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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 아줌마 Jun 14. 2024

셰어 하우스 0101

1. 독립을 꿈꾸는 아내의 시선

 얼마 전 집에 들어오는 길에 언뜻 1층 주차장에서 낯선 차를 봤다. 지정 주차라서 항상 남편의 검은색 차가 서 있던 자리에 못 보던 짙은 은회색 승용차가 서 있었다. 그날은 아무 생각 없이 무심히 지나쳤는데 며칠 동안 계속 서 있는 모양새다. 그때부터 심장이 뛰고 혈압이 올라가면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게 느껴졌다. 설마 하는 마음에 남편의 번호로 전화를 거는 목소리는 이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 : 주차장에 자꾸 이상한 차가 서 있어. 설마, 차 또 바꾼 거 아니지?

남편 : 그거 내 차야. 바꿨어.

  나 : 뭐라고? 아니, 왜?

남편 : 이 사람아, 다 일에 필요해서 바꾸는 거야.      


 그러고 보니 남편과 나는 서로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돈, 일, 집, 하다못해 아이들의 이야기도 서로 마주 앉아 진지하게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뭐가 잘못된 걸까? 차 문제는 벌써 이번이 두 번째다.      

 

 최근 몇 년은 2년에 한 번 간격으로 뭔가 일이 생겼다. 차를 바꾼 지 2년도 채 되지 않았고 그 차를 얻어 탄 것은 같이 상갓집에 갈 때 한 번, 시댁에 갈 때 한두 번 정도나 될까 말까다. 이번에도 바꾼 지 몇 주가 지나서야 알게 된 건데 뒤통수를 아주 된통, 제대로 얻어맞은 느낌이다. 서울에 집은 못 사도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해서 쾌적하게 살고 싶었는데, 여기저기 쓰임새를 보면 충분히 가능할 것도 같은데 자기는 전혀 불편하지 않단다. 신기한 사람이다. 이 좁은 집이 도대체 왜 불편하지 않을까? 방은 세 개지만 크기가 작아 방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해 방문이 반만 열리는 이 집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지금 집으로 이사 오기 전 남편의 짐이 많아져 거실에 쌓이기 시작했다. 뭔가를 만드는 것이 취미인지라 공구를 비롯해 화이트보드와 문구류, 심지어 플라스틱 약병까지, 살 때 인터넷으로 대량 구매하는 바람에 천정까지 빼곡히 쌓인 물건을 보노라면 턱 하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쌓을 곳이 없자 이동식 선반을 만들어 자꾸만 짐을 늘리면서 거실을 자신만의 사무실 겸 창고처럼 쓰는 탓에 아이들과 나는 자연스럽게 좁은 각자의 방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불편함을 참다못해 이사를 결심했는데 똑같은 이유로 다시 이 집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가끔 묘한 생각이 든다. 가족을 위해서는 딱 필요한 만큼의 생활비만 주고 나머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쓰느라 문제가 불거지는 듯한데 뚜렷한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시골 읍 단위에 17년째 보유 중인 낡은 아파트의 역전세로 돈을 돌려줘야 하는 마당에 쿨하게 던지는 한 마디가 “어, 그 문제는 당신이 알아서 해결하고”란다. 이런 제기랄, 머리가 아프다.     


 이 결혼을 대체 왜 한 걸까?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내 밥벌이는 하는 입장인데도 왜 항상 을인 것처럼 할 말을 제대로 못 하는 걸까? 자존감의 문제인가? 서로에 대한 이해 없이 중매로 만나 급하게 결혼한 탓인가? 아니면 설득력이 부족한 나의 언변 때문인가? 복잡하고 시끄러운 논쟁을 싫어하는 내 성격 때문에 본질을 계속 회피하며 살아왔기 때문일까? 남들은 맥주라도 한 잔 하며 이야기해 보라고 충고하지만, 남편은 심각한 알코올 알레르기를 앓고 있다.     


  어쩌면 결혼 초에 서로의 우편물에 대한 문제에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른다. 남편의 우편물을 한 번 뜯었다가 교양 없는 여자 취급받은 이후로는 한 번도 뜯어본 적이 없다. 돈 이야기를 한 번 꺼냈다가 돈에 집착하는 속물 취급을 받은 후론 돈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결혼 23년 차인데도 남편의 수입을 모른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서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일단 차 문제는 냉전 끝에 생활비를 조금 올리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언제 또 무슨 일로 놀라게 할지 걱정은 되지만 일단 주는 생활비만이라도 잘 관리해서 큰 위기가 생기지 않도록 대비를 해야겠다. 언감생심 남편에게 기댈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지만, 앞으로도 그 생각은 접어야 할 듯싶다. 분야가 전혀 다르고 일 얘기는 아예 하지 않는 데다가 바쁜 것이 눈에 보이고 늘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 통에 대화를 꺼내기조차 힘들다. 아예 이 기회를 빌려 정서적,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독립한 나를 꿈꾼다. 남편에게 기대지 말고 내 노후를 위해서 할 수 있을 때까지 즐겁게 일하며 공부하자. 불편한 게 많아 시간 날 때 내 집 마련 강의라도 들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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