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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연 Jul 26. 2024

비가 오니 엄마 생각

얼마 전부터 엄마가 내 전화를 피한다 느껴지기 시작했다. “엄마, 별일 없어?” “어 딸~엄마 별일 없어 ”

그 이후로 대화가 이어지지 않으니 별수 없이 전화를 일찍 끊고 말았다.수다쟁이 엄마가 이렇게 전화를 빨리 끊는다고? 별일 없다는 말이 별일이 있다는 말같이 느껴져 찝찝했지만 엄마가 말하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럼에도 걱정반, 섭섭한 마음 반이다.

‘엄마가 나한테 마음이 떠났나?’



며칠이 지나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전보다 한층 밝아진 목소리톤에 오늘은 예기를 길게 하려나 보다 싶어졌다.

“아니.. 세상에 얼마 전부터 하늘이 핑핑 도는 기분이 드는 거야.. 이렇게 어지러운 건 처음이라 놀래서 병원에 갔더니 이런저런 검사 (검사들의 비용까지 상세히 말하는 우리네 엄마들이다) 다 시키고 이석증이라는 거지..”

역시나 그녀의 신변에 문제가 있었던 게 맞았다. 그럼에도 괜찮다는 말과 함께 나에 대한 마음이 떠난 게 아니라는 확신이 나를 안도시킨다. 마흔이 넘어서도 이런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놀랍기도 한 사건이었다.


최근 가수 이효리가 친정엄마와 함께 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서로 가까워질 수 없던 모녀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에피소드 중 이효리 님이 엄마에게 말한 한 장면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엄마는 나를 보호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나한테 상처를 절대 줄 수 없다’



오래전 나의 부모님이 이혼하는 과정안에 자녀인 우리 의견은 전혀 존중되지 못했었다. 사건은 벌어졌고 우리는 그저 어른들의 결정에 남겨져 분해된 체 삶을 살아내야만 했다. 그 마음의 원망, 특히 우리를 남겨두고 떠난 엄마에 대한 원망의 실체는 보호받지 못했다는 감정이었다. 그렇게 20년이 넘는 시간을 엄마와 나 역시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며 흘러왔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아빠가 돌아가시고 칠십이 넘은 엄마를 보고 있노라면 원망의 감정은 어느새 연기처럼 사라지고 애틋한 감정만 남겨지곤 한다.

“엄마, 이제 엄마가 칠십이 넘었다는 걸 인정해”

마음은 아직 10대인 해맑은 엄마는 본인의 나이를 부정하며 더운 날씨에도 열심히 일을 다니고 있다. 결국 몸에서 이상 신호를 받고서야 아차 싶었다고..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몸이 나아지고 연락을 한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 쓰리다 , 찌르르해진다.


최근 양귀자 작가의 ‘엄마노릇 마흔일곱 가지’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55년생인 양귀자 작가의 82년생 외동딸 은우 를 위한 육아에세이였다. 95년도 출판된 이 책은 현재는 절판되어 중고 서적으로 구해 보게 되었는데 마침 나와 엄마의 나이와 꼭 맞는 게 아닌가.

나는 이 책을 우리 엄마가 나를 바라보며 쓴 육아서라 생각하며 읽고 있다. 빨리 읽는 게 너무 아까워 천천히 음미하며 한 문장 한 문장 새겨 넣고 있다. 엄마가 나를 이처럼 바라보고 느끼고 키웠겠지 생각하면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나 싶다. 서운함, 미움, 원망 또한 내가 엄마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알게 된 감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비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엄마가 더욱 그리운 오늘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다는 의미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어쩌면 완벽하게 마음을 읽어내는 일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에게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 자체를 신뢰하고자 하는 희망이 없다면, 사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읽어보려고 하는 노력은 더욱 소중한 것이 될 수가 있다. <양귀자, 엄마노릇 마흔일곱 가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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