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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옌 Jun 02. 2024

나의 시베리아 생존기(2)

계란 엄마 이거(?)

대망의 러시아. 그것도 시베리아.

당연히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으니 말을 못 하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급하게 오는 바람에 짐 준비도 부족했지만, 무엇보다 언어가 제일 부족했다.


알파벳도 순서대로 잘 모르는 상태로 도착했고,

인사말도 어려워 아는 거라곤 "스파시바(고맙습니다)" 밖에 없는 상태로 시베리아땅에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나의 유일한 희망인 한국언니가 가르쳐준 첫 단어 '에따(이거)'.

당시 우리 학교 기숙사에는 식당이 따로 없고 1층에 자그마하게 매점이 있었다.

매점 내부는 사진처럼 생겼는데 안쪽에 점원이 서있어서 "이거주세요, 저거주세요." 말을 해야 살 수 있었다.

게다가 할머니가 앉아있어서 영어는 아예 안 통했다.

근데 작은 매점에 우유, 고기부터 시작해서 샐러드, 라면 등등 술 빼고는 다 팔았는데 어찌나 따닥따닥 붙어있는지 "에따(이거)"로 구입하기가 쉽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리하여 매점 가는 일이 아주 공부의 연속이었다.

"다이쩨 므녜, 빠좔루이스따, ...(...주세요)"

를 기본으로 저 ...에 들어갈 단어를 찾고 외워서 중얼거리며 매점을 향해야했다.

너무 어려운 단어는 손바닥에 적어가서 보여주기도 했다.

가끔 내려가다 까먹으면 다시 올라가서 확인하고 다시 내려갔다.

내 방이 2층인 게 참 다행인 순간들이었다.


하루는 닭다리가 너무 먹고 싶었다.

닭다리는 그나마 앞의 유리진열대에 있어서 '에따'로 가능하겠다 싶어서 일단 내려갔다.

근데 닭다리가 안 보이는 거다. 있는지 물어봐야 했다.

이 질문도

"우 바스 예스치 ....?(...이 있습니까?)"

를 기본으로 뒤에 ... 을 알면 된다.

아뿔사...근데 할머니가 영어 '치킨'을 못 알아들으신다...

순간 고민하다 아는 단어를 조합해 본다.

"야이쯔오(달걀) 마마(엄마) (다리를 들어 가리키며) 에따!!"

문맥도 문법도 단어도 무시한 이 근본 없는 러시아어를 할머니는 이해하지 못했고 슬며시 계란 내어주었다. 나는 그날, 무지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며 계란을 삶아 먹었다.


의외로 이 부끄러운 경험은 훗날 나의 언어자신감이 되었다.

내가 " 계란 엄마 이거" 도 했는데 무슨 말이 부끄럽냐는 생각에 사람들 앞에 문법적으로나 단어를 몰라도 러시아어를 자신감 있게 내뱉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또한 단기교환학생을 왔거나 단기연수를 온 사람들이 언어에 대해 고민할 때 그들에게 용기를 복돋아줄 수 있는 좋은 에피소드로 활용했다.


언어는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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