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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오망 스튜디오 Jun 26. 2024

가장 한국적인 건축 1-3

Part. 1 근생건물




출처: 어릴적 살았던 아파트 단지내의 상가

가장 한국적인 건축이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한옥을 떠올리겠지만, 나한테 있어서 가장 한국적인 건축은 ‘5층 이하의 근생건물’ 그리고 ‘아파트 단지’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나는 한옥에서 살아본 경험은 없다. 나한테 한옥은 한국 사람으로서 매우 친숙하지만 막연하다. 궁궐이나 절을 방문했을 때의 경험 그리고 하회마을의 고택에서 하루 정도가 한옥에 대한 유일한 경험이다. 




기억이 있는 유치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어나서 위층 아래층에도 똑같은 형태를 띠고 있을 화장실을 쓰고, 비슷한 부엌에서 밥을 먹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경비아저씨와 인사를 나눴다. 동네 ‘상가’에 있는 학원에 가고, 아픈 날엔 병원에 가고, 어떤 날에는 머리를 깎았다. 우리 ‘단지’의 우리 ‘아파트’에 돌아와서 다시 경비아저씨와 인사하고, 나한테 무언의 (때때로는 대놓고) 눈치를 주는 아랫집 아줌마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하루 속의 공간들은 지금도 한국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건물들이다.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공간이라, 지인의 '집’에 가건, 처음 가보는 상가에 가던, 화장실이 어디 있을지 정도는 대충 느낌이 온다. 


구글 이미지 서치: children's drawing of a house


크레파스로 건물을 열심히 그렸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건축가가 되고 싶었고, 결국 건축과를 진학하고 대학원에 가고, 여러 나라에서 건축일을 하고 대학에서 잠깐이나마 강의했지만. 정작 나의 삶과 가장 밀접했던 건물들에 대해서는 그 오랜 시간 동안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크레파스로 그린 건물들도, 대학교, 대학원에서 그리고 해외의 유명한 건축사무소에서 업무로 주어졌던 건물들도 그리고 내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한테 디자인하라고 한 건물들도 근생상가나 아파트 단지였던 적은 없다.

  

하지만, 한국의 젊은 건축가에게 가장 의뢰받을 가능성이 높은 건물은 5층 근생건물이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건물주가 될 만한 사람이 접근하기 가장 현실적인 규모의 건물 사이즈가 5층짜리 근생건물이다. 단독주택은 한국의 도심에서 보기 어렵다. 있다 하더라도 예전부터 있던 오래된 건물이거나, 서울 같은 경우에는 일부 지역에 한정적으로 있다. 아파트나 빌라 같은 공동주택이 우리에겐 훨씬 친근한 생활공간이고, 비싼 땅에 임대수익을 포기하고 온전히 나를 위한 2층, 3층의 단독주택을 짓는 경우는 너무나 드물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아파트를 사랑한다. 층간소음이라는 사회이슈도 있지만, 편리하고 효율적인 아파트를 한국인 대다수가 원한다. 


출처: 홍성우 작가 - apartment, movement of light 3


5층 근생건물은 ‘멋있는 건물’로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건물이다. 날렵하지도 그렇다고 넓게 무게감 있는 비율도 아닐뿐더러, 무엇이 들어올지 모르는 건물을 디자인하라고 하면 겁이 나기 시작한다. 1층부터 5층까지 혹은 4층까지(5층은 건물주가 사는 경우도 있으니까) 현란한 형형색색의 간판이 건물을 가득 덮을 생각 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참여했던 것은 아니지만, 아파트 단지에 대해 고민해 본 경험은 의외로 네덜란드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있었다. 입사 통보 후에 처음으로 네덜란드에 도착해서 사무실 사람들이 나한테 질문한 건 ‘엄마’ 아파트는 도대체 언제 짓냐는 거였다. ‘엄마?’ 아파트가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갱? 남(Gangnam)’에 있는 아파트 단지라고 얘기했을 때, 비로소 은마(Eunma) 아파트라는 것을 눈치챘다. 내가 근무했던 네덜란드 사무소는 은마아파트 계획안을 내가 일하기 1년 전에 당선했었고, 기대와는 달리 당선 이후에도 건물은 지어지지 않고 있으니. 한국에서 온 새 직원한테 물어본 것이었다. 유엔스튜디오(UNStudio)의 은마 아파트 계획안은 개인적으로 과격해 보이지만, 우리에게 당연해 보이는 몇 가지가 없다 보니 나름 멋있는 듯한 기분을 준다. 


출처: UNStudio - 은마 아파트 프로젝트


계획안에는 우선 아파트 브랜드가 없다. 래미안, 자이, 아크로라는 입주민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건설사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건축가가 디자인한 것이다 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영어 단지명 + 아파트 브랜드가 거대하게 표기되어 있는 아파트 게이트나 아파트 브랜드가 추구하는 색상 혹은 브랜드명이 동마다 붙어있지 않다. 두 번째로 101동 102동과 같은 어디서도 편하게 우리 동을 알 수 있는 동에 표기가 없다. 마지막으로 단지 내의 각각의 아파트가 나름의 개성을 주기 위해 다른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가운데의 타워 형태의 아파트 그리고 외곽 쪽에는 낮고 긴 형태의 아파트를 두는 등, 최대의 인원에게 가장 효율적이고 평등하게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의도 보단 개성을 심어주려고 하는 노력이 보였다. 네덜란드 사무소의 외국인들이 제안한 설계안이 실제로 지어질지는 잘 모르겠다. 복잡한 설계로 인한 높은 건축비 그리고 그에 따른 조합원들에게 돌아갈 적은 이익들이 있을 수도 있고, 지금까지 여러 차례의 아파트를 짓는 시행착오를 통해 최적화된 한국형 공간레이아웃이 적용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파트 단지 그리고 5층 근생건물에 대해 나쁘다거나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실제로 아파트 단지와 5층 근생건물은 한국에서 가장 보기 쉬운 타입의 건축물이고 한국인 특유의 효율화를 통해 최적화된 형태가 되었다. 다만 효율화와 최적화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졌고 도시나 건축적인 부분에서 논의되지 않았다고 본다. 이 두 가지의 한국 특유의 건축 형태에 대한 나의 건축적 고민에 대하여 앞으로의 글들을 통하여 얘기해보고자 한다.



2024.06.26

Written by Jae Ju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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