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화 날 수 있어!
억압된 분노
매주 월요일 오전에 9개월째 미술심리상담사 수업을 듣고 있다. 지난 시간에는 KFD검사에 대해서 배웠다. 동작가족그림검사로,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그리는 검사이다. 동작을 취하는 자세는 그리기가 어려울 것 같아 포기하고, 우리 가족 넷이서 나들이 가는 모습을 그렸다.
그린 후에 분석 방법을 배우는데, 내 그림 속 인물들의 코가 없는 것이다. 사실 별 생각없이 안 그리긴 했으나, 그림 실력 없는 내가 평면 속에 입체적인 코를 그리기가 어렵기도 했고, 코가 없어도 인물들의 표정은 충분히 보여줄 수 있으니 그닥 필요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선생님께서는 코가 생략된 경우는, 억압된 분노가 있는 것이라고 분석하셨다. ‘억압된 분노’라...? 그도 그럴 만 한 것이, 나는 화를 내지 않는다. 내가 화를 낸다고 누가 받아주랴? 상대의 반응이 무서워서 화도 내지 못한다.
어려서부터 화를 낸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혼날 때마다 억울한 마음에 눈물만 흘리고, 그마저도 들키면 혼날까봐 무서워, 이불 속에서 꺽꺽대며 울음만 삼킬 뿐, 화를 낼 엄두도 내보지 못했다.
겁쟁이
아이를 키우며, 아이한테 화내는 내가 비굴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른인 상대는 무서워서 화도 내지 못하면서, 힘없는 아이한테는 화를 내는 게, 비굴하다고 생각되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나보다 더 커서, 그마저도 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화를 내는 사람이 너무 불편하다. 더욱이 나에게 향한다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나에게 화내는 것이 아니어도, 옆에만 있어도 심장이 쿵하고 쪼그라들며, 놀라고 긴장된다. 내가 간이 콩알 만해서 그런가?
그 때문에 아이들의 훈육시기에는 부부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남편과 나, 우리 둘 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아이를 혼낼 때마다 나의 아버지모습이 떠올라, 아이가 무서워할 것이 걱정되었다.
그림 속 인물의 표정은 잔뜩 화가 난 듯 보인다. 그래서 이 그림을 볼 때도 심장이 쿵하고 쪼그라든다. 글을 쓰기 위해 그림을 주시하는 것마저도 불편하다. 난 왜 이리 겁쟁이일까? 내 안엔 어떤 억압된 분노가 있는 것일까?
나도 화 날 수 있어!
난산으로 엄마가 죽을 고비를 넘기게 한, 나는 엄마 살인미수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죄책감을 가지고 자라왔다. 나를 혼내던 엄마 말이,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나를 고생시키더니 끝까지 그런다는 것이다.
또한 혼전임신이라는 사실, 내가 생긴 것을 부끄러워하는 부모님을 보며, 내 존재에 대한 수치심을 가졌었다. 엄마의 병환으로, 할머니댁과 이모댁에 맡겨지면서 자랐기에, 유기불안까지 있었다. 사랑받지 못하면 버림받는 것이다.
사랑받으려면 화를 내면 안 된다. 아이였던 나는 그랬을 것이다. 인간은 독립하기까지 이십년이나 필요하니까. 하지만 이제 나는 독립했다. 상대에게 나의 생존이 달린 어린아이가 아니다. 그런데도 내 안엔 아이가 산다.
내 안에 아이를 키워주자. 화를 낸다고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사랑받지 않아도 충분히 혼자 살아갈 수 있다. 이제 화나도 된다. 나도 화 날 수 있다! 그림 속 인물처럼! “확!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