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홉 살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큰 시련을 겪었다. 아버지는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셨는지, 술에 의지하는 날들이 많아지셨고, 그로 인해 건강도 점점 나빠지셨다. 결국 간암이라는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렸기에 아버지의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집안의 분위기가 전과 다르게 무겁고 차가워졌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하고 밝던 가족의 일상은 어느새 사라지고, 집안에는 묵직한 침묵이 가득 찼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매일같이 일터로 나가셨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셨고, 집은 점점 더 조용하고 적막해졌다. 형 셋과 누나 하나가 있었지만, 나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형들은 이미 학업과 일을 위해 집을 떠났고, 누나도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어서 나는 사실상 10살부터 혼자 집에 남겨지게 되었다.
엄마가 낮에 일하실 때는 그나마 모든 게 좀 괜찮았다. 하지만 밤에 일을 나가시는 날이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엄마는 오후 5시에 집을 나서셨고, 그때부터 집안은 깊은 적막에 휩싸였다. 학교가 끝나면 집에 곧장 들어가기가 싫었다. 엄마가 없는 집은 너무 무섭고 쓸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외로움을 달랬다. 학교가 끝나면 마을 회관 마당에 가방을 던져두고 친구들과 논밭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그 순간만큼은 집에 혼자 있는 것도, 혼자 남겨진 기분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 해가 지면 친구들은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갔고, 나도 결국 혼자서 집으로 가야만 했다. 어둠이 깔린 길은 항상 나를 두렵게 했다. 어린 나에게 그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무서운 여정처럼 느껴졌다.
집에 도착하면,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허름한 집은 더없이 적막하고 무서웠다. 친구들의 집에서는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의 모습이 자연스러웠지만, 내게는 그런 따뜻함이 일주일씩 반복적으로 사라져 있었다. 집에 들어가면 불도 켜지지 않은 텅 빈 방과 차가운 공기만이 나를 맞이했고, 그 공기는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때로는 집 앞에서 뱀이나 두꺼비 같은 생물들을 마주치면 겁에 질려 오랫동안 문 앞에서 망설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 간절히 그리웠고, 엄마가 없는 밤의 고독과 두려움은 더 깊어졌다.
엄마는 내가 등교하고 나서야 퇴근하셨다. 아침이면 혼자 대충 아침을 먹고, 허겁지겁 도시락을 싸서 학교로 갔다. 엄마가 없으니 혼자 준비하는 게 익숙해졌고, 준비물이 있을 때는 전날 미리 챙겨두는 습관도 생겼다. 하지만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한 건 준비물뿐이었다. 정작 공부는 잘하지 않았고, 집에 오면 TV를 보거나 공책에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피곤해서 잠들기 일쑤였다.
그래서 시끌벅적한 학교에 가는 것이 나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혼자 있는 적막한 집보다는 공부는 싫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학교가 훨씬 더 편했고, 그 시간 속에서 잠시나마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운이 좋으면 출근하는 엄마와 마주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용돈을 쥐여주셨고, 그 순간만큼은 엄마와 잠시라도 함께 있는 것 같아 좋았다. 하지만 그 짧은 만남 뒤에 다시 혼자가 되는 시간은 여전히 외롭고 쓸쓸했다.
밤마다 혼자 남겨진 집에서, 나는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옛날 집의 벌어진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 소리에도 쉽게 놀랐고, 특히 애기 울음소리처럼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나 갑자기 마구 짖어대는 개소리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공포에 질린 채 밤을 지새운 적도 많았다. 그럴 때면 방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내가 정말로 혼자라는 생각이 더 크게 다가왔다. 형들도 없고, 누나도 없고, 무엇보다 엄마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홀로 남겨진 그 시간들은 너무나 길고,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어린 나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었다. 나는 엄마가 돌아오시기 전까지 그 적막한 집을 견뎌야만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내 마음속의 외로움도 더 커져갔다. 세상은 너무 크고, 나는 너무 작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힘들게 일을 다니시는 엄마를 생각하면서 나는 버텼다.
그 시간들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지만, 매일같이 반복되는 고독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고요한 밤들은, 마치 나를 계속해서 시험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렇게 고3이 될 때까지 쭉 혼자 있는 집을 견디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