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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오른다 May 30. 2024

누가 진짜 나일까?

다비드 칼리 글, 클라우디아 팔마루치 그림. 책빛


공장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사장의 권유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복제 인간을 만들게 된다.

복제 인간은 주인공을 대신해 주인공의 삶을 산다. 

그 덕에 공장에서 하루 종일 쉼 없이 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주인공은 혼란스럽다. 혹시 내가 복제 인간이 아니었을까? 

그는 사무실을 빠져나와 그대로 남쪽 바다를 향해 기차를 탄다.





작가의 상상이 시작된 지점이 도플갱어인 듯하다. 

자신의 삶을 대신 살고(누리고) 있는 복제 인간에게 공포를 느꼈을 주인공이 단번에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리고 실행했을 때 기분 좋은 해소감이 들었다.

작가는 아이러니한 지점을 건네주는데, 그것은 인간이 아닌 복제 인간이 삶을 대신 살아가고 인간인 주인공이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한다.

주인공이 과연 정말 인간인가. 하는 것은 모를 일이다.



책에서 주인공은 사장에서 묻는다.

그들이 뭐든 다 잘할 수 있다면, 왜 우리를 대신해 일을 시키지 않지요?


사장은 한숨을 쉬더니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그들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네. 당장은 간단한 몇 가지 일만 할 줄 안다네. 자네들이 가진 능력을 다 갖고 있진 않아. 우리 회사에는 절대적으로 자네와 같은 사람들이 필요해.



주인공과 같은 완벽히 일을 해내는 사람. 경제 발전을 이루어 낸 우리 사회에서는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인재였다.

묵묵히 회사를 위해 일을 해왔던 많은 부모님들이 있었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저성장 시대에 삶은 더 팍팍해졌고, 코로나19 이후 사는 것이 더 고달파지고 물가 상승은 가파르다.


주인공은 자신이 복제 인간이든 아니든 그 문제를 내려놓은 채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떠난다.

그는 크레이프를 팔며 현재 삶에 집중한다. 

그리고 더 이상 그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린 클라우디아 팔마루치는 이탈리아의 유명 작가라고 한다.

자세히는 몰라서 검색해 보니 김시아 문화 평론가가 적은 글이 있다. 


『누가 진짜 나일까?』에서 그림을 그린 클라우디아 팔마루치는 복제인간이라는 테마에 상응하도록 테오도르 제리코의 작품을 모사하며 오마주 한다. <도벽에 빠진 환자>, <도박에 빠진 여인>, <계율에 빠진 남자>, <질투에 사로잡힌 여인> 초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과 스타일을 참고 인용하여 직원들의 “곤혹스러운 표정”과 피곤해 보이는 표정을 열거한다. <질투에 사로잡힌 여인>의 표정을 본 따 그린 빨간 두건을 쓴 여인이 손에 쥐고 있는 책 표지에 적힌 ‘THOEODORE GERICAULT’ 제목 덕분에 작가가 화가에 대한 오마주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러한 상호텍스트성은 다른 페이지에서도 드러난다. 복제 인간이 집에 있어서 공원 벤치에서 잠을 자며 악몽을 꾸는 자비에의 몸짓은 프란시스코 고야의 판화 시리즈 가운데 유명한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라는 문장이 적힌 그림의 몸짓이며 같은 분위기의 음산함이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금세 알아챌 수 있다. 또한 이탈리아 작가인 클라우디아 팔마루치는 복제 인간 때문에 자기 집에서 도망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는 이탈리아 화가 도메니코 그놀리의 ‘구두’를 연상시키는 확대된 구두 이미지로 무겁고 육중한 자비에의 마음을 표현한다. 다비드 칼 리가 쓴 이야기의 서사도 흥미롭지만, 글을 그림으로 해석한 클라우디아 팔마루치는 그가 좋아하는 화가들에 대한 오마주와 작품과의 시각적인 상호텍스트성으로 독자에게 회화의 세계로 안내한다. 원래 작품과 비교해 보는 재미와 더불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보고 공부하게 만드는 기쁨을 준다. 그림책은 그림을 보면 볼수록 섬세한 디테일이 보이고, 알면 알수록 독서의 즐거움이 배가되는 장르이다.


출처 :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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