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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kman Jun 01. 2024

미국에서 의사가 되기 위한 여정

시작은 대한민국 육군부대 안, 남들이 다 잠든 사이

미국으로 건너갈 생각을 했을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영어였다. 한국에서 쭉 자라온 내가 20대에 미국에 의사가 되기 위해 가는 건 마치 불가능처럼 보였다. 아마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10명 중의 10명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나에겐 세상 사람들이 정해놓은 기준이 잘못됐음을 내 스스로의 노력으로 증명해 낸 전적이 있었다. 나는 고3 때 일 년 공부해서 수능성적을 100점 이상 올리지 않았던가.  세상과의 싸움에서 1전 1승이었다. 이미 승리?를 맛본 사람으로서 내 땀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강한 확신이 있었다.


게다가 아직 군복무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군들과 함께 지내면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카투사라는 옵션이 있었고 미국에 갈 준비를 하는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카투사에 지원하려면 토익 700점을 넘겨야 했다. 1-2달 열심히 공부한 결과 토익 700점을 간신히 넘겼고 카투사에 지원했다. 그 당시에 추첨방식으로 카투사를 선발했고 나는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받은 소식은 실망스럽게도 불합격이었다. 당시에 어학병으로 지원하려면 토익 900점이 필요했기에 나는 일반병사로 육군에 입대했다.


한 달의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자대로 배치를 받았고 공대에 속한 건축학과를 전공한 탓에 공병이라는 보직을 받았고 김해공항에 있는 공군부대 안에 위치한 공병대대로 배치를 받았다. 대대에서 또 한 중대로 배치받고 또다시 한 소대로 배치받으면서 내가 2년 동안 지낼 곳이 정해졌다. 바짝 긴장을 한 상태로 첫날을 보냈고 잠이 들었다. 분대장이 조용히 나를 깨웠고 나를 데리고 행정반으로 갔다.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뽀글이 (봉지라면 안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만든 라면)였다. 분대장은 나보다 한 살 어렸음에도 엄청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긴장을 풀어주려고 그랬는지 뽀글이를 먹이고 다시 자러 보냈다.


자대배치를 받고 나서 몇 달간 열심히 군생활에 적응하였다. 어떻게 하면 이 군생활을 알차게 보내면서 내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연등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연등은 군대에서 10시에 모두 취침을 할 때 12시까지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등병으로 엄청난 용기를 냈던 것 같다. 분대장에서 문의를 했고 결국엔 승인을 받아 남들이 다 자는 시간에 영어공부를 했다. 조그마한 수첩에 영어단어를 적고 그 뜻과 예문을 적어서 항상 가지고 다녔고 일과시간에도 중간에 짬짬이 열어보면서 영어단어를 외었다. 군대에 있으면서 또 한 가지 목표가 책을 많이 읽는 것이었다. 1년에 100권 읽기를 목표로 정해서 부대 내에 위치한 작은 도서관에 장르를 불문하며 책을 읽었다. 몸은 군대라는 통제된 환경 속에서 살고 있었지만 군대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가 되가 위한 꿈에 마음이 벅찼고 하루하루를 알차게 채워갔다.


나는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을까 고민하던 중 아무래도 수술을 하는 외과의사가 내 성격에 맞는 것 같았다. 외과의사에게 손은 거의 생명과도 같은 몸의 일부분이고 외과의사의 수술실력을 손의 정교함, 안정감 그리고 빠른 손놀림으로 유추한다면 Gifted Hand라는 책이 있을 법했다. 아니나 다를까 존스홉킨스에서 소아신경외과 교수로 있는 흑인의사 벤자민 카슨이 쓴 Gifted Hand라는 책이 있었고 미국에서 의사가 되길 꿈꾸는 나에겐 엄청난 영감을 주는 책이었다.


군대에서 맡은 보직에 충실하면서 짬짬이 하는 영어공부는 항상 부족하게 느끼던 차에 다른 중대로 새로운 병사가 들어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병사는 미국의 영주권자였고 미국에서 어렸을 때부터 자라서 대학교와 대학원을 나온 인재였다. 같은 중대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했지만 아쉬운 대로 화장실에서 대걸레를 빨 때건 체력단련실에서 마주치건 아는 척을 했고 영어를 조금이라도 배우려고 했다. 일병쯤 되었을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한강 아래에 있는 육군부대들이 재개편 소식이 들렸다. 그 말인즉슨 소속 대대나 중대가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이었고 기적과도 같이 그 미국에서 온 병사가 내 후임이 되었고 그 후임은 내가 제대할 때까지 영어로 쓴 일기를 첨삭해 주었고 내  Writing skill은 마치 개인 영어과외를 받은 것 마냥 향상이 되었다.


그렇게 제대를 한 뒤 나는 미국에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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