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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김 May 31. 2024

석사동 339번지 미술관 옆

나의 화양연화

  작업실 문을 연 순간,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질 뻔했다. 최초로 나의 전신상을 만드는 석고 틀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게 아닌가? 석고를 붙이고, 필름을 뺀 뒤, 거푸집을 떼어낸 다음, 바닥에 잘 놓아두었는데, 연휴 동안 집에 다녀오는 사이에 부서진 것이다. 두 달 동안, 기껏 만들어 놓은 작품이 이렇게 허무하게 망가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맥이 빠지고, 슬프고 화가 났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보물을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시건장치 없는 허술한 작업실이었다. 누가 관리자인지 알지 못했다. 천장 모서리엔 거미줄이 어지럽게 쳐져 있었고, 한쪽 귀퉁이엔 주인을 알 수 없는 낡고 해진 작업복들이 걸려 있었다. 언제 누가 입었던 것일까? 나뭇조각, 삽, 망치, 톱, 나무 메, 오래된 물레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산만하기 짝이 없었다. 창문은 유리창이 깨진 채였다. 애당초, 창고였는지 학교 아저씨가 드나드는 이곳은, 남자들만 써왔던 모양이었다. 어느 한 곳 정 붙일 곳 없는 을씨년스러운 공간에, 나 스스로 발을 들여놓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서양화나 동양화를 선택할 때, 나는 조소로 방향을 틀었다. 그건 흙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흙 만지며 노는 것을 좋아했다.      


  학과 공부를 마치면 나도 모르게 작업실로 발길을 돌렸다. 주인의 뜻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말랑말랑한 흙이 나를 손짓하며 부르는 듯 이끌렸다. 처음엔 낯설고 황량하게 느껴졌던 작업실은 차차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신비롭고 특별한 곳으로 차츰 바뀌어 갔다.

  마침내, 나의 전신상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각목을 자르고 철사를 연결하여 기본뼈대를 만들고 흙이 잘 붙게끔 노끈으로 동여맸다. 흙덩이를 요리조리 붙여가며 인체 형상을 만드는 과정은 힘든 작업이었다. 어떤 작품이 나올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으나, 정성을 다할 뿐이다. 몰입의 경지에서 훌륭한 작품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기꺼이 나를 바쳤다. 작업대 한쪽의 대형 거울 속에는 스스로가 모델인 또 다른 내가 언제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조소과 초년생인 나는 흙 한 덩이 붙이기도 어렵고 서툰 탓에 쩔쩔매곤 했다.

  그 무렵, 대중목욕탕을 자주 갔었다. 여러 유형의 누드모델을 관찰하기 좋은 그곳은 내게 훌륭한 교육 현장이었다. 사람의 형태를 흙으로 빚어내려면, 잘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몸의 자세에 따라, 근육의 형태가 달라지는 모습을 기억했다가, 작업할 때 이미지로 떠올려 적용해 보았다. 눈으로 바라보고 기억한 것을, 흙으로 형태를 찾아가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말랑말랑한 흙을 좋아하기만 할 뿐, 어쩔 줄 몰라 답답할 때가 많았다. 가끔, 조소 전공 교수가 작업실을 방문했다. 그가 헤라를 몇 번 휘두르면, 아무런 의미 없던 흙덩이에 골격이 살아나고 피가 돌고, 숨을 쉬는 생명체가 탄생하는 기적을 보며, 예술의 위대함을 느꼈다. 손이 부르트고 먼지가 앞을 가렸지만, 나는 작업실에서 창작에 매진하곤 했다. 배우려는 제자의 목마름에 한 줄기 생명수와 같은 교수님의 가르침, “줄탁동시”가 이런 것일까? 


  조소는 8할 이상이 육체노동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 바꿔 말하면, 흔한 말로 “쌩노가다”다. 흙 반죽으로 작품의 형상이 완성되면 분할 선을 긋고, 필름을 꽂는다. 그리고 석고 가루를 잘 반죽하여 작품 외형에 발라 입힌다. 반죽이 굳으면, 필름을 제거하고, 흙에 붙어있는, 석고 거푸집을 조심스럽게 분리해 낸다. 마지막으로 제3의 재료 즉 석고, 합성수지, 청동, 등으로 석고 틀에 의존하여 작품 원형을 살려내는 일이 바로 조소다. 이 과정 중 작품 원형을 간직한 석고 틀 관리는 핵심 포인트다.

  지나간 대학 시절을 떠올릴 때면 공사판 잡부 차림인 내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곤, 지난 추억에 잠겨 피식! 웃기도 하고 때론 저절로 미소를 짓기도 한다. 배가 고파 지칠 때까지 오랜 시간 흙을 만지며 지내던 곳, 아픔을 딛고 다시 용기 내어 일어섰던 곳, 내 손에 새롭게 탄생한 피조물을 보며, 마치 내가 창조주가 된 듯 착각도 해 본 곳. 푸르고 푸르던 시절, 나의 젊은 날의 화양연화는 그 낡고 허름한 작업실에서 창작하던 시절이었다. 돌이켜보면, 흙덩이가 조금씩, 조금씩 작품으로 변해가는 창작의 시간은 늘 나를 매료시켰다.


  한 때, 까미유 끌로델을 칭송하며, 미래를 꿈꾸던 그곳.

  사랑을 기다리고, 젊은 날의 청춘과 낭만이 넘치던 아름다운 그 시절….

  아! 언제나 그립고 잊을 수 없는 곳,

  춘천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조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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