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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 아줌마 Jun 14. 2024

셰어 하우스 0103

3. 나름대로 중심을 잡으려는 아들의 시선

  어느 날 학교에서 유독 지치고 힘들어 보이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봤다. 나도 나를 어쩌지 못했던 사춘기 시절, 계속 학교에 불려 오실 때의 뒷모습이다. 어깨가 축 처진 채 복도 끝으로 걸어가던 뒷모습에 고단함과 쓸쓸함이 묻어났다. 어깨를 세우고 펴 드리는 아들은 못될지언정 처지게 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지만, 그 후로도 연달아 몇 번 더 아버지를 소환시켰다. 엄마가 없는 기간에 떠오르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중국에 갔던 엄마가 돌아오면서 시작된 것은 잔소리였다. 2년이란 부재의 공백을 메꾸기라도 할 기세로 잔소리가 이어졌다.      


  오로지 부재의 시간에 대한 학습 결손만 눈에 보이는 듯 모든 것을 공부와 관련짓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게 공부가 중요했으면 중국에 가지 말고 내 성적에 신경을 조금 더 써줬으면 좋았을걸. 이미 시간은 흘렀건만 여전히 2년 전의 모습에서 한 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어쩜 그 많은 말들이 공부와 관련된 잔소리뿐이니 처음엔 그냥 흘려듣다가도 점점 강도 높은 쐐기를 박기 시작했다. 엄마가 잔소리를 늘어놓을 때마다 늘 똑같은 말로 되받아쳤다.     


  나 : 그래서 나한테 뭘 어쩌라고?

엄마 : 왜 화를 내? 누가 뭘 어쩌래? 그냥 그렇다고?     


 사사건건 태클을 걸던 선생님과 닮았다. 도대체 그 상황에서 뭘 어쩌란 건지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와 버리기 일쑤였다. 아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엄마의 모습이 이전 선생님의 모습과 겹쳐 씁쓸했다. 이쯤 되면 아버지가 말하던 쓸데없는 엄마의 집착과 고집이란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닫힌 문을 향해서 한다는 말이 “야, 네가 사춘기면 난 갱년기야. 어디 한번 해보든지, 사춘기가 이기나? 갱년기가 이기나?”라며 소리를 지른다. 헐, 정말, 어른들이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기어이 들들 볶아서 자기가 원하는 상황대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이기적인 모습을 집에서도 봐야 한다니 절대로 굴복할 수 없다. 엄마는 갱년기를 높은 언성과 쓸데없는 소모전으로 채울 생각인지 몰라도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래서 선택한 문장이 바로 “그래서 도대체 뭘 어쩌라고?”였다. 말하는 톤이나 문장의 어감이 이미 상대의 화를 돋우기에 충분하면서도 답답한 내 마음을 잘 표현한 문장이다.        

           

- 이제 그만 일어나라.

- 가방은 잘 챙겼니?

- 먹기 싫어도 아침은 든든하게 먹어야지.

- 전화는 놓고 가라.

- 또 뭔 짓을 했길래 벌점을 받았니?

- 어디야? 혹시 PC방 아니야?

- 태권도 끝나면 바로 와라.

- 학원 시간 늦지 마라.

- 친구랑 이야기할 때 욕하지 마라.

- 동생하고 싸우지 마라.

- 집에 오면 손부터 씻어라.

- 책 좀 읽는 게 어때?

- 네 방문 좀 열어 놓을래?     


  잔소리가 아니라 제대로 된 대화나 훈육이라 여겼다면 아마도 그렇게 매몰차게 “그래서 뭘 어쩌라고?”를 입에 달고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르겠지만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끊임없이 비교당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엄마는 은연중에 외모와 키를 비교하고 성격, 소유한 물건과 집을 비교하고 가진 돈과 직업을 비교했다. 심지어 입은 옷과 친구, 학원과 학교 성적까지 비교하고 있었다. 집에 있는 세 사람, 아빠와 나, 동생 모두 공통으로 싫어하는 것이 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과 잔소리, 그리고 비교하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집 이야기를 하면 비교한다고 생각해 셋 다 말문을 닫아 버린다. 듣기 싫은 잔소리라도 이어질라치면 얼른 나만의 철벽 멘트를 날린다.      


“그래서 도대체 뭘 어쩌라고요?”     


  짜증 섞인 말투를 듣고 또 삐딱하게 나오는구나?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가 간섭을 멈추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숨도 쉬지 말라는 얘기네요.

그냥 내가 숨 쉬는 것 자체가 못마땅한 거잖아요.

아예 숨을 쉬지 말라고 하든지 아니면 말을 하지 마세요.

그래서 도대체 뭘 어쩌라고요?”      


  높은 강도에 철렁하며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마치 뒤에서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엄마에게 질세라 쪼아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부재했던 시간에 대한 갭을 각자의 방식으로 메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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