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나는 졸업식을 위해 졸업식 진행에 필요한 PPT파일을 만들었다. 첫 시작 화면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다가 혹시나 학생들과 학부모님이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으니 단정하면서도 밋밋하지 않게 만들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졸업생들과 부모님들이 그 화면을 배경 삼아 한창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았다. 포토존을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포토존이 된 것 같아 내심 기뻤다.
그 외에 내 업무는 졸업 축하 영상을 제작하도록 지도하는 일이었다. 졸업 영상 제작은 내가 지도하고 있는 방송동아리 친구가 맡아주었다. 영상을 제작할 때 촬영은 학생회에서 맡아주고, 우리 동아리에서는 모아 받은 영상을 편집하도록 했다. 영상 편집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부분은 협업이 매우 어렵다. 편집 스타일이 다르면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조금씩 나눠서 편집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10분도 안 되는 영상이라도 편집에 드는 시간은 수십 배를 능가한다. 다행히 편집을 맡기로 한 학생 J가 혼자 하기로 했다. 디테일을 계속 수정해 나가는 동안 나는 최대한 압박은 덜 주되 시간 안에 영상이 완성되고자 서포트할 수밖에 없었다.
영상 제작에 오류가 거듭되고 진행 상황이 답보상태에 있을 무렵 차라리 내가 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을 해도 마음은 방송실에 가 있었다. 당장 행사를 하루 앞두고 있었고 이미 해는 저물고 시간은 밤 9시를 넘기고 있었다. 퀄리티는 내려놓고 일단 영상을 송출할 수 있는 정도만이라도 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교무부장님께 전화해서 영상 제작이 힘들 것 같으니 그 시간을 아예 빼달라고 사정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J에게 10시를 넘기지 말고 진행 상황을 알려달라고 했다. J는 완성할 수 있다고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니 속은 타들어가도 믿어줄 수밖에 없었다. 답은 오지 않고 톡 채팅장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기다렸다.
밤 11시가 가까워질 무렵 메일 주소를 알려달라는 톡이 왔다. 된 건가? 열리나? 나오나? 용량이 크다고 경고메시지를 띄우는 첨부파일창을 열어 확인했다. 됐다. 됐어. 생각보다 퀄리티는 너무 좋았고 한 장면 한 장면 최선을 다해서 편집했을 학생이 너무 고맙고 기특해서 내가 가지고 있었던 불안함이 다 녹았다. 잠깐이나마 영상을 포기할까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졸업식 당일, 행사 진행을 하던 교무부장님이 밤늦게까지 책임감을 녹여 만든 영상과 학생 J에 대한 찬사를 언급함으로써 큰 박수가 다시 한번 터져 나왔다.
학교 교육활동으로서의 졸업식은 졸업하는 고3도 주인공이지만 결국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고 송사를 낭독하는 재학생도 함께 주인공이다. 교사인 나는 그저 그들의 배경이 될 뿐이다. 해내도록 격려하고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교육임을 알면서도 조급함을 불쑥 내비쳤던 순간을 후회했다. 랜더링(편집프로그램에서 만든 영상 파일을 재생할 수 있도록 인코딩하는 작업)에 거듭 실패하면서도 끝까지 오류를 찾아 수정했던 그 마음을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해내는 것은 학생이고 나는 뒤에서 지켜주는 배경이었다.
졸업식 당일인 오늘, 새벽부터 눈이 흩날렸다. 손끝은 발갛게 얼었지만, 하얀 교정과 은은한 색의 꽃다발과 학부모님의 미소는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주었다. 학교는 늘 학생이 주인공이고 나머지는 모두 배경이다. 때로는 그 점을 잊기도 하지만 내가 가야 하는 교육의 방향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꺼이 너희의 배경이 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