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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혜정 Oct 01. 2024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프랑스 초연 감상기 (1)

‘보헤미안’을 통해 만난 새로운 세계


9월이 되고 여름방학 동안 멈췄던 뮤지컬 동아리 활동이 다시 시작되었다. 5월에 동아리가 새로 만들어져 두 달간 활동한 후 방학 동안 동아리 전체가 휴식기를 가졌고, 이제 새 학기와 함께 다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뮤지컬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2023년에 일본에서 본 뮤지컬 <팬텀>이다.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오케스트라의 연주, 그리고 무대 연출이 하나로 어우러져 만들어낸 깊은 울림에 매료되어 그때부터 뮤지컬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후 국내에서는 <레베카>, <몬테크리스토>, <마리 앙투아네트>를, 일본에서는 <루팡 ~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의 비밀~>을 감상했다.     


올해 5월에 서울로 2박 3일 동안 나들이 겸 여행을 갔을 때 마지막 일정으로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았다. 내용이 인상적이었다기보다는 음악과 현장이 주는 여운이 강했다. 그 여운을 안고 비행기에 올라 집으로 돌아왔고, 집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뮤지컬에 대한 감동이 남아 있어 대학에서 직접 뮤지컬을 할 기회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 신생 뮤지컬 동아리가 창설된다는 소식을 발견했고, 좋은 기회라 생각해 가입하기로 결정했다. 대학에 입학한 지 5년이 되었지만 동아리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동아리를 시작하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니 들어가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을 해 봐야 하지만, 이번에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라도 뮤지컬을 해 보고 싶다는 확고한 열정이 있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도전하였다.      


1학기 때는 인원수도 적고 소규모 공연만 진행했지만, 2학기가 되고는 동아리원이 늘면서 활동 규모도 커졌다. 이번 학기의 목표는 소극장에서 갈라 콘서트를 열고, 티켓 판매도 진행하는 것이다. 동아리가 이전보다 본격적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라 마음에 든다.     


9월 11일에 2학기 첫 미팅이 있었고, 9월 20일에는 공연할 노래를 정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무대에 서는 배우들은 11월 말 공연에서 솔로곡을 부를 기회가 주어지는데, 동아리 회장은 첫 미팅 때 노래방에서 동아리원들이 부른 노래를 듣고, 각자에게 어울리는 솔로곡을 4곡씩 추천해 주었다. 회장은 노래방에서 한 소절도 부르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노래를 주의 깊게 듣고 각자에게 어울리는 뮤지컬 곡을 신중하게 생각해 주었다. 한 명 한 명에게 잘 맞는 곡을 고민해 준 것이 감사했고, 타인을 배려하는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장은 내게 4곡 중 ‘보헤미안’을 가장 추천한다고 했다. 나는 그 곡을 잘 몰라서 나중에 들어보겠다고 했다.     


회의를 마치고 다음 일정을 위해 신제주로 향했다. 6시부터 신제주에서 일정이 있으면, 1-2시간 정도 일찍 가서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의 루틴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추천받은 곡인 ‘보헤미안’을 들어보기로 했다.     


‘보헤미안’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곡이었다. 내가 들은 것은 가수 바다(최성희) 씨가 부른 버전이었는데, 청명하고 낭랑한 목소리와 깊이 있는 가창력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곡 자체도 인상적이었는데, 스페인 춤곡의 느낌이 나는 클래식 기타 사운드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가사는 부모를 잃고 방랑하는 자유민의 이야기로, 방랑이 곧 자신의 삶이며 이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자유’로움에 ‘속박’된다는 역설적인 메시지와, 이를 반영한 경쾌하면서도 한스러운 곡조가 무척 독특하게 다가왔다.     


