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짱 - 발레 = 0
발레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1년 6개월이다. 발레를 왜 이제야 만났지 싶을 정도로 발레는 나와 찰떡궁합이다. 발레가 갑자기 끼어든 나의 삶은 꽤 만족스럽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도 발레는 하러 간다. 시험공부를 하다가도 발레를 하러 간다. 발레는 팍팍한 나의 직장+대학원 삶의 한 줄기의 빛 그리고 낙이다.
내가 발레를 좋아하는 이유를 적어보자면,
1) 동작에 서정적인 감정을 실을 수 있다.
감정을 아름다운, 한 결과물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은 나에게는 중요하다. (내가 곡을 쓰고 앨범을 내는 것도 같은 결이다.) 그런데 발레는 무려! 운동을 하면서! 근육을 키우면서! 체력을 증진시키면서! (= 실용적인 측면을 충족하면서도!) 나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게다가 음악에도 약간의 서정성을 가미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우아한 음악에 맞춰 약간의 서정성을 담아 발레동작을 하는 것이 (조금 과장을 해보자면) 영혼에 물을 주는 느낌이다. 아, 글을 쓰면서 생각하는 지금도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하하.
2) 무엇보다도 아름답다.
대학생 시절, 무용과가 유명한 우리 학교에는 '무용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이 있었다. 운명이었을까, 예정된 이끌림이었을까 (you, you, you, you... super 이끌림...) 나는 계절학기로 '무용의 이해'를 들었고, 교수님이 말했다. 발레에서 중요한 것은 첫 번째도 우아함, 두 번째도 우아함, 세 번째도 우아함이라고.
몸에 딱 붙는 분홍색 타이즈, 검정 레오타드 소녀감성을 200% 충족시키는 우아한 옷을 입고, 2시간 동안 거울을 보며 우아한 동작을 하고 있자면, 나의 몸이 퍽 만족스럽다. 에펠탑 효과일지도 모르지만, 보면 볼수록 나의 몸이 마음에 든다. 거기다가 아름다운 음악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
아름다운 옷, 아름다운 동작, 아름다운 몸, 아름다운 음악. 뭐 하나 우아하지 않거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3) 마른 체형의 장점을 살릴 수 있다.
어디 가서 이야기하면 몰매를 맞겠지만, 나는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이다. 삶이 바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살이 자꾸 빠진다. 43kg 전후의 몸이 나는 딱 좋은데, 요즘은 계속 41kg대이다. 살이 조금만 더 찌면 좋겠는데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그런데 발레는 마른 것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니! 이것 참 럭키비키다.
4) 평화롭다.
정신없는 근무, 끊임없이 쏟아지는 대학원 과제, 시험, 논문, 읽지 않은 카톡... 발레를 하는 1-2시간만큼은 숨을 쉴 수 있다. 발레에 온전히 집중을 하니, 현실과 잠깐 떨어져 있을 수 있다. 거기다가 음악도 아름다우니 (팔, 등, 엉덩이, 허벅지, 발은 몹시 아프지만) 평화로움을 느낀다.
5) 꽤나 재능이 있다.
나는 운동신경이 없는 편이다. 학창 시절에도 미술, 음악은 좋아했지만 체육시간은 종종 지루했다. 힘이 없으니, 공 던지는 것, 공을 받는 것, 달리기 뭐 하나 잘하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내가 유일하게 갖춘 것이 '유연성'이었다. 다리를 일자로 뻗고, 팔을 뻗은 채로 앞으로 내려가는 신체 계측은 매번 내가 1등이었다. '유연성'은 신체계측하는 5초 외에는 28년 평생 써먹을 데가 없다가, 29살이 되던 해 발레를 만나면서 드디어 용도를 찾게 되었다! 힘이 없으나 섬세함을 갖춘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근육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동작을 구현하고, 감정을 실을 수 있었다. 또, 조금 더 많이 다리를 찢거나, 앞으로 내려갈 수도 있었다. 발레야, 사랑해!
*추신: 최근 리프레쉬 휴가 추첨이 떨어진 이래로 학업휴직을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괜한 고민처럼 느껴진다. 학업휴직은 무슨. 돈을 열심히 많이 벌어서 예쁜 레오타드나 많이 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