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고2 말 전국 모의고사
어릴 땐 공부를 곧 잘했었다. 그때 당시엔 몰랐지만 초등학교에서 우리 엄마의 치맛바람도 셌었던 것 같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세가 기울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가야 했고 내 학업은 뒷전에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중학교 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의 평균 점수를 부모님께서 확인하셨기에 난 시험기간만 되면 거의 일주일 동안 밤낮이 바뀌는 생활을 하면서 평균 85점 정도는 유지할 후 있었고 그건 부모님께 내가 뒤처지지 않고 있다는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그런 점수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내 공부습관은 변하지 않았고 내 평균점수 또한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반에서는 항상 10등 안에 드는 점수였다. 아마 많은 고등학생들이 비슷하게 느꼈듯이 고2인 나에게 대학은 멀리 느껴졌고 서울에 살았기에 서울 안에 있는 대학에 가는 건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고2가 다 지나가는 한 겨울날, 전국 모의고사를 치렀다. 시험을 열심히 치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받아본 성적표에는 처참한 점수가 있었다. 수학 4점. 2점짜리 두 개 맞은 것이었다. 그것도 열심히 풀어서. 내가 기억하기로 과학도 30점대였고 영어도 30점대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언어는 50점대? 그렇게 전체를 합친 점수가 400점 만점에 100점이 겨우 넘었다. 수능이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런 점수라니. 심각했다. 처음으로 내 미래가 심각하게 느껴졌다. 공부를 하긴 해야 되겠는데 그때까진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위한 벼락치기가 전부였던 내 공부방식 때문에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목표를 잡자 ‘ 그동안 장래희망도 불문 명했고 목표의식은 없었다. 그럼 나는 도대체 무엇이 되고 싶을까 하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난 사람을 돕는 걸 좋아한다. 사람을 도우면서 살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이 있을까. 의사가 되면 어떨까 싶었다. 당시에 허준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나도 “양의학”을 하면서 사람 피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 한의사가 되어야겠다. 그 당시에 경희대 한의대를 들어가는 건 거의 일반 의대만큼 힘들었다. 그날 나는 컴퓨터로 경희대의 정문 사진을 출력했다.
그 사진을 내 공책 앞 장에 붙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경희대 한의대를 가서 한의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난 미국의 대학병원에서 정형외과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