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휘연 Jul 10. 2024

너를 진정 이해 할 수 있을까?

내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너무 다른 아들에게

얼마 전 쓴 글에 부모 자식 간 인연은 8천 겁의 시간을 지나야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주가 몇 차례 사라졌다 새로 만들어지는 시간이라던데 그만큼 부모 자식의 인연이 특별하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그 우주안 지구라는 행성에서 내 아이들을 만나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이 우리 부부 곁에 오게 된 인연을 생각하면 가슴 뭉클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 아침 그 귀한 인연에게 답답함과 화를 느껴야만 했던 것일까?


올해 13살인 큰아이의 최근 화두는 '키 크는 법'이다. 또래 친구들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키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며 크게 자극을 받은 모양이다. 본디 타고난 체형이 마른 아이는 먹어도 살이 전혀 찌지 않는 축복(?) 받은 유전자를 타고났다.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나를 닮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가도 졸라맨 같은 가느다란 사지가 흐물거리고 다니는 것을 볼 때마다 애간장이 타는 기분이다.


"고기를 잘 먹어야 키 크는데 도움이 돼! 한 점만 더 먹어보자"

"윽, 고기 질려 그만 먹고 싶어. 라면 끓여주면 안 돼?"


키가 크고 싶다며 키 크는 영양제를 사달라던 아이의 요구에 따라 영양제도 사다 바친다. 단백질섭취를 고려해 계란과 두부 고기를 이용한 식단을 만들어 먹이기 위해 이 더운 날씨에 땀을 빼가며 요리도 해본다.

'열려라 참깨, 열려라 그입'

음식에 무반응인 성장기 청소년의 입을 열기 위해 마법 같은 주문을 외워가며 부엌에서 사투를 벌인다. 그럼에도 아이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왠지 모를 부화가 치미곤 한다. 먹기 싫으면 내버려 두라고 주변에서 이야기하지만 종종 어지러움과 기력 없음을 호소하는 아이를 보면 절대 포기 하기 어려운 일이다.


최근 날씨가 덥고 습해지면서 새벽에 잠을 설치는 날이 늘어났다. 지난밤  아이는 두어 번 잠에서 깨 결국 에어컨을 켜고서야 잠이 들었고 우리 모두 늦잠을 자는 사태가 벌어졌다. 눈을 뜨니 어질거리며 속이 매스껍게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큰 아이 역시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잘 먹고 잘 자는 둘째 꼬꼬마는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제 할 일을 하고 학교로 향했다. 


큰아이는 본인의 몸이 안 좋을 때 심리적으로 타격을 받는 스타일이다. 끙끙거리고 헐덕거리며 어지럽고 매스꺼운 속을 어찌하지 못했다. 13년간 지켜본 아이의 특유의 패턴이 있다. 나는 의연하게 "엄마도 지금 그래, 날이 덥고 잠을 못 자면 사람 몸에서 그런 반응이 나오니 잠시 쉬고 학교에 가자"라고 아이를 달래 보았다.

계란을 달라 물을 달라, 이온음료를 달라, 약을 달라 등등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다 보니 이미 9시가 훌쩍 넘어 버렸다. 담임에게 늦어질 거 같다 문자를 보내고 최대한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려 무척이나 애를 써야만 했다. 


졸라맨 사지가 더 가느다라게 보인다. 오늘같이 강풍이 부는 날엔 정말 바람 타고 휘리릭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모양새를 하곤 아이는 등굣길에 올랐다. 마음이 불편하고 답답해져 왔다. 아침에 커피 안 마시기를 실천 중이었지만 얼음 한가득 컵에 담아 아이스커피를 들이켜 본다. 8천 겁의 시간을 지나와 만난 인연치고 너무 일방적인 관계인 거 같아 약이 오른다. 아이 입장에선 나의 이런 반응이 섭섭하고 싫을 수 있겠다 싶다가도 내가 아이에게 보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해져 온다. 

육아 서적에서 말하는 믿음의 시선, 침묵의 기다림, 존중의 관점 같은 이야기들이 다 허사로 돌아가는 사건 앞에 나는 오늘도 패배자가 되어 버린다. 

'아들, 너를 이해하고 깊이 존중하게 되는 날이 8천 겁을 다시 지나야 만 가능할 거 같은 아침이야'


오늘 하늘 처럼 니 속을 알기 힘들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8살 아이와 싸우는 마흔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