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기억법
영영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친구와 기억나지 않는 지인의 편지, 두 번 다시 읽기 어려운 자잘한 글씨의 편지는 더 꼼꼼히 읽어 기억의 저장고에 꾹꾹 눌러 담았다. 가능한 오래 기억하고 추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침침하고 피로한 눈을 찔끔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며 여러 날 추억을 재조명했다.
'내가 읽지 않을, 읽지 못할 편지를 마지막까지 간직한다는 게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자 '정리하자'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편지를 찢는 순간 추억과 함께 기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상자 속에 갇혀 있다 폐기 처분되는 것보다 '눈 더 나빠지기 전에' 정리하는 게 현명한 결정이라 생각했다. 마음을 다해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보내니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남겨진 편지는 지퍼백에 고이 넣어 민트 색 꽃무늬 상자에 담았다. 언제든 나와 만날 수 있도록.
책장 아래쪽 가장 넓은 칸, 손 닿지 않아 먼지가 쌓인 곳에서 해묵은 앨범이 자신이 펼쳐지길 기다렸다. 어느 때부터인가 연말이 되면 나이 먹는 앨범에 마음 쓰였다. 새해를 두어 번 보낸 어느 날 앨범도 봉인해제 했다.
사진은 껌딱지처럼 속지에 붙어 좀처럼 과거의 세상에서 나오지 않았다. 찢어지지 않게 하나씩 조심스럽게 떼냈다.
사진 속 인물은 돋보기를 껴도, 맨 눈으로 봐도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으며 거기가 어디며 왜 갔는지, 무엇을 했는지 사진 속 상황을 유추했다.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해 생뚱맞게 박혀 있는 사진은 입은 옷과 장소, 풍경을 유추해 추억을 연결시켰다. 기억이 재 탄생하는 순간이다.
'기억의 타임머신'을 탄 나는 '엄마미소'를 지으며 그 시절의 나와 오랜 시간 대면했다.
희미하게 보이는 사진도 언젠가 알아보지 못할 날이 오고 어렴풋한 기억은 사라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보지 못할 많은 사진을 대책 없이 간직하는 게 능사일까 싶다. 기억하고 싶은 대표성 있는 사진과 추억하고 싶은 사진을 별도로 추렸다. 아쉽지만 감흥 없는 사진은 작별인사를 하고 '기억의 저편'으로 보냈다.
끝까지 살아남은 사진은 지퍼백에 담겨 내 손안에 들려지길 기다린다. 스마트폰 갤러리에서 수시로 앨범을 꺼내보는 것처럼.
편지와 앨범을 정리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느꼈다. 명분은 분명 '눈 더 나빠지기 전에' 추억을 정리 정돈한다는 거였는데 사실은 강박증 때문은 아닌지 의문스러웠다.
강박증이 심할 때가 있었다. 그때는 그게 강박증 인지도 몰랐다. 단지 깔끔하게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정도라 여겼다. 하지만 스트레스 상황이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면 화가 났다. 관련 있는 물건은 눈앞에서 치워야 했고 부정적 사고를 유발하는 기록은 없애야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떤 명분이든 추억마저 정리한다면 마지막에 내게 남는 건 뭘까, 이러다 자신이 조금씩 서서히 사라지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치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때 나는 기억했다.
그건 불안한 감정일 뿐 나는 별개이고 기억이 사라진다고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상담사의 조언을.
그 후로는 정든 물건, 추억이 깃든 장소, 동물이나 사람과 헤어질 때도 나만의 애도방법으로 정성껏 작별인사를 한다. 그러면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다.
이번 일을 계기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편지와 사진을 없애면 그만큼 추억과 기억도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무거운 옷을 벗 듯, 미루고 미루던 숙제를 끝낸 것처럼 홀가분했다.
추억을 시기와 종류로 나눠 정리해서 기록하고 메모로 남기니 지난 시절의 내가 선명히 보였고 혼동스럽던 기억이 명확해졌다. 몇 살 때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학창 시절 친구들과 어떤 시간을 보내고 어떤 직장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일상을 알 수 있어 신기했다.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시작한 추억 정리가 지난 삶을 돌아보게 했고 오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분명한 이정표를 제시했다.
사진첩 속에서 나온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 청년시절의 나가 내게 묻는다.
"그때처럼 즐겁니?"
"그때처럼 열정이 있니?"
"지금 사랑하고 있니?"
나는 대답한다.
"당근이지, 당근일걸?, 당근이고 싶어!"
지금의 나는 '다시 리즈'를 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미래의 기억을 탄생시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