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전문대 SW공학을 졸업한 후, 장애인이라서 취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대구에는 IT 회사가 적었기에 서울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도시에서의 시작은 두려웠지만, 더 넓은 기회를 찾아야 했다. 운 좋게 작은 IT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고, 처음에는 누나 집에 잠시 머물렀다. 가족의 도움은 큰 힘이 되었지만, 언제까지나 누나에게 의지할 수는 없었다. 몸이 불편한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위험한 모험이었고, 누나 집에서의 출퇴근은 큰 문제였다.
결국 회사 근처의 좁은 고시원에 방을 얻기로 결정했다. 회사와 가까워 아침마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지만, 고시원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주머니 사정도 넉넉하지 않아 가진 돈은 얼마 되지 않았고, 새로운 일상은 1.5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시작되었다. 낯설고 답답한 공간이었지만, 새로운 삶에 대한 약간의 설렘과 막연한 두려움이 공존했다. 벽에는 작은 창문 하나뿐이었고, 그나마도 옆 건물 벽을 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공간은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안식처였다.
매일 아침, 고시원의 복도는 이른 시간부터 분주했다. 다른 사람들은 출근 준비로 바빴지만, 나는 그들이 모두 떠나 조용해진 순간을 기다렸다. 부엌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전쟁터를 지나가는 것 같았다. 누군가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숨죽이며 복도를 지나, 재빨리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고 밥을 그릇에 담았다. 회사가 가까워 서두를 필요는 없었기에, 천천히 방으로 돌아와 홀로 식사를 했다. 그 방은 비록 작고 답답했지만, 유일하게 나를 받아주는 안식처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삭막한 벽을 바라보며 오늘도 무사히 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다시 부엌으로 가서 그릇을 신속하게 씻었다. 물소리가 크게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도 빨리 끝내기 위해 서둘렀다. 그다음에는 샤워실로 향했다. 다른 사람이 빨리 쓰라고 문을 두드리기 전에 재빨리 씻어야 했다.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마주침이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나만의 루틴을 철저히 지켜나갔다. 그렇게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 긴장과 경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회사에서는 업무에 몰두했다.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입사한 회사들은 대부분 영세한 작은 곳들이었다.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업무 강도가 너무 높아 몇 번이나 이직을 해야 했다. 이직할 때마다 새로운 회사 앞의 고시원으로 이사를 다녔다. 짐이라 해봐야 몇 벌의 옷과 책 몇 권이 전부였기에 이사는 비교적 간단했다. 하지만 낯선 공간에 적응하는 것은 늘 어려웠다. 고시원 방들은 하나같이 좁고 어두웠으며, 그 안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더욱 깊어졌다.
저녁이 되면 회사에서 일부러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고시원으로 돌아가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책상 앞에서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거나,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때로는 회사 옥상에 올라가 밤하늘을 바라보며 먼 미래를 그려보았다. 방으로 돌아오면, 좁은 공간에 나 자신이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나만의 질서와 규칙을 만들어갔다. 하루하루는 계획대로 흘렀고, 그런 반복에 익숙해졌다.
고독은 늘 곁에 있었지만, 그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텨나갔다. 주말에도 밖에 나가기보다는 고시원 방 안에서 TV를 보거나 개발 관련 블로그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마음 한구석의 외로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를 달랬다.
고시원에서의 5년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밤이었다. 불편함과 고독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썼지만, 작은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회사에서의 성취가 커질수록 고시원 생활은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내 능력은 인정받고 있었지만, 돌아갈 곳은 여전히 좁은 고시원 방이었다. 내가 선택한 길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이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믿음 하나로 버텼다.
그 시절의 나는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다. 고단하고 외로웠지만, 그 시간을 견뎌낸 내가 있었기에 가는 곳마다 능력을 인정받고 과분하게 많은 연봉을 받는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 비록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경험들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그때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길에서도, 그때의 나를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