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 Jun 23. 2024

선생님! 저 무지개를 만들었어요.

[근무 시작 D+32] - 24/06/20


어느덧 근무를 시작한지 한 달이 되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기록하고 싶었지만 ... 퇴근만 하면 체력이 방전되어버리는 바람에 이제야 근무 중 있던 일을 회상해본다.


1. 선생님! 저 무지개를 만들었어요. 

저번 주 목요일에 있던 일. 아이들은 오전 간식을 먹고 있었다. 호주에서 오전 간식 시간은 morning tea time이다.(이름도 우아하다, tea time!) 

반달 모양의 잉글리시 머핀이 그 메뉴. Amelia는 빵을 크게 와앙 베어물더니 "선생님! 저 무지개를 만들었어요."라고 외쳤다. 곧이어 다른 아이들도 한 입 따라 베어물고는 무지개를 만들었다. 10개의 작은 무지개가 뜨는 교실이라니. 아이들의 상상력은 사랑스럽다.


2. 다 같은 무지개일까?

무지개가 뜨는 하늘을 관찰해본 적이 있는가? 와 무지개다. 일곱 색깔 무지개, 라고 넘겨짚지 말고 무지개를 한번 관찰해보자. 무지개가 빚어내는 빛깔은 날마다 다르다. 어떤 날은 빨간색 사이 희미한 핑크빛이 돋보이기도 하고, 어느 날은 남색이 희미하게 보이기도 한다. 


아이들도 그렇다. 아이들은 정말 제각각이다. 한 가지 특성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이를테면 장난스러움-조용함), 그 분류대로 또 수만개의 가지를 뻗어 가지각색으로 다르다. 조용하지만 선생님에게 비밀 이야기를 하기를 좋아하는 아이, 조용하지만 장난을 "조용히" 치는 아이, 조용하지만 자기가 필요한 것은 곧이 말하는 아이 등. 무지개의 빛깔처럼 다르다. 우리가 흔히 분류하는, 빨주노초파남보의 딱딱한 칸막이 속 빨간색과 주황색의 경계를 파고들면, 어떤 색 분류 단어로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수만 빛의 색이 있는 것처럼. 아이들은 그 색의 입자같다. 


내가 아이들과 일하기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한 가지이다. 어른들은 어떠한 분류 속에 익숙해져, 자신이 속한 한 분류의 대표적인 특성에 자신을 맞추는 작업에 익숙하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그 본인만의 특성 자체로 존재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고유한 그 속성이 너무도 잘 드러난다. 그런 고유한 특성이 드러나는 행동을 관찰하는 일은 참 재밌다. 새롭다!


3. 이제 낮잠 시간

무지개가 뜨는 교실에도 이제 잠을 자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간이 침대를 교실 곳곳에 놓아두고, 형형색색 아이들의 침구류를 꺼내 잠자리를 만든다. 무지갯빛같은 아이들, 침구도 가지각색, 아이들의 잠자리를 지켜주는 인형도 가지각색이다. Terrance는 누에고치 모양의 옷을 입고 잔다. Macy는 책장 옆에서, 고무젖꼭지를 물고 잔다. 이런 귀여운 디테일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일하는 게 어린이집 근무의 묘미이기도 하다.  




작가의 이전글 #0 호주 어린이집 근무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