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감 있는 밥상, 책방 골목, 리버 크루즈와 뜻밖의 음악
부산 첫 일정은 공항 근처에서 식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간판 없는 정식집이었다. 이름 그대로 간판이 없었고, 외관은 작은 구멍가게처럼 소박했다. 문은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갈색 미닫이문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쟁반에 음식을 담아 나르고 계셨고, 할머니께서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계셨다. 두 분의 정겨운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자리에 앉자 할아버지께서 시원한 보리차가 담긴 스테인리스 컵을 가져다 주셨다. 반찬은 국을 포함해 13가지였고, 고추된장절임, 가지무침, 달걀부침 등 입맛을 돋우는 집밥 같은 반찬들이 좋았다. 정성이 담긴 다양한 반찬을 맛보니 몸도 마음도 충만해졌고, 소박하면서도 호화로운 한 끼가 되었다. 가격도 예상보다 훨씬 저렴해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따뜻한 밥을 제공하고자 하는 주인 노부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자갈치역에 내리자 거리에서 생선 향이 풍겼다. 자갈치시장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였는데도 바다 냄새가 가득해서 신기했다. 우리는 먼저 국제시장으로 향했다. 국제시장은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갔던 옛날 시장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었고, 아동복 매장에서 엄마가 내 옷을 고르며 옷가게 아주머니와 이야기꽃을 피우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자갈치시장에서는 오징어, 문어, 대게, 조개, 도미 등 갖가지 수산물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 뒤 길을 걷다 발견한 남포문고라는 서점에서 책을 구경한 후,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헌책이 쌓여 있는 작은 책방들을 지나며 걷다 보니 하늘에서 비가 한두 방울씩 내리기 시작했다. 밖에 놓여 있던 나무 책꽂이는 비가 올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초록 우산을 쓰고 있었다.
밤 8시에는 해운대 리버 크루즈를 탔다. 수영강 선착장에서 출발한 요트는 우리를 광안리 바다 앞까지 데려다 주었고, 광안대교를 비롯한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기분 좋은 늦여름 밤바람을 맞으면서 강에서 튀어 오르는 숭어를 구경하는 것도 즐거웠다. 요트에서 내리고 나루공원을 산책하던 중, 평화롭던 기분에 뜻밖의 전율이 퍼졌다. 가까운 거리에서 관악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 왔기 때문이다. 나와 일행은 둘 다 음악을 좋아하고 같은 관악 합주단에서 활동하고 있었기에 그 소리에 반응해 자연스럽게 공연 무대로 달려갔다. 아쉽게도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연주가 끝나 있었지만, 같이 있는 사람과 무언가를 공유하며 순간적인 즐거움에 이끌려 달려간 것 자체가 매우 즐겁고 의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