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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돛이 없는 돛단배 Nov 10. 2024

작은 싸움들로 채워진 일상

장애인의 일상은 끝없이 밀려오는 어둠의 파도와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속에서 한 파도가 나를 덮치면 또 다른 파도가 이어졌고, 그 속에는 언제나 예기치 못한 새로운 고난이 숨어 있었다. 이 끝없는 반복 속에서 무기력함은 점점 더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가장 흔히 부딪히는 불편은 다름 아닌 전화였다. 낯선 번호로 오는 전화는 어차피 대화가 어려울 걸 알기에 대부분 받지 않았다. 수많은 전화가 단순한 스팸이겠지만, 가끔 중요한 전화가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놓친 전화는 불안함을 남겼다. 그 뒤에 중요한 전화였다는 걸 알게 되면 결국 형이나 누나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상황을 해결하곤 했지만, 매번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언어 장애로 인해 전화 한 통조차 나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란 걸 다시금 실감했다.


내가 직접 전화를 걸어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간단한 전화조차 스스로 통화하기 어렵다 보니 장애인 전화 서비스나 형, 누나에게 부탁하는 일이 반복되었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상적인 소통이 나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간단한 이야기라도 내 목소리로 직접 전할 수 없다는 현실은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무기력감으로 다가왔다.


이사를 자주 다니던 때, 집을 구하는 일도 항상 난관이었다.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에 올라와 5년간 고시원 생활 끝에 혼자 월세 집을 구하려고 나섰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부동산에서 홀대를 받거나 집주인에게 직접 거절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문을 닫아버리는 집주인 앞에서 느꼈던 당혹감과 상처는 결코 쉽게 치유되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결국 가족의 도움으로 집을 구해 계약까지 끝낸 후, 이사 당일에야 처음으로  집을 보게 되는 상황도 있었다.


가게나 식당에 들어가면 "오늘은 영업 안 해요"라는 핑계로 쫓겨나거나, "첫 손님이 장애인이면 장사가 안 된다"는 험한 말을 들었을 때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슈퍼에서 물건을 사면 잔돈을 하나하나 세어 주는 어르신을 만났을 때,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그 무심한 시선에 능력과 경험을 모두 무시당한 듯한 기분이 들며 분노와 좌절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사람들도 나를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건네지 않은 전단지 한 장이지만, 그 순간 나는 무언가 자격조차 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듯했다. 전단지를 받지 못한 것에 괜스레 상처받고, 초라해진 내 자신을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어르신들의 시선이나 혀를 차는 소리는 이제 너무나 익숙해졌다. 그들이 바라보는 내 모습은 그저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겠다. 그러나 그런 동정 어린 시선들이 오히려 내 자존감을 갉아먹고, 나를 더더욱 작아지게 만들었다. 나 또한 나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이었을 뿐인데, 그런 시선들이 더 이상 내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병원에서도 엑스레이 한 장 찍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몸이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는 의료진들, 결국 내 치료는 어렵다며 다른 병원으로 갈 것을 추천한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매일같이 맞서야 하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이 싸움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며 살아왔다. 오늘 하루도 그렇게 끝났다. 내일은 조금이라도 더 견디기 쉬운 날이 되기를, 그 작은 희망 하나만 붙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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