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2022
스즈메의 문단속
< 너의 이름은 > < 날씨의 아이 > 에 이은 신카이 마코토의 재난 3부작의 마지막
1.
너의 이름은 에서는 우주에서 날아오는 유성
날씨의 아이 에서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
스즈메의 문단속 에서는 땅에서의 지진
우주 -> 하늘 -> 땅 으로 점점 더 가깝게 닥쳐오는 재난
그래서인지 제일 직접적으로 메세지를 던져주는 영화이다.
2.
작중 등장하는 다이진은 양, 사다이진은 음을 뜻한다고 한다.
음양(陰陽)이론은 천지 만물의 모든 것은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고 이 균형이 중요하다는 이론이다.
다이진과 사다이진은 작중 재난의 원인인 미미즈를 억제하는 요석의 역할을 하고 둘 중 하나만 빠져도 미미즈를 억제하지 못한다.
이는 정확히 인간의 마음에 비유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도 음양의 조화가 중요하다.
쉽게 말해 id와 superego의 사이에서 조화를 담당하는 ego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ego는 이런 조화를 위하여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주로 미성숙한 방어기제는 부정적 생각을 아예 부정해버리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성숙한 방어기제는 부정적 생각을 적절하게 받아들이고 인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영화의 주요 골자로 일맥상통한다.
영화는 ‘재난’을 겪은 개개인이 ‘요석’이 빠져 ‘저 세계’로부터 ‘미미즈’ 이 빠져나오는 것을 막는 과정이 반복된다.
‘재난’은 개인의 트라우마
문 건너편에 있는 ‘저 세계’는 인간의 무의식이며
‘요석’은 개인의 방어기제
‘미미즈’ 는 부정적 생각
트라우마를 겪은 인물들이 무의식 속에서 범람하는 부정적 생각들을 인지하고, 자신들의 요석을 이용해 이를 닫아가는 여정이다.
3.
인물
스즈메
그녀의 트라우마는 재난으로 인한 엄마의 죽음이다.
그래서 문 너머의 세계, 그녀의 무의식은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어린 스즈메가 엄마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울고 있다.
트라우마(엄마의 죽음)를 없었던 것(죽은 엄마가 다시 돌아와준다)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미성숙하고 원시적인 부정이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다. 그녀의 무의식 속 자신이 어린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이다.
또한 스즈메는 작중 항상 무모하며 자신의 목숨이 아깝지 않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생존자의 죄책감 (Survivor's Guilt) 에 고통받고 있는 모습이다.
소타
가문 대대로 토지시였던 본인의 핏줄로 인해 전국의 폐허를 돌아다니며 재난의 뒷문을 닫는다.
그리고 다이진에 의해 의자로 변신 당하고 스즈메와 동행하게 된다.
이 내용까지만 보면 마치 영웅적인 존재처럼 여겨지며 그의 현생에 대한 묘사가 없다.
하지만 영화 중반부에 나타나는 그의 현생은 도쿄에서 교사를 준비하는 그저 평범한 대학생이다.
아마 이전부터 자신의 현실과 운명 사이에서의 갈등에 회피해왔던 소타는 다이진에 의해 요석이 될 운명에 처하자 이 갈등이 두드러진다.
얼어가는 자신의 몸을 보며 운명을 받아들이는 듯 했지만, 스즈메의 외침에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인지하며 더이상 회피하지 않고 직면한다. (나는 사실 살고 싶어!!!~~)
스즈메의 이모
언니를 잃고 조카를 차마 버릴 수 없어 딸로 받아들였지만, 분명 그로 인해 본인의 삶을 챙기지 못한다.
스즈메 때문에 제대로 살지 못했다 라는 원망과 억울함이 오히려 스즈메에 대한 과도한 집착 + 관심으로 나타나 서로를 더욱 힘들게 한다.
사다이진에 빙의가 되어 자신의 부정적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면서 이를 받아들이고 스즈메와의 관계가 개선된다.
캐릭터 모두가 미성숙한 방어기제로 애써 부정하던 자기 마음 속의 음(陰)을 성숙하게 받아들이면서 끝내 구원받게 되는 서사 구조이다.
4.
그 외
영화에 대한 비판 중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게 스즈메가 도대체 왜 소타를 그렇게까지 구하려고 하는가 이다.
물론 단순히 잘생겨서는 절대 아닐 것이다.
엄마를 기다리는 꿈에서 깬 스즈메는 스쳐 지나가는 소타를 보고 기시감을 느낀다.
소타는 곧 스즈메의 꿈 속에서의 존재와 동일시된다.
스즈메에게 그는 자신의 엄마이자 구원자로 느꼈을 것이다.
그가 엄마의 유품인 어린이용 의자로 변한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소타를 위해 물불 가릴 것 없이 뛰어들던 스즈메의 행동 또한, 엄마에게 가지고 있는 생존자의 죄책감이 소타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4.
재난과 폐허
일본은 예로부터 잦은 지진으로 인해 수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나라이다.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동일본대지진 12년 후에 영화가 개봉했는데 자신의 딸이 대지진 당시에 태어났다고 한다.
작중 미미지를 소타와 스즈메만이 볼 수 있는 것처럼, 재난을 겪은 세대와 겪지 않은 세대의 차이를 보여준다.
재난의 상처가 잊혀진 공간은 폐허가 되고 미미즈가 발생하는 문은 폐허에 존재한다.
아마도 잊혀짐을 경계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매순간 오늘보다 어렸던 어제의 나를 때론 탓하고, 때론 어루만져주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그 미래의 나는 오늘의 나를 구원해줄 수 있을 정도로 훨씬 성숙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