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아트페어에 대한 고찰
2024.06.17
written by. EJ Hyun
2021년, 이듬해에 프리즈(Frieze) 아트페어가 서울에 들어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우리나라의 위상이 정말 달라졌구나’였다. 어렸을 때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큰 아트페어 중 하나가 서울에 유치된다고 하니 감개무량할 따름이었다.
*심지어 그다음 해에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미술관중 하나인 LACMA에서 한국 근현대 미술전이 예정되어 있다 하니 가슴속에 없던 애국심도 뜨겁게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매년 UBS에서 출간되는 세계 미술시장 리포트를 보면 미국, 중국, 영국이 세계 미술시장 파이의 약 70%를 차지하고, 남은 30%를 다른 국가들이 쪼개먹고 있는 것이 미술계의 현실이다. 2021년에도 마찬가지이긴 했으나, 올해 출간된 2023년 리포트를 보면 일본이 전체 시장의 약 1%를 차지하고 있고, 프리즈 개최 이후에도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규모는 1% 미만의 수많은 ‘Other’들 중에 하나 정도이다.
*그 와중에 미국은 혼자 42%를 차지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도대체 왜 하필 우리나라에 프리즈가 들어올까?’하는 의구심이 제일 먼저 들지 않는가?
2021년을 돌아보면 그 씨앗을 유추해 볼 수 있다.
2021년은 그동안 미술계가 보지 못했던 이례적인 일들의 연속이었다.
1.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NFT라 불리는 디지털 아트가 암호화폐 시장을 넘어서 크리스티즈(Christie’s) 옥션에서 6천9백만 달러에 판매되기도 했으며, 한국 작가들이 만든 NFT프로젝트들도 다수 성공하기 시작했다.
2. 이건희 컬렉션의 존재가 공개됨과 동시에 국고로 환원되는 과정에서 오고 가는 세금문제가 미술 전문 외신에서 다뤄지기도 했다(해외에선 흔히 볼 수 없는 사례인 만큼 집중되었던 듯하다).
3. 폭풍 같던 코로나19의 여파가 어느 정도 잠잠해짐과 동시에 신생 미술공간들이 우후죽순 탄생하기도 했으며, 그동안 개최하지 못했던 각종 미술 행사들이 재개를 시작하기도 했다. 프리즈와 키아프(Kiaf)의 파트너십에 이어서, 해외 유명 갤러리들이 서울에 공간을 내고 개관전을 열기 시작했다.
4. 한국에 대한 관심이 쏠리는 것과 동시에, 아시아의 미술 허브라 불리는 홍콩은 민주화 시위와 중국화 정책이 심화되어 외국 자본이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고, 이에 보란 듯이 통계청에서 제공되는 ‘미술시장실태조사표’를 보면 대한민국에서 연간 약 3만 점 정도 판매되던 미술품의 수가 불과 1년 사이에 1억 점을 돌파하게 된다.
5. 서울옥션의 주가는 근 5년 사이 처음으로 1만 원대를 넘어, 3만 원대까지 치솟는 결과를 낳았다.
2021년 키아프는 20주년을 맞아 역대 가장 큰 규모로 페어를 열었으며, 신문에는 ‘완판'이라는 단어가 연일 이어졌다. 우리나라의 전체 미술시장은 8000억 원 대를 넘게 되며 전례 없는 호황의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프리즈 서울은 실로 놀라운 경험이긴 했다. 한국에 있으면서 그동안 SNS로만 엿볼 수 있었던 가고시안 갤러리(Gagosian Gallery)나 하우저 앤 워스(Hauser and Wirth) 같은 세계적인 갤러리들의 이름들을 서울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수많은 작가들의 실물작품들을 볼 수 있었고, 미술작품들을 보겠다고 시간 예약을 하고 줄을 서다니, 한국에서 미술이라는 매체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다. 처음 열린 프리즈 서울에서 추산되는 거래 금액이 약 7000억 원 안팎이라고 하니, 이미 우리나라 전체 미술시장의 85% 이상의 결과를 혼자 낸 셈이다. 성장의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 미술시장의 입장에서 프리즈는 더할 나위 없는 성공이다.
