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되, 매몰되지 말자.

목표: 냉소주의자로 남지 않기(1)

by 윤노을

내가 그 택시 안에 갇혀 상사로부터 당했던 일에 대해 상세한 기술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누군가의 쓰라린 상처를 들추는 일일 수도 있고, 그전에 이미 내가 너무 여러 번 내 기억을 들췄다.


사건 당일 경찰서에 가서 한 번, 고용노동부 지청에 가서 담당자님에게 한 번, 근로개선지도과에 진정이 배정된 후 방문 전에 또 한 번 상세한 진술서를 적었다. 후로도 노무법인에서, 변호사사무실에서···


글에서 끝나지 않는다. 적은 걸 말로 다시 진술해야 했다. 피해자는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피해 사실을 계속해서 다시 읊어야 한다.


돌이켜 봐도 그 지점이 가장 길고 느린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칠 동안 곁에 있어준 연인은 내가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며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는 모습에 그저 등을 토닥였다. 아니, '그저'는 아니다.


성추행이 일어난 날 밤 머릿속이 백지가 되어버린 나에게 "당신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해 주었고, 우는 나를 안아주었고, 먼저 경찰서에 가자고 해 줬으며, 나로 인해 몇 날 잠을 설쳤다.


굳이 이 이야기를 구구절절하는 이유는 내 심성을 해치지 않고 싶어서다. 다 보니 이렇게 험한 꼴을 당하기도 하더라만, 좋은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는 점을 스스로 상기하고자. 번의 나쁜 경험으로 섣불리 관에 들어서거나 염세적인 인간이 되지 않으리라는 다짐의 다른 표현이다.


자정이 넘어 찾아간 경찰서에서도 그랬다. 담당 경찰관님은 피곤한 기색 없이 친절하게 맞아줬고, 진술 조서를 쓰고 나서는 애가 많이 쓰인다며 인간적인 위로도 덧붙여주셨다.


노무상담을 받을 때도 같았다. 고용노동부라는 곳에 생전 처음 들어가 발발 떨면서 읊은 이야기에도 '설명을 차근히 잘해주셨다. 대처도 잘하셨다'는 따뜻한 답이 돌아왔다. 생전 처음 발 딛는 공간에서 무서움과 긴장, 얼떨떨함이 뒤섞여 머뭇거리는 나를 친절과 배려로 다독여준 이들이 참 많다.


덕분에 잘 해냈는지는 모르겠으나 경찰서와 노동청에 다녀오는 일 모두 무사히는 해냈고, 글을 쓰는 지금은 모든 절차를 마감하고 비교적 평범한 일상 속에 있다.


다만 한 번 겪고 나니, '미리 알았으면 좀 더 잘 대처했을 텐데' 하는 것들은 있다. 평생 몰라도 괜찮은 삶이 제일 좋겠지만, 내가 당사자가 되고 보니 삶이라는 게 그렇진 않아서.


행여 나처럼 어떤 이유로든 예기치 못한 성희롱이나 추행 등을 당하게 됐을 때 기억해 두면 좋은 것들을 정리했다.


그때 그 택시 안에서 나는 술에 취한 상사의 손이 자꾸 내 쪽으로 오자 소름이 돋고 꺼림칙해 바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업무를 위해 자동통화녹음을 설정해 둔 것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옆에서 상사가 듣고 있다 보니 자세한 상황을 읊진 못했지만, '상사와 같이 있다, 옆에 타고 계시다, 지금 어디로 가는 중이고 현재 어디쯤이다' 하는 정보를 말하는 것만도 나중에 경찰 진술 시 도움이 됐고 증거로도 제출됐다.


특히 택시나 차에 타서 이동 중인 상황에 사건이 발생했다면 '정확한 사건 발생 시작 지점이 어디인지, 그때가 몇 시 몇 분인지'가 매우 중요했다. 난 집에서 가장 가까운 경찰서에서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줄 알았는데 그것조차 아니었다.


사건 발생 시점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정확히 어디에 있었느냐에 따라 어느 경찰서로 사건이 이관될지가 결정된다. 때문에 경찰 진술 시에도 "처음 성추행이 시작됐을 때 지도상 대략 어느 지점이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최대한 정확한 지점을 찍어야 했다. 다행히 나는 통화 중이기도 했고 그 당시 차창 밖으로 봤던 버스정류장 이름이 기억나 답변을 드 수 있었다.


더불어 시간대도 중요하다. 만일 이동 중에 피해를 입게 된다면 핸드폰이나 손목시계를 확인하면 좋다. 창 밖의 랜드마크, 표지판, 정류장 이름 등을 기억해 놓는다면 더 좋고. 할 수 있다면 통화녹음을 켜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면 가장 확실하다.


내가 했던 것처럼 누구와 있는지, 어디서 어디로 이동 중이고 창 밖에 뭐가 보이는지 말해 두면 된다. 통화시간이 기록되니 진술 시 명확한 시점을 밝히기도 쉽다.


그리고 분명 삶의 질척함에 낙담하게 되겠지만, 포기할 필요는 없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 도와줄 사람들이 있다. 차가워 보이는 건물 안에도 손이 따뜻한 사람들이 있고, 무미건조한 표정 속에 안타까움을 담은 이들이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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