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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연 Jul 04. 2024

8살 아이와 싸우는 마흔입니다

스스로에게 써 보는 반성문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둘째 꼬꼬마는 세상 억울하다는 원망의 목소리로 나를 향해 소리를 내지른다.

10분 전 침대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잘 잤어?"라고 아침인사를 한 사이라고 하기엔 너무 온도차가 크다.

분명 내 옆에서 세상모르게 푹 잘 자고 일어나 무엇이 그렇게 짜증 나고 화가 나는 것일까?

아이의 이유 없는 심술에 나의 아침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말았다.


우리 집 꼬꼬마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급한 성격을 반영한 듯 예정일보다 10여 일 먼저 태어나 현재 만 7세이다. 만 7세의 아이라 하기엔 말과 생각이 약빠르기 그지없다. 태어나 할머니댁에 1년간 맡겨져 살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4살 차 형을 이기기 위해 서인지 알 수 없지만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노력이 가상한 아이다.

꼬꼬마는 요즘 아침이면 이유 없는 짜증을 자주 내 혼을 자처하는 날이 늘어나고 있다.

며칠 전 아침의 짜증을 잘 넘겨주었는데 오늘 아침은 그러기 힘들었다. " 꼬꼬마야~ 아침부터 짜증을 내면 하루가 즐겁지가 않아~무슨 일로 그렇게 짜증이 나는지 말을 해보는 게 어때?" 발 뒤꿈치로 바닥을 찍어 쿵쿵 소리를 내고 책장의 책을 끄집어 바닥에 내동댕이 치는 아이를 달래 보기 위해 말을 걸어도 요지부동이다.


좋게 두어 번 더 아이를 타이르고 얼러도 아이는 나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 듯 제 짜증을 온몸으로 표시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여기 있던 색종이 어딨어? 엄마가 버렸어?"라고 하며 그동안 신경도 쓰지 않던 색종이 타령을 한다. 다행히 색종이는 제모습 그대로 아이의 손에 건네줄 수 있었는데, 아이는 그때부터 " 엄마가 색종이를 마음대로 버렸잖아! 색종이가 꾸겨졌어. 색종이가 망가졌다고!"라며 나를 탓한다. 거실 소파 밑에 굴러 다니던 종이를 그저 버렸다는 이유로 나는 아침부터 아이에게 맹공격을 당해야만 했다. 이쯤이면 나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른다. 

"그렇게 중요한 거였으며 네가 잘 챙겼어야 하고, 색종이는 필요하면 학교 가는 길에 새로 사도 된다 얘기했어. 너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짜증을 내기 시작하며 없는 핑계를 찾아서 엄마를 화나게 하는구나!"


그렇게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와 마흔셋 여자의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단 한마디도 지지 않고 6살 때 형한테 맞은 이야기까지 꺼내가며 자신이 아침에 한 행동은 다 이유가 있다 항변하는 아이를 보며 몇 년 뒤 시작될 아이의 사춘기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악을 쓰나 보려고 시작한 언쟁이 어느새 말싸움이 되고 나는 그렇게 8살 아이와 같은 수준으로 다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세상에.. 최악이네' 울며 학교로 떠난 아이를 생각하며 나는 또 한 번 자괴감에 몸서리를 쳐야 했다. 스스로가 너무 후지고 어른스럽지 못해 나이를 헛 먹었구나 한숨이 나온다. 자식을 키우는 일은 매 순간 모자란 나 자신을 대면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아지고 싶어 노력을 해도 이유 없는 원망과 노력에 반하는 소리들을 들을 때면 쌓아 올린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어쩔 수 없이 이런 일들을 겪고 나면 친정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너도 너 하고 똑같은 자식 낳아 키워봐 꼭!"

엄마와 징그러울 정도로 많이 싸우던 사춘기 시절, 그녀가 소원처럼 나에게 던지던 말이 결국 이렇게 이루어지나 싶다. '엄마, 소원 이루어져서 좋겠다~ 나는 딸은 없지만 딸보다 더 지독한 아들놈들이 돌아가며 밤낮으로 맹공을 펼치네. 이런 게 바로 뿌린 데로 거둔다는 말이겠지?'

물론 이 말을 엄마에게 할 수는 없다. 그저 마음속으로 나의 지난 어린 날을 회개해 보는 것으로 속상한 마음을 달래 본다. 나는 절대 우리 아들들에게 저 말은 하지 말아야지. 미래의 손주들이 제 부모에겐 예쁘고 고운 말을 사용하는 어린이들로 자라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엄마! 나 학교에서 금메달 땄어" 

카페에 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뜨거워진 속을 달래고 있는데 나의 속을 뒤집고 나간 장본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전화를 걸어 미주알고주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당신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투정을 부리는 아이였을 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엄마에게 사랑과 관심이 받고 싶어 그렇게도 지독하게 반항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 아이의 모습에 나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어 바라본다. '나를 더 사랑해 줘' '나를 더 따스하게 안아줘'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은 사랑과 인정에 부족함을 느끼고 있던 것은 아닐까?

나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마음의 양이 고갈되어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점검이 필요한 시기이다. 오늘 저녁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을 시켜 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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