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라드 도착
아이슬란드의 수도인 케플라비크 공항은 아담한 사이즈다. 조금 걸어나오니 주차장과 연결된 대기공간이 나왔다. 이 공간은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의 빛을 여과없이 투과시켰다. 그런데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공항 면세점에서 술을 사는 것. 아이슬란드에서 맥주 한 캔은 15,000원에 육박한다. 금액도 문제지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대형마트에서도 무알코올 맥주만 판매한다. 17일간 일용할 알코올을 공항에서 사두지 않으면 목마른 영혼으로 여행을 해야 한다. 소중히 술을 구매해 대기공간으로 나왔다.
렌트카 업체와 다시 약속을 잡고 바깥 온도를 체크할 겸 잠시 레이캬비크 공항 밖으로 나갔다. “와! 첫 마디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유리벽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던 파란 하늘과 초록 들판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차갑고 청량하고 정신을 번뜩 깨우는 바람이. 유독 더웠던 서울의 7월은 고온의 후덥지근한 열기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감싸 안았는데 이곳의 하늘은 꼭 우리나라 가을 하늘처럼 높고 청아했다.
넋을 잃고 바라보다 시간을 체크하니 저녁 8시. 정말 대낮같이 밝았다. 말로만 듣던 백야다. 17일 동안 나는 밤을 잃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밤이 없는 곳에서, 나는 다른 시간을 살게 될 것이다. 해가지지 않으면 무엇이 달라질까? 밤이 없는 하루를 이들은 어떻게 보낼까? 일출과 석양을 사랑한다. 하늘이 붉게 물들고 구름이 샴페인 색으로 바뀌고, 세상이 빛으로 물드는 순간. 매일 보아도 늘 황홀한 그 풍경을 언제나 그리워하며 찾는다. 그런데 7월의 아이슬란드에서는 일출도 석양도 없다. 해가지지 않으니까. 아쉬움이 없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대신 얻는 것이 있다. 하루가 무한대로 길어진다. 17일이라는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이 기간에 최대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잠들지 않는 아이슬란드의 여름, 나도 잠들지 않고 모든 것을 두 눈에 담고 싶다.
렌트카 업체에 도착한 건 이미 9시가 다 되어서였다. 그런데 주차장 옆, 사진으로만 보던 탐스러운 보라색 꽃 루핀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었다. 아이슬란드의 여름은 짧다. 7월부터 8월까지 겨우 2개월이다. 이 짧은 아이슬란드의 여름을 대표하는 루핀은 이 짧은 계절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온 힘을 다해 피어 있었다.
다행히 우리가 예약한 렌터카 업체는 드물게 24시간 근무를 하는 업체라 어렵지 않게 담당자를 만나 설명을 듣고 차를 인수할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며 캠핑을 해본 적이 거의 없고 캠핑카는 셋 다 평생 처음이라 많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스타렉스 크기의 폭스바겐 캠퍼밴의 사용설명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우려했던 것보다 더 좁은 공간에 한숨이 나왔다. 살인적인 물가에 어쩔 수 없이 캠핑을 선택했고 그중 마지노선에 근접한 차를 선택한 것이었는데 실물을 보니 ‘여기서 어떻게 17박 18일을 먹고, 자고 할까?’ 싶어 한숨만 나왔다. ‘그래도 가보는 거지! 마음을 다 잡는다.’
캠퍼밴을 인수하고 렌트카 업체를 빠져나왔다. 오후 10시. 하늘은 여전히 밝다. 백야의 하늘 아래, 캠퍼밴은 첫 번째 캠핑장을 향해 달렸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된다.
17일 동안 이 차가 우리의 집이다. 좁지만 움직이는 집,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 실제 링로드를 벗어나 오프로드를 달리기 시작하면서 작지만 캠퍼밴이어서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결국 위기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여행이 시작됐다. 아니 지구별이 아닌 신이 시험 삼아 빗어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새롭게 삶이 시작되었다.
공항에서 레이캬비크 에코 캠핑장은 50킬로 정도 떨어져 있다. 40분쯤 지나 캠핑장 입구가 나타났다. 미리 받은 코드를 입력하니 게이트가 열렸다. 늦은 시간 들어와 자리가 없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레이캬비크에서도 가장 큰 캠핑장답게 자리가 남아 있었다. 이미 모두 잠자리에 들기 시작한 시간. 11시간 다되어 가는 시간 하늘은 새벽녘같이 청백색 빛으로 가득차 있다. 시동을 끄기 고요가 찾아왔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을 데리러 2시에는 출발해야 하지만 잠시라도 눈을 붙여보기로 하고 우리도 급하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꺼내두고 침대를 만들고 잠시 눈을 붙였다. 24시간의 고된 비행, 예기치 않은 사건들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벌어졌던 하루는 이제 막을 내린다. 눈꺼풀에 천근만근 추가 달린 듯 깊은 잠에 스르륵 빠져들었다.
벌떡! 잠시 붙였던 눈을 떼고 다시 한 시간 가까이를 달려 공항으로 달려가는데 그 순간 희미하지만 지평선을 따라 황금빛이 옅게 뿌려져있다. 바로 백야에는 만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아이슬란드의 일출이었다. 비록 해가 뜨고 지지는 않지만 잠시간이라도 저 빛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행복이 몰려온다. 행복이란 이처럼 사소한 것이 아닐까?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자주 가까이 하는 것, 이곳 아이슬란드에서 나는 매순간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