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음악의 시작과 함께 탄생한 오페라는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현실적인 줄거리, 과도한 무대 장치, 그리고 음악의 아름다움이 극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반발 속에서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 정가극)라는 새로운 장르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페라 세리아는 시인 아포스톨로 제노(Apostolo Zeno) 등의 개혁적인 대본가들이 고전 비극에 주목하며 복잡한 줄거리를 단순하게 축약하는 데 공헌하면서 확립되었다.
오페라 세리아의 특징은 항상 고대 역사나 신화에서 가져왔으며, 신보다는 인간의 도덕성과 영웅적인 행위에 초점을 맞추었다. 프랑스 서정비극과 달리 합창과 춤이 거의 배제되었으며, 핵심은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명확한 교체에 있었다.
레치타티보(Recitativo): 극의 줄거리와 대화를 빠르게 진행시키는 부분.
아리아(Aria): 인물의 감정이나 생각을 멈춰서 표현하는 부분.
오페라 세리아에서 아리아는 매우 길고 중요했으며, 이는 모든 관심이 뛰어난 기교와 표현력을 가진 가수에게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가수들은 즉흥적인 장식(Improvisation)을 넣어 자신의 기량을 과시할 수 있도록 훈련받았다.
특히 왕, 장군 등 남자 주인공 배역(Heroic role)이 소프라노나 알토 카스트라토(Castrato)에 의해 불렸다. 이는 카스트라토가 지닌 가공할 만한 성량과 압도적인 기교가 바로크 시대의 이상적인 영웅상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바로크 말기, 오페라 세리아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장르였으며, 안토니오 비발디(Vivaldi), 요한 아돌프 하세(Hasse) 등 수많은 작곡가들이 활동했다. 특히 영국 런던에서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 F. Handel)이 아리오스티(Ariosti)나 보논치니(Bononcini)와 같은 이탈리아 작곡가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이 장르를 성공적으로 이끌게 된다.
이러한 양식은 유럽 전역에서 유행했으나, 지나치게 획일화된 구조(Da Capo Aria의 반복)로 인해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비판은 훗날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C. W. Gluck)가 '음악은 극의 내용에 봉사해야 한다'는 원칙 하에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경계를 허무는 오페라 개혁을 단행하는 토대가 되었다.
협주곡(Concerto) 장르는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성숙한 경지에 이르렀다. 특히 토마조 알비노니(Tomaso Albinoni)는 '빠름-느림-빠름'이라는 3악장 형식을 도입한 선구자 중 한명으로, 협주곡 형식의 표준화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는 바로크 협주곡을 정점에 올려 놓은 인물이다. 그는 3개 악장에 더욱 뚜렷한 개성을 부여하고, 솔로 기교의 극대화, 그리고 음량과 텍스처의 뚜렷한 대조를 통해 협주곡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비발디가 정립한 리토르넬로 형식(Ritornello Form)은 '전체 연주(Tutti) → 독주(Solo) → 전체 연주 → 독주 → 전체 연주'의 구조를 반복하여 1악장의 표준이 되었다. 리토르넬로(전체 연주부)가 곡의 주제를 제시하고 통일감을 부여하는 동안, 독주 부분이 화려한 기교를 선보여 구조적 안정감과 극적인 대비를 동시에 확보했다.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비발디의 협주곡은 연주자의 기교를 과시하는 후대 협주곡의 시초를 열었으며, 그의 형식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 S. Bach)와 게오르크 필립 텔레만(G. P. Telemann) 등 독일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유럽 전역의 음악 어법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외에도 피에트로 로카텔리(Pietro Locatelli)나 주제페 타르티니(Giuseppe Tartini) 등의 거장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등장하여 바이올린의 전성시대를 이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