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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 Jun 24. 2024

5.7 다시 미국으로

어떻게 보면 커리어에서 세 번째의 실패야.

D사에서 기업대출 부분으로 옮기자마자 팀 전체가 레이오프 되었을 때가 첫 번째이고 뉴욕 A사로 이직 후 내가 맡은 분야가 회사에서 아무도 관심을 갖아주지 않는 분야라는 걸 깨달았을 때 그리고 협력사인 C사와의 파트너십이 깨어지면서 대량 레이오프가 시작.. Home grown 컬쳐인 회사에 외부에서 들어온 별 볼 일 없는 분야를 맡고 있던 나를 사람들이 테스트하기 시작했을 때.. 그래도 이 둘은 결론적으로 오히려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어.

그게 이번에도 가능할까?


사실 주재원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내 커리어의 컨트롤이 남의 손에 있다는 것이야. 미국이었으면 회사 내에서 입지가 위험하다고 느껴졌을 때 내부에서 다른 조직으로 옮기거나 정 싫으면 다른 회사로 옮기면 되니깐 미국에 괜히 포츈 500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듯 정말 우리 회사만한 아님 그보다 더 큰 회사가 널려있고 심지어 스타트업이나 좀 더 작은 회사로 옮겨도 오히려 몸값을 더 올리며 옮길 수도 있어. 심지어 같은 분야가 아닌 빅테크로 옮기기도 하니깐.


하지만 난 호주에 현 A사가 스폰서하는 취업비자로 온 상황이어서 다른 회사로 옮길 수가 없어. 내부에서의 Credit Risk분서에서는 오세아니아 책임자가 이미 나이기에 호주 내에서도 기회가 없었고. $2 밀리언 달러를 쓰면서 호주에 보냈는데 윗선에서 먼저 허락하지 않는 한 내가 3년도 안되어서 미국에 있는 다른 VP오프닝에 지원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어. 한마디로 내 목숨줄을 다른 사람들이 쥐고 있었지.


이제 내 롤은 호주에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하늘이 노래졌어. 나만 믿고 지구 정반대인 시드니로 날아와준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했고. 그래도 이 말은 이제 호주 이외에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내부 포지션을 지원해도 된다는 허가와 같아. 문제는 그 당시 VP 오프닝이 별로 없다는 것이야. 2021년 1분기에 딱 한포지션이 있었어. 크레딧 리스크가 아닌 상업 부분 상품개발 쪽에. 다행히 아는 분들이 힘도 써주시고 해서 최종 인터뷰까지 했지만 상품개발 경력이 없던 나보다 그 조직에서 자란 디렉터를 승진시키는 걸로 결정이 났어.


이때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던 거 같아. 무력한 기분이 들고 자존감이 바닥을 기고 있었어. 아마 가족들도 많이 불안해하고 있었겠지. 무엇보다 내가 호주에서 구조조정을 당하면 나는 비자스폰서가 없어지기에 비자가 없어져. 미국을 돌아가는 게 가장 좋지만 난 그동안 호주의 코로나 국경봉쇄 때문에 미국을 1년 넘게 가지 못하고 있었어. 미국영주권자로써 외국에 6개월 이상 체류하면 안 되는데. 입국심사관의 재량으로 나의 입국을 거절할 수도 있는 상황이야. 그럼 나에게 선택지는 한국밖에 없었어. 내 모든 삶과 커리어, 노후준비는 다 미국에 있는데..


그러다 내 가장 큰 스폰서인 D님과의 분기마다하던 1대 1 미팅하는 날이 왔어. 전에도 이야기했듯 D 씨는 이제 크레딧리스크 소속이 아니야 하지만 승진을 하셔서 CEO에게 직접 보고하는 높은 자리에 계셨어. 이미 D 씨는 모든 상황을 알고 계셨고 나에게 5월 안으로 미국으로 돌아오라고 했어. 일단 2021년 12월 31일까지 계약직 VP로 밑에 조직도 없고 혼자 해외사업부 프로젝트 컨설팅을 하는 일이라지만 실제로는 12월 31일까지 나를 배려해서 시간을 벌어준 거야. 그때까지 미국에 있으면서 다른 VP잡을 찾으라는 것이지. 그리고 처음 갈 때처럼 끝내주는 이주패키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주패키지를 지원해 주기로.


4월 말에 드디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결정되었고. 난 어차피 1월에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실무에서 배제되어 있던 상황이었어. 출근을 해도 할 일이 없었기에 마지막 거의 3달은 집에서 이메일이나 체크하고 뉴욕에 있는 본사사람들하고 네트워킹이나 하며 시간을 보냈어. 사길 노는 거지만 D 씨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살얼음을 걷는 느낌이었고. 그래도 날짜 정해지고는 나서는 여기서 사귄 친구들과 시간도 많이 보내고 마지막으로 멜버른에 가서 버켓리스트 중 하나였던 그레이크 오션로드 여행도 하며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냈어.


미국으로 돌아오는 날 2021년 4월 19일.

국경봉쇄 중인 호주이기에 공항은 정말 SF 좀비물/바이오물 영화처럼 너무 텅텅 비어있었어. ANA항공으로 동경경유 비행기였는데 그 큰 비행기에 승객이 6명 (그중 3이 우리 가족). 공항은 항상 설레고 신나는 느낌이었는데. 현재 내 상황처럼 쓸쓸한 풍경이었어.. 그래도 미국에서 오면 뭔가 길이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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