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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현 Jun 08. 2024

정답과 해답

진용진 언제부턴가 우리들이 믿고 있는 이야기 <주관식> 리뷰

(줄거리 일부 포함)

정답: 옳은 답. (결과적, 객관적)

해답: 질문이나 의문을 풀이한 것(과정적, 주관적, 경험적)     


 대학생 영훈과 승혜는 친구이다. 서로 취미가 같아 친해졌다. 서로 마음이 있으나 각각 주변 친구들로부터 들은 의견(서로 더 예쁘고 잘생긴 친구들을 만나야 한다.)에 휘둘려 서로의 호감을 외면한 채 그것을 가리기 위해 상처 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 영훈의 잘생긴 동성 친구 진완이 승혜에게 진심 없이 다가가고 승혜는 주변의 의견에 따라 영훈보다 나은 진완을 선택해 사귀다가 진완의 성숙하지 못한 태도로 인해 상처를 받고 헤어졌다. 남몰래 승혜를 좋아하던 영훈은 승혜를 모욕하는 진완의 발언에 참지 못하고 진완을 때리고 이 모습을 승혜가 보았다. 이후 영훈과 승혜는 오해를 풀고 사귀기 시작했다.      

 영훈의 군대 전역 이후 잘 만다던 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서로 질리고, 싫어하고 있다는 오해가 생긴 것이었다. 승혜는 친한 언니 미선에게, 영훈은 동성친구 원신에게 각각 고민을 털어놓았고 그들의 조언에 따라 행동했다가 오해가 더 깊어졌다.

 ‘네가 나 싫어한다며!, 네 행동 설명하니 미선언니가 그러던데’

 ‘네가 나 싫어한다며!, 원신이가 그러더라’

영훈과 승혜는 긴 냉각기를 보냈다. 둘의 가까운 일본인 친구 리사가 출국하기 전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각각 부탁한 숙제 ‘인생을 함께 걸어가고 싶은 사람은’의 답을 적어 내기 전까지. 리사에 의해 그들은 그때 처음으로 서로의 주관식 답안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들의 답은 서로를 가리켰고 그때 비로소 오해를 풀었다. 그리고... 그들은 평범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     



 

 남이 가르쳐주던 객관식 답을 좇아 연애를 시작한 그들은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주관식 답을 적어보고 나서야 사람 관계가 주관식 문제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은 더 이상 객관식 시험문제가 아니다. 어느 단계부터는 몇 가지 선택지 중 가장 나은 것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공란에 자기 생각을 적어내야 한다. 주변에 관심이 지나쳐 오지랖을 부리는 주변인들도 문제지만 자신들의 관계에 대한 정답을 주변에서 구한 영훈과 승혜의 태도도 성숙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직접 대면했을 때 받을 상처가 두려워 문제의 해답을 직접 구해보려는 의지 없이 옆에서 알려주는 의견을 마치 관계의 정답인 양 믿어버린 잘못이다. 


 누가 알려주는 정답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 쉽고 빠르기에 그냥 그대로 결정해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이기에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나의 ‘해답’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설사 일정 기간 결과를 못 내더라도 혼자 헤매보다가 스스로 방향을 잡아보는 것. 그것이 주관식 문제의 답을 적는 과정이겠지.    

 

 나는 얼마나 이 훈련에 익숙할까. 이것은 마음 습관과 비슷해서 비단 연애에 그치는 문제는 아니다. 연애, 진로, 결혼, 육아, 소비(집 등 큰돈이 들어가는 경우) 등 삶의 굵직한 과업들은 책임의 크기가 다를 뿐 어떤 답을 구할지는 ‘영훈·승혜의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가 알려주는 정답을 좇아 저 과업들을 선택할 것인가, 자신만의 주관식 답을 적어낼 것인가. 저 과업들의 중간 정도를 선택해 온 지금 돌이켜 보니 해답 찾기는 어렵거나 때로 귀찮지만 꼭 필요한 마음 훈련이다. 주변의 정답을 따라 살다 보면 오랜 시간이 흘러도 스스로 답을 찾는 방법조차 아예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에게 배운 그 ‘정답’이 내겐 ‘오답’ 일 수 있지 않은가. 그 책임은 온전히 내 것인데 얼마나 가혹할 것인가.     


 영훈과 승혜에게 주관식 질문을 던진 친구 리사는 출국 날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겼다. ‘살다 보면 어떤 답을 적어야 할 때가 있어. 그때 기억해야 해. 인생은 주관식이야. 정답이 없는 주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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