가사에는 ‘안달루시아’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엄마가 들려주던 얘기 그리운 그곳은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산과 그곳의 사람들 얘기

바다를 떠올릴 때면 나는 늘 그곳에 있지 상상 속의 안달루시아

그곳 안달루시아, 그 강물은 내 몸을 흐르고 나의 안달루시아, 언젠간 널 만나게 될까"


노래하는 인물의 어머니는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출신으로, 어머니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언젠가는 안달루시아에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안달루시아의 위치가 궁금해서 구글 지도에 검색해 보니 안달루시아는 스페인 남부에 위치해 있었다. 스페인어로는 Andalucía라고 표기하며, 주도는 세비야(Sevilla)라고 한다. 사진을 보니 무척 아름다워서 나도 언젠가는 안달루시아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 한 명이 다음 달에 스페인으로 수학여행을 가는데, 자신은 세비야에 가 보고 싶지만 마드리드에 방문하는 것으로 결정되어서 아쉽다고 했다. 세비야, 즉 안달루시아가 어떤 곳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나니 그 아쉬움에 공감이 간다.     


곡은 들었으니, 이 곡이 극의 어떤 맥락에서 나온 곡인지 알 필요가 있었다. ‘보헤미안’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 나오는 곡으로, 이 뮤지컬은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를 원작으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어 본 적은 없지만 그 이름만큼은 익숙했다. 여기서 ‘노트르담’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뜻한다고 하는데, 내가 ‘노트르담’이라는 표현을 들어 본 것은 다음 두 경우에서였다.     


하나는 일본판 뮤지컬 <팬텀>의 넘버 ‘비스트로’에서 나오는 가사이다. 가사는 “노트르담을 올려다보며 시간을 가슴에 새기네(ノートルダムを見上げながら時を胸に刻む)”인데, 이때 노트르담(ノートルダム)의 발음이 곡의 박자와 어우러지며 매력적이게 들려서 기억에 남았다.               

               

다른 하나는 ‘노트르담의 종(ノートルダムの鐘)’이라는 관악 연주곡이다. 신비로운 종소리로 시작해 엄숙한 중창이 이어지고, 특히 트럼펫과 호른의 소리가 인상적인 곡이다. 궁금한 독자는 ‘ノートルダムの鐘 吹奏楽(노트르담의 종 취주악)’을 유튜브에 검색하여 감상해 보기를 추천한다. 이 연주는 일본의 모리타 카즈히로(森田一浩)가 편곡했으며, 원곡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노트르담의 종(The Bells of Notre Dame)」의 사운드트랙이다. 「노트르담의 종」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를 기반으로 하지만 스토리와 세부 사항에서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나는 원작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를 읽어보기로 하고 밀리의 서재에 들어갔다. 예상대로, 세계 고전으로 손꼽히는 만큼 밀리의 서재에도 있었다. 사실 나는 서양 고전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이번에 뮤지컬 공연을 준비하면서 극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오랜만에 서양 고전에 손을 댄 것이다. 어릴 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만큼, 어른이 된 지금 그의 다른 작품을 읽으면 어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내가 읽은 것은 구름서재에서 출간된 뮤지컬클래식 시리즈 중 하나다. 책의 가장 앞부분에는 편역자의 말이 실려 있는데, 이 편역판에서는 원작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한 방대한 설명이 생략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작품의 주요 인물들과 작품에 깔린 정서에 대해서도 간략히 언급하고 있었다.     


책의 첫 부분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시테 섬에서 가장 우스꽝스럽고 추악하게 생긴 사람을 광대 교황으로 뽑는 ‘얼굴 일그러뜨리기 대회’ 장면이 나왔다. 그 대회에서 콰지모도가 가장 못생겼다는 이유로 광대 교황으로 뽑혔고, 광장에 에스메랄다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이 대회에서 그녀에게로 전환되는 부분까지 읽었다.     


이 에스메랄다가 바로 내가 준비해야 할 노래 ‘보헤미안’을 부르는 주인공이다. 시간이 되어 6시 일정에 맞춰 책 읽기를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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