서도 환영받기 쉽지 않았다. 


3개월 먼저 입사한 직원들은 우리를 명백한 ‘후배’처럼 대했다. 피해의식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례로, 당시 신규업체 입점을 위한 ‘품평회’가 주 단위로 진행되었다. 신규 협력사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자리이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귀찮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품평회 진행 전부터 신규 입점할 상품은 이미 의사결정이 돼있으니까. 당연히 품평회 준비는 사업부별 막내 신입사원들의 몫이 되었다. 진행을 위한 PPT 및 음료수 세팅, 점수표 출력 등을 준비했어야 했다. 우리보다 3개월 먼저 입사한 선배들은 자연스럽게 하나 둘 이 귀찮은 일에서 빠지기 시작했다. ‘방송 준비를 해야 한다’ ‘미팅이 있다’ 등 여러 이유로 품평회 준비는 우리 몫이 되었다. '입사한 지 반년도 안된 니들이 1주일에 한 번도 시간을 못 낼 급할 일이 뭐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임원실 화분에 물을 주거나 샘플실을 관리하는 일 등에서 그들은 하나 둘 빠지기 시작했다. 이런 사소한 이벤트가 몇 번 반복되다 보면 감정이 좋을 수 없다. 우리 셋은 매주 품평회를 준비하며 ‘우리는 나중에 그러지 말자’는 귀여운 다짐을 하곤 했다. 




비단 회사뿐 아니라 학교든 군대는 한국사회에서의 선, 후배 관계는 미묘한 것이다. 회사 조직은 기본적으로 군대 조직과 유사점이 많은데, 군대의 경우 규정상 분대장을 제외한 병들 간에는 상명하복 관계가 성립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일병이 이병보다 지위가 높을 수는 있지만 규정상 상관이 아니므로 명령이 오갈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는 어떠한가? 일병의 청소 지시에 ‘당신은 내 분대장이 아니다’라고 대답하는 이등병은 미X놈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회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팀장이나 파트장 등 공식 직책자가 아닌 이상 명시된 업무지시 권한은 없다. 하지만 실무가 어디 규정대로만 운영되는가. 팀 내 선배들은 관행적으로 후배들을 지도·감독하므로 늘 어떤 형태로든 지시가 오간다. 게다가 입사 연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보수적인 회사라면? 선배의 영향력은 본인 팀을 벗어나도 발휘되기 마련이다. 우리 팀 일보다 타 사업부 선배의 부탁을 우선해서 들어줘야 할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회사 내 ‘평판’을 형성하니 직원 입장에서는 이를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난 ‘선임’이라는 직위의 대졸신입으로 입사했는데, 이는 예전으로 치면 사원~대리에 해당하는 직위였다. 직급 간소화로 인해 조직 구성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들이 '선임'으로 통합된 것이다. 만나는 대부분의 실무자는 나와 같은 ‘선임’이었는데, 어떤 선배들은 본인이 ‘대리급’ 선임이라는 사실을 행여 잊을까 누차 강조하곤 했다. 옷만 그럴듯하게 갈아입었을 뿐, 조직문화는 낡아빠진 꼰대 시스템이 여전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직위와 직책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하자. 군대로 치면 직위는 계급이다. 직위가 같은 대위라도 중대장을 맡을 수도 있고 대대 군수장교를 할 수도 있는데 그 역할이 직책이다. 즉 직위는 중위, 대위, 소령이 있고 직책은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참모 등이 있다. 보통은 직위보다는 직책으로 호칭하기 마련이다. (중대장님(⃝) / 대위님(✕))


회사든 공공기관이든 대체로 이와 유사하다. 일반적인 회사의 직위는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정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러한 5단계 직위는 관료제 조직의 직책에 기초한다

먼저 부장은 이 중 가장 높은 위계(hierarchy)인 ‘부’의 장(長)을 의미한다. 

차장은 ‘부’ 內 부장 다음가는 서열로, 부장이 없을때 그를 대리한다. 

과장은 ‘부’의 하위 조직인 ‘과’의 장(長)을 의미한다. 

대리는 과장을 대리하는 직책으로 ‘과장 대리’를 줄인 표현이다.

* 육군에서 lieutenant이 보좌하는 자(중•소위)를 의미하고 captain이 지휘하는 자(대위)를 의미하는 것과 유사한 형태인 것 같다.



90년대 이전에는 사기업도 공무원 조직과 같은 부·과·계 단위의 전형적인 관료제 형태의 단위조직을 운영했다. 그러다 2000년대 이후 ‘팀’ 제도가 보편화되면서 직위와 직책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었다. 예컨대 어떤 팀은 팀장이 부장이고, 어떤 팀은 차장이나 과장이 팀장을 맡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고 수평적 조직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직위를 ‘프로’, ‘매니저’ 등으로 간소화한 것이다. 다만 임금 구조는 전과 유사하게 가져가야 하다 보니, 아직도 예전의 부장, 차장, 과장 등의 직제의 흔적이 남아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얼핏 구시대의 잔재로 보이는 이러한 직급체계에도 의외의 장점이 있다. 바로 직원들에게 잦은 승진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주기적으로 승진 및 연봉인상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직원 입장에서는 대단한 동기부여가 된다. 승진은 내 과거 성과에 대한 눈에 보이는 외적 보상이 되며, 연봉 인상은 회사에 근로를 제공하는 본질적 이유가 아닌가. 훗날 직위 간소화를 추진하면서 수평적 조직문화 안착에 따른 직원의 호응을 기대했던 나는 매우 큰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특히 가장 저항이 심했던 곳이 백화점이었다. 백화점 점포의 경우 직위에 따른 R&R이 매우 명확한 편이다. 영업부서의 경우 사원급 1명과 비교적 노련한 대리급 1명이 각각 반개 층을 담당하며 층 전체를 과장급 1명이 총괄한다. 점포별로 한정된 인력을 운영하고, 직위별 TO를 정확히 고려하여 승진을 시행하다 보니 팀 보스는 부장, 바로 밑에 차장과 과장급 파트장이 있고, 그 아래 사원과 대리가 있는 매우 체계적인 방식으로 인력이 운영되고 있었다. 수평적 조직문화에 대한 내부적인 니즈도 적은 편이었고, 따라서 직위 간소화를 승진기회 박탈로 여겼기에 직위 제도 개선에 대한 반발이 생각보다 심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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