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엄마의 삶이 담긴 이메일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시골에 가까운 도시라
대부분의 친구 어머니들은 가정 주부셨던 것과 달리
우리 엄마는 공무원이셨다.
그래서 엄마는 일찍부터 이메일을 사용하셨다.
아이디는 단순했다.
엄마 이름 이니셜에 사무실 전화번호 뒷자리 조합.
비밀번호는 더 단순했다.
엄마 이름 이니셜에 집 전화번호 뒷자리 조합.
그래서였을까?
우연히 내 메일함에 있던
엄마가 보내셨던 메일을 보게 되었고,
기억을 더듬어 엄마 계정에 로그인을 해보았다.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되는 일일 수 있으므로,
문제가 될 경우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엄마와 주고받은 내용은
대부분 학습 자료 프린트를 부탁하는 것이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감정 표현에 서툰 두 모녀가
각자의 방식대로 미안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요즘 엄마가 작은 일에도 약해지고 민감해지고 그런다 괜히..
(중략)
공들인 것도 없는 너를 바라보며 큰 꿈을 꾸는 이 엄마도 밉고,
조금 전에 다녀온 외갓집에도 노인들만 오도카니 남아있는 그 모습에 또 가슴이 먹먹해지고....
이 세상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진 것처럼 가는 길이 더디구나
엄마 벌써 이렇게 지치면 안 되는데,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는 데 말이다.
엄마의 희망이었던 그 언제 적처럼 그런 모습으로 엄마 앞에 앉아주면 안 되겠니?
이 엄마는 너희들이 엄마처럼 가시밭길 같은 인생길 가는 걸 원치 않아.
남은 시간 90여 일이다.
지금보다 조금씩만 노력하면 벨벳처럼 부드럽고 꿈길처럼 평안한 길이 열리는데 ㅇㅇ아!
너는 충분히 해 낼 수 있는 머리가 있잖니
남은 90여 일 마지막으로 믿어보마 참 많이 아파했던 이 엄마의 가슴을 이젠 좀 쉬게 하고 싶구나.
ㅇㅇ아! 열심히 한번 해보자.
생의 마지막 기회다 생각하고, 알았지?
믿는다 ㅇㅇ이의 뒷심을!
아자아자 홧팅!“
나는 이 메일을 볼 때마다
엄마가 짊어졌던 인생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나를 비롯한 우리 형제자매들 뿐만 아니라
당신의 부모님까지 신경 쓰느라
몸이 열 개여도 부족했을
엄마의 50년 남짓한 인생.
그래서 그런지 우리 엄마는
남들이 100살까지 사는 동안 겪을 일을
50살 조금 넘게 사시면서 다 겪고
평온함을 찾아 일찍 가신 걸까 생각이 든다.
내년에 내 나이가
엄마가 나를 낳으셨을 적 나이와
딱 맞아떨어진다.
그만큼 의미 있는 내년을 위해서
엄마 뱃속에서 보호받으며
세상에 나올 채비를 하는 것과 같이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하며
안정적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엄마도 그러하기를 바랄 것이다.
엄마가 없으니
더 그러하기를 바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