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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연 8시간전

오늘도 누군가의 슬픔 앞에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집을 나섰다. 둘째 아이 학급 어머니들의 교통봉사 날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녹색어머니'로 변신하여 초록 조끼와 노란 깃발을 들고 50분을 횡단보도에 서서 떼 지어 이동하는 병아리들의 인도자가 되어 준다.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1년에 2번은 의무적으로 녹색어머니가 되곤 하는데 나의 곁에 신호를 기다리고 서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 깊은 의무감과 애민의 감정들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오늘 너희들의 등굣길을 안전하고 무사하게 지킬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장마로 엄청난 습기를 머금은 제주도의 아침 공기 탓에 등과 얼굴에선 땀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이 짧은 시간이 되려 나에게 감사의 마음을 들게 한다. 그리고 이내 무거운 마음과 슬픔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 축축하게 감정을 적셔 버린다.


아마도 시작은 어제 아침부터였을 것이다. '시청 앞에 대형사고가 났네'

내가 잠들어 있던 늦은 밤사이 남편이 카톡을 보내 놓았던 것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 뉴스를 열어 보니 서울 시청 앞에서 역주행 차량이 횡단보도에 서있던 시민들을 치어 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었다. 그곳은 남편의 사무실이 위치한 곳이었다. 9명의 사망자 모두 30~50대 사이 남성들이었다는 것. 뉴스를 읽으며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 그 남성들의 가족은? 아이들은? 아내는?' 얼굴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가족이 절규하고 슬퍼하는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려왔다. 특히나 남편이 매일 다니는 회사 앞에서의 일이다 보니 더욱 남일 같지 않았다. '오늘도 누군가의 삶을 덤으로 받아 살고 있구나'




교통봉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아침 식사를 먹으며 오늘 하루는 생각 없이 좀 쉬어 보자 결심을 해본다. 최근하고 있는 일들이 수월하지 않다 보니 감정소모가 큰 상황이었다. 어제의 사고 소식을 접했던 순간엔 가족 모두 무탈하게 귀가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라며 걱정거리 끌어안고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말자 생각도 해 보았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살아내자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마음을 담그고 염려하지 말자 생각도 해보았다. 그럼에도 혼자 생각에 잠기는 틈으로 또다시 불안과 걱정이 스민다. 감사의 시간은 짧고 걱정의 시간이 늘어나는 걸 보니 나도 나이를 먹고 있구나 싶어졌다.


그 순간 남편의 카톡이 쑥 올라온다. ' 00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네. 퇴근하고 원주에 다녀와야 할 거 같아 '

올해 칠십이라는 지인의 어머니 부고 소식에 또다시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이내 지난 초겨울 세상을 떠난 아빠의 장례식이 생각났다. 더운 날씨에 장례를 치르느라 고생할 지인이 염려된다.

심란한 마음에 카페로 나와 글을 끄적여본다. 얼굴도 모르는 타인의 죽음에, 연락이 뜸하던 지인의 부고소식에 나는 왜 이다지도 마음이 동하는 것일까?

아마도 내가 아빠를 떠나보내며 직접 겪어본 '죽음'이라는 실체를 알기 때문일 것이다. 경험하지 못했을 땐 알 수 없었던 남겨진 이들의 슬픔을 나는 지금도 격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부모를 잃는다는 건 생각보다 무척이나 아프다. 일상의 곳곳에서 그들의 흔적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한다. 부모자식의 인연은 8천 겁의 시간이 지나야 이루어진다는데, 그 아득하고 먼 시간을 그리워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곤 한다. 그래서 오늘도 누군가의 슬픔 앞에 '우리만' 행복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허투루 보내고자 한 오늘 하루를 조금 더 성실히 살아내야겠다.



*8천 겁의 시간이 얼마만큼의 시간인지 궁금해 찾아보았다. 인간계의 4억 3,200만 년을 1겁이라 한다니 정말 오래도록 멀고도 먼 시간이다. 오늘은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우리 인연은 정말 특별하고도 특별한 인연이라고,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 이야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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