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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이 없는 돛단배
Nov 10. 2024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함께 오랜 시간을 보냈던 친구들이 곧 각자의 길로 흩어져야 했다. 이제는 고향 친구처럼 편안한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아쉬움과 함께, 친구 만들기가 쉽지않은 나는 앞으로 많이 외롭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평소 즐겨 보던 연예 잡지 맨 뒷편의 펜팔란이 떠올랐다. ‘펜팔 친구가 있으면 조금이나마 덜 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작은 용기를 내어 펜팔 친구를 구하는 편지를 보내보기로 했다.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그저 한 번 시도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편지를 보낸 후에는 그 사실조차 잊고 지냈다.
그런데 며칠 뒤, 마루에 우체부 아저씨가 수십 통의 편지를 놓고 가시기 시작하셨다. 처음엔 정말 믿기지 않았다. ‘설마 내가 그 유명 잡지의 펜팔란에 실린 걸까?’ 궁금한 마음에 시내로 나가 잡지를 확인해 보니, 거기에 내 이름과 간단한 소개가 실려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도 신기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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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승일
생년월일: 1978년…
좋아하는 것: 락음악 감상, 그림 그리기, 015B, N.E.X.T...
서로 고민을 나누고,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펜팔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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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매일같이 우체부 아저씨는 “뭔 편지가 이리 많이 오노?”라며 마루 위에 수십 통의 편지를 놓고 가셨다. 그 편지들을 보며 설렘과 묘한 즐거움에 젖어들었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겨울방학 동안, 나는 매일같이 한 통 한 통의 편지를 따뜻한 방에 엎드려 읽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 생애 이렇게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거의 한 달 동안 매일 열 통이 넘는 편지가 도착했고, 그 속엔 50문 50답이나 자기소개를 글로 풀어낸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서로의 취향, 관심사, 생활 방식이 담긴 그 글들을 읽다 보니 마치 여러 친구들과 대화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 편지들 속에서 마음이 통할 수 있는 친구를 찾고 싶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읽어 내려갔다.
매일같이 수많은 편지를 하나씩 읽던 어느 날, 한 봉투를 열고 편지지를 펼치자 교복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여학생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친근함과 따뜻함이 느껴졌다. 밝은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얼굴과 따스한 눈빛은 그 순간 나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수많은 편지들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그 사진을 보고 있자니 묘한 설렘이 가슴 깊이 밀려왔고, 그날 밤 나는 자연스레 펜을 들어 그녀에게 답장을 썼다.
그리고 또 한 통의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나보다 한 살 어린 평범한 중학생이 썼다고는 믿기 어려운, 깊이 있고 세련된 문체의 글이었다. 시처럼 부드럽고 우아한 문장은 나를 단숨에 매료시켰고, 그 친구와 생각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이미 한 명의 펜팔 친구가 있었지만, 단순히 글을 주고받는 친구일 뿐인데, 두 사람과 동시에 편지를 나누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답장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사실 이 두 친구 외에도 나는 여러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 장애에 대해 솔직하게 담아내며 용기 내서 다가가고 싶었지만, 대부분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이 두 친구만이 답장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통, 때로는 2주에 한 통씩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주고받는 글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가슴 속 깊이 숨겨두었던 감정과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 속에서 나는 홀로가 아니라는 위안을 찾았고, 그 작고 따뜻한 교류는 내 마음에 잔잔한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 두 친구와 나누던 작은 글의 세계는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위로와 연결의 의미를 내게 일깨워주었고, 그들 덕분에 나는 다시 삶 속에서 따뜻한 활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두 친구와의 펜팔은 학창 시절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주었다. 편지를 열 때마다 느꼈던 설렘과 기쁨은 그 시절 내 삶을 풍요롭게 채워주었다. 한 친구와는 즐거운 일상과 고민을 함께 나누며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주고받았고, 또 다른 친구와는 속 깊은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털어놓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해 나갔다. 이렇게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감정의 깊이가 더해지며, 마치 한 편의 성장소설을 써 내려가는 듯한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나는 고달프고 힘들었던 사춘기 시절을 조금은 더 따뜻하고 다채롭게 보낼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 친구는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 더 이상 편지를 주고받을 수 없게 되었다. 아쉬움은 가슴에 무겁게 남았지만, 그 친구와 함께한 시간은 내게 깊고도 의미 있는 흔적을 남겼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와,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위로와 격려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내 안에 고요히 자리하고 있으며, 나를 지탱하는 소중한 기억이 되어 있다. 그 친구와의 시간은 단순한 추억을 넘어, 나를 한층 성숙하게 만들어 주었고, 그 친구는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깊은 의미를 지닌 존재로 남아 있다.
또 다른 친구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잠시 편지를 주고받지 않게 되었다. 그 친구와 나누던 글 속에서, 나는 점차 특별한 감정을 품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 감정은 단순한 우정 이상의 것이었고, 이성으로서 느끼는 마음이 크게 자라났다. 아마도 처음 편지 속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사랑에 빠졌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웃는 얼굴과 따뜻한 눈빛은 내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때부터 내 마음은 그 친구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마음을 고백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 감정이 내게만 속삭이는 비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저 혼자만의 짝사랑으로 간직한 채, 그 마음을 내 안에 묻어 두기로 했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야 할 시기를 맞이했고, 서로의 삶에서 조용히 멀어져 갔다. 함께한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 중요한 순간들이었으며, 그때만큼 다채롭고 의미 있었던 순간들은 없었다. 편지를 통해 나눈 사소한 일상과 진심 어린 속마음들, 그리고 그 속에 스며든 아련한 설렘과 그리움은 시간이 흘러도 색이 바래지 않는 추억으로 내 마음 한편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 시절, 그들은 단순한 펜팔 친구를 넘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시기에 삶을 채워 준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혼란스럽고 방황하던 시간 속에서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를 내 사춘기 시절을 따뜻하게 비춰주었고, 덕분에 나는 삶의 의지를 되찾고 그 시절을 무사히 이겨낼 수 있었다.
지금도 서랍 한 켠에 소중히 보관된 편지들을 가끔 꺼내어 읽어보면, 그 시절 느꼈던 설렘과 감동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들의 손길이 닿았던 한 줄 한 줄에서 여전히 빛나는 감정을 느끼며, 그 시절 나를 지탱해준 소중한 인연을 감사하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