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그러니까 국민학교 저학년때부터, 엄마가 야근하시는 날이면 나는 혼자 집에서 잠을 자야 했다. 우리 집은 시골에 있는 낡고 허름한 집이었고, 그곳에는 쥐들이 많았다. 시골의 오래된 집에 쥐들이 많은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우리 집은 특히 더 많았다. 집이 오래되고 군데군데 틈이 많아 쥐들이 드나들기 쉬웠던 것 같다.
밤이 되면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잠을 청하려 했다. 쥐들이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그 소리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쥐들이 벽 사이를 타고 다니거나 문틈을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도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가끔 쥐들이 방 안으로 들어와 내 주변을 지나갈 때도 있었지만, 나는 조용히 그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물론 쥐들의 움직임이 느껴지면 약간 긴장이 되긴 했지만, 그들이 내 곁을 지나가는 것을 이상할 정도로 차분하게 받아들였다. 두려움보다는, 그들이 언제 어떻게 다니는지 관찰하는 일이 더 익숙해졌다.
아침이 되면 또 다른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엌문을 열 때마다 쥐들이 사방으로 도망치는 것을 보곤 했지만, 나는 그 광경을 보고 놀라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무심하게 쥐들이 흩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장면은 마치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나는 그들의 움직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시작했다. 쥐들이 도망치는 그 모습은 어릴 적 나에게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무섭거나 충격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바삐 움직이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쥐들이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이 약간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에게 점점 익숙해졌다. 그들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약간 놀랄 때도 있었지만, 나는 그 소리에 크게 겁을 먹지는 않았다. 그들은 내 일상 속의 일부가 되었고, 나는 그들의 존재를 더 이상 불쾌하게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쥐들이 밤마다 집 안을 돌아다니는 소리가 나에게 묘한 위안이 되기도 했다. 혼자 있는 밤, 쥐들이 내 옆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것은 어쩐지 나와 함께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었다. 외로움과 고독이 느껴지는 그 시골집에서, 쥐들은 마치 조용히 내 곁을 지켜주는 작은 동료들처럼 여겨졌다. 쥐들이 나와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혼자 있지 않다는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그들은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어딘가 함께하는 존재로 다가왔다.
하지만 음식이 있는 부엌에서 쥐들이 돌아다니는 것은 위생상 문제가 될 수 있었고, 엄마는 쥐를 잡기 위해 군데군데 끈끈이를 놓았다. 덕분에 많은 쥐들을 잡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쥐들의 개체수는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만약, 지금 다시 쥐들과 마주친다면, 그때와는 다를 것 같다. 이제는 어릴 적 그 시절과는 달리 쥐들을 보면 혐오감이나 불쾌감을 먼저 느낄 것 같다. 쥐들이 집 안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위생에 대한 걱정과 함께 당장이라도 피하고 싶어질 것 같다. 그들이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꺼림칙하고 기분 나쁜 감정이 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린 시절에는 공존의 대상이었던 쥐들이, 지금은 그저 멀리하고 싶은 존재로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