하지만 예술이 언제 돈의 논리만으로 움직여왔던가? 당연한 소리지만 아트페어는 어디까지나 미술품을 파는 것에 목적을 둔다, 그렇기 때문에 아트페어의 규모와 우리나라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대하는 안목과 같은 가치의 성장을 완벽히 동일시하기는 어렵다(사실인가 싶지만, 통계청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약 95%가 미술관을 포함한 문화예술 공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하니, 영화와 다르게 미술은 이미 소수를 위한 취미이다). 프리즈의 첫해엔 마치 서울의 시장조사를 하듯 가격대도 천차만별이었고, 여러 스타일의 작품들이 깔려있었지만, 두 번째 해부턴 너무 많은 형형색색의 팝아트와 정반대의 단색화 작품들이 코너를 돌 때마다 꼭 하나씩은 눈에 띄었다. 이런 작품들의 수준이 낮다는 얘기도 아니고 결국 희소성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라, 한국에서 아트페어를 대하는 해외 갤러리들이 선택한 세일즈 전략과 의도가 더 눈에 뜨이는 대목이라는 뜻이다.
*막말로 취향과 같은 문제에 고민하고 리스크를 질 필요가 없다면, 트렌드 분석만 하고 매년 그에 맞춰서 내놓으면 될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살 돈이 있는 건 아니지만
물론 돈은 무형의 가치를 보다 추상적이지 않게 만들어주는 기능을 하기도 하며, 그 가치를 공유하는 사회적 약속이기도 하다. 아트페어가 미술시장을 확대시키고 관심도를 올려놨다고는 하나, 예술을 즐기는 (예술가를 포함한) 절대다수가 돈의 논리에만 편승하려 한다면, 미술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작가로서 땔감이 없어 얼어 죽을 지경이 될 때까지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관철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을 통해 느끼는 소위 ‘감동’과 같은 감정이나, 시대상을 관통하고자 하는 작가들만의 고민들이 애매하고 진실되지 못한 것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면 미술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조작되기 가장 효율적인 도구로 전락된다. 좋은 의미던 나쁜 의미던, 돈은 사람의 마음을 울렁거리게도 만들며, 강력한 안대가 되기도 한다. 2016년 좀비 포멀리즘 사태 때도 미술시장의 기형적인 성장과 관련하여 악의적으로 미술품의 시세를 조작하던 컬렉터들 뿐만 아니라 그 매개체가 된 작품들에 대해서도 비판해 왔으며, NFT미술이라는 것도 결국 암호화폐 시장이 폭파되고 나서야 비로소 작품들 자체에 대해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이쯤 되면 프리즈가 세계 미술시장의 1%도 안 되는 서울을 굳이 골라서 왔다는 게 마냥 호재라고 느끼 지지 않을 수도 있다(아닌가? 아닐 수도).
그래서 왜 프리즈 아트페어에 대하여할 말이 많았는가?
나 역시 미대를 나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어떤 공식 같은 방향성을 찾으려고 했으나, 세상에 완벽한 하나의 답을(특히나 미술과 같은 분야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 마냥 올바르지 않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에, 프리즈를 보며 질문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만약 프리즈가 5년 계약이 끝나고 한국에서 철수하게 된다면 어떨까? 그랬을 때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절반 이상의 규모가 사라진다고 봐야 하는데, 그때 ‘한국미술’은 NFT와 같은 말로를 맞이할 것인가(이미 전 세계적으로 미술에 대한 관심도가 작년대비 감소하고 있다는 것은 세일즈 지표들만 조금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겨울이 오는가)? 애초에 한국인스러운 미술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 우리나라엔 이미 60개가 넘는 아트페어가 있다고 하는데, 미술이 모이는 장소에 평소 얼마나 관심이 있었을까? 좋은 미술과 취향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이며, 예술가들의 고민이 유의미하게 공감되기 위해선 어떠한 과정과 결과들이 필요한 것일까? 남은 95%를 위한 미술이 무엇이며, 필요하긴 한 것일까? 미술계의 호황이라는 것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 없듯이, 개인마다 편차야 있겠지만 언젠간 미술계를 영위하는 모두가 시험대에 오르게 되는 수많은 질문들 중 몇몇일 거라 생각한다.
당연히 이 모든 질문들에 답이 있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3개월 뒤엔 서울에서의 세 번째 프리즈 아트페어가 열리게 된다. 올해엔 어떤 작품들과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을지 기대감이 고조되는 것과 동시에, 이 글이 표현하고자 하는 질문들이 얼마나 드러나게 될지 개인적으로 더 궁금해진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조금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대화하며 필요한 질문들에 대한 적절한 답에 가까워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트페어를 통해 나름의 인사이트를 찾으려 하듯이, 앞으로 이와 같이 미술을 통해 바라본 사회의 모습들과, 나의 창작자로서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이야기와 고찰들을 이어 나가보려 한다
"Design and Growth in One M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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