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동 오동나무집 마당에 감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10평 남짓한 좁은 마당 한가운데 나무를 심었으니 들락거릴 때, 마당 쓸 일 있을 때 걸리적거릴 것이다. 그럼에도 과감하게 실행에 옮겼다.
몇 년 전부터 감나무 한그루 키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매년 가을로 접어들면 서서히 붉은빛으로 달아오르는 이웃집 감나무 때문이다. 2층 높이의 철도 침목 계단을 올라 오동나무집 마당에서 바라보는 10월 말경 아랫집 감나무는 일 년 중 가장 당당한 모습이다. 여름내 뜨거운 햇살을 농축시켜 알알이 머금고 있다가 서서히 뿜어내는 감의 때깔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이때쯤 되면 오동나무집도 붉게 물들어간다.
작년 그맘때 친구들이 오동나무집에 온 적이 있다. 팔을 조금만 더 뻗으면 닿을 듯, 탐스러운 감을 바라보며 그들은 한 마디씩 했다. 담장 너머 뻗친 감은 누구의 감일까?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감에 대해 아쉬움을 달랬다.
4년 전 한옥 한 채를 샀다. 작고 허름하지만, 동남향으로 햇살이 잘 드는 오래된 집이다. 나무계단을 오르면 오동나무가 있어서 오동나무집이라 부른다. 위치가 높다 보니 탁 트인 시원한 전망을 누릴 수 있는 매력적인 집이다. 그런데 어린아이의 눈은 집이 아니라는 것에 놀랐다. 5살 손자가 그 집에 처음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한 행동은 나무 기둥을 어린 주먹으로 툭툭 두들기고 입에 바람을 잔뜩 채운 뒤, 후~우 하고 불어 보는 것이 아닌가!
“어~ 안 날아가네!”
아마도 그 녀석에겐 아파트가 아닌 한옥을 처음 와 보고 신기했던 모양이다.
갑자기 『아기돼지 삼 형제』 동화 속에 나오는 나무집이 떠올랐을까?
휴먼스케일이란 말이 있다. 인간의 물리적 크기, 능력 및 한계를 기반으로 환경과 상호작용 하기에 알맞은 적합한 크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집에 들어서면 잊혔던 유년 시절이 떠오른다. 여름이면 쑥부쟁을 꺾어 냇가에 집을 만들었었다. 그 안에 작고 평평한 돌멩이를 깔아 바닥을 고른 다음 그 위에 누우면, 쑥 향기 코끝에 가득 차고, 얼기설기 푸른 하늘이 보이곤 했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 요새에 숨어 있는 양, 포근한 안정감을 느끼곤 했다. 그 시절엔 그 작은 공간이 오직 나만의 세계인 듯 행복했다. 환갑 지난 지금, 내 삶의 무게를 포근하게 감싸줄 공간으로 오동나무집 크기 정도면 딱이다.
집이 작다 보니 좋은 점도 많다. 일단 집에 손 볼 일이 생기면 혼자 실컷 궁리해 가며 놀이하듯 즐기면 된다. 심지어 그 일에 동참하려고 기다리는 친구도 있다. 짐 싸 들고 와 머물며 재미있게 일하다 간다. 물론 그런 친구들은 오동나무집 자유이용권이 제공된다. ㅎㅎㅎ
마당 한가운데 심은 감나무가 무럭무럭 자란 모습을 상상해 본다. 여름에는 무성한 나뭇잎으로 시원한 그늘을 선사해 줄 것이다. 가을에 따뜻하고 정겨운 호롱불 닮은 감이 주렁주렁 달리면 이웃집 할아버지 감나무와 서로 눈인사 나누며 오동나무집을 환하게 밝혀 줄 것이다.
은퇴 이후 삶의 여백을 채우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작은 공간. 다정한 친구와 커피 한 잔 나누며 웃음꽃 피는 곳. 창작하는 이에게는 영감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작업실. 낡고 오래됐지만 몸과 마음이 편해 잘 어울리는 옷 같은 오동나무집, 그런 집이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