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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시민 Jul 04. 2024

비움으로써 채워진다

어느 영상을 하나 보았다. 집 안에는 아무것도 없이, 그리고 숟가락마저 없이 지내며 자취하는 사람을 찾아간 영상이었다. 삼시 세끼는 회사에서 챙겨 먹었고 옷들도 모두 검정 옷으로 깔끔한 분위기를 챙겼고 부가적인 모든 것들은 단순화한 모습이었다. 영상을 보고 나도 무언가를 덜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나의 책장에 한편에 멈춰있던 사진 책들을 비우기로 했다.20살 시절, 혹은 그보다 더 어렸을 시기에 머물렀던 나의 사진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10권 이상 모두 10년 넘은 책들이었다. 


사진을 시작한 이유는 학생 때 시내를 다니다 보면 카메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부러웠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어깨에 메고 가는 모습이 멋져 보여 저것 꼭 갖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고 아버지의 젊은 시절 꿈과 맞물려 기회 좋게 내 손에 카메라가 들렸다. 친구들과 약속이 잡히면 무조건 카메라를 들고나갔다. 모든 풍경을 찍었다. 카페며, 음식이며, 친구들의 모습을 담았고 처음에는 사진 찍는 게 좋았고 그 이후에는 나의 꿈이 되었다. 


고등학교의 장래희망에는 사진작가가 꿈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학 강의를 일찍이부터 공부하였고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여름 방학 때도 보충수업을 들었어야 했는데 가지 않고 사진 찍으러 다녔거나 배울 수 있는 분께 시간을 들여 사진에 대한 공부를 했던 기억들도 난다. 재밌었고 즐거웠던 기억이 자리 잡혀있다. 


20살에는 관련 학과를 다녔다. 배우는 동안 생각보다 점수는 나오지 않았지만 생소한 배움이 많았다. 흑백 필름으로 촬영해 직접 약을 준비해 현상까지 해보는 작업을 해본 적도 있었고 학교 주변 건물들을 찍거나 다른 학과 사람들을 사진 촬영했던 기억도 난다. 그것 또한 재밌었다. 이제 학년이 올라갈수록 다른 과목들을 해보며 사진 하는 게 더 '잘 맞다'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이걸로 직업을 구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진을 어떻게 해야 뭘 어디로 가야 더 할 수 있는지 알면서도 모를 듯하였다. 광고는 밑바닥부터, 돈도 안 받고 일한다는 말이 떠돌았던 것 같았다. 그럼 다른 곳은 더 준대? 그러다 사진에 대한 흥미가 점점 잃어지며 나는 다른 길을 가기 위해 준비하였다. 


다른 길을 떠돌다 결국 내가 도착한 곳은 사진이었다. 다른 일을 하게 되니 사진이 눈에 밟혔다. 하고 있는 일은 사진보다도 더 흥미가 없었고 그 당시 내가 하던 일을 그만둔 후에 다니게 될 회사 사이트에 올려진 웨딩 사진을 보고 흔들렸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찍을 수 있는 점이 나에게는 해보고 싶다는 갈망이 들기 시작하였고 웨딩사진을 하게 되며 지금까지 쭉 웨딩 관련 사진업을 하게 되었다. 현재는 쉬고 있지만.


기나긴 사진의 시간을 보냈다. 길게 보낸 것치고는 아는 척할만한 실력도 없었다. 웨딩 사진을 찍으면서도 현타가 많이 왔었다. 기계적으로 찍고 매주 반복되고 좋은 곳, 예쁜 곳, 화려한 곳을 자주 가다 보면서 나도 그에 맞는 꾸밈 노동을 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수준도 되지 않았다. 사진만 잘 찍으면 됐지의 수준이 아닌 그 이상을 바라는 듯한 주변 환경에 난 지쳐 나가떨어졌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만 바뀌고 장소는 똑같고 내 실력도 똑같이 머무르며 앞으로 5년, 10년 이상을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혔다. ( 물론 이 일에 대해 열정적으로 하시는 분들도 많으실 걸 알고 있다. 나는 그런 분들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난 그렇지 못해서 한탄하는 것이 아닌, 내가 이 일에, 이 직업에 적성이 안 맞았다는 걸 적어본 것뿐이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겨우 좁은 시각으로 좁게 경험하면서 본 웨딩뿐이더라도 비싼 돈, 비싼 호텔, 비싼 사람. 그리고 끝. 그게 다였다.)  


현재는 모든 걸 놓았다. 다 내려놓았다. 나는 도망쳤지만 지금도 앞을 향해 나아가는 관련 업자들이 많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대단했고 또 대단함이 든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다는 것. 내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낑낑거리며 옷을 맞춰 입으려고 하니 힘들었을 뿐, 지금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한다.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저 많고 많은 부귀영화를 구경하며 지낼 수 있는 삶에서 벗어나 초라하고 빈틈 많은 위치한 곳으로 왔지만 현재에 만족하고 다시 채울 준비를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려고 한다. 이건 정신승리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나는 나의 낙원을 꾸려나가 더 높고 나은 방향성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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