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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림 Nov 19. 2024

가장 최악의 나로 하는 사랑

그 사랑이 나에게 남기는 것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최악의 나를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사랑은 가뜩이나 견디기 힘든 최악의 나에게서 끊임없이 최악의 면모를 끌어내는 매개체가 된다. 누군가를 질투하고, 정답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나에게 유해한 선택을 내리게 하고, 한순간에 나를 충동적이고 비이성적인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며, 그런 나를 탓하고, 미워하게 만든다. 다행인 것은 나를 최악으로 만드는 사랑의 시간을 거치고 나면, 나는 나와 더 친밀해질 수 있다는 거다. 사랑 끝에서 우리는 나도 몰랐던 나의 면모를 새롭게 마주하게 되고, 낯설었던 나와 친밀해지는 것을 넘어 나로서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게 된다.

 

나에 대한 사랑을 타인이 내게 주는 사랑으로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적이 있었다. 대학에서 한 번씩은 걸린다는 대 2병을 조금 이르게 겪어 대 1병을 겪던 시기였다.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기도 전에, 내가 무엇을 '잘 할 수는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불신을 반복하던 시절이었다.

 

스쳐가는 인연들과 유흥을 거쳐, 나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나를 사랑해 줄 누군가가 생긴다면, 나도 나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결론. 나는 나 대신 나를 사랑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나는 어떤 사람과 잘 맞는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없이 그럴 듯해 보이는 누군가를 붙잡아 사랑을 시작했다. 그 사랑은 끊임 없이 상대가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라고, 나 만을 온전히 바라봐주기를 바라는 미성숙한 사랑이었고, 당연스럽게도 상처만 남긴 채 끝이 났다. 최악의 나로 했던 사랑 속에서 배웠다. 나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은 누군가 대신 채워 줄 수 없다는 걸.


여기 그런 최악의 시간을 겪었던 한 여자가 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주인공 율리에(르나트 라인제브)의 이야기다. 그녀는 의과대학생 신입생으로 입학했지만, 별안간 몸이 아니라 마음을 고치고 싶다며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그러다, 스스로 시각적인 예민함이 있다고 판단하며 사진 작가가 되기를 결심한다. 이후, 서점에서 근무하면서 사진 작가로 일하고 있다. 이렇듯 충동적이고, 자유롭고, 하고 싶은 것과 자신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녀는 두 남자를 만나고 또 헤어진다.

첫 애인은, 우연히 파티에서 만나 호감을 느끼게 된 유명 그래픽 노블 작가 악셀(앤더스 다니엘슨 라이). 율리에는 곧 그와 동거를 시작하지만 곧 그는 율리에와 가정을 꾸려, 그들 만의 삶을 꾸려나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함께 참석한 다른 가족들과의 파티에서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악셀을 보며 그녀는 느낀다. 우리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무엇보다 출판 기념회에서 예술가로서 성공을 일구어 내 인정받는 악셀을 보며, 그녀는 그에게 묘한 질투심과 쓸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자신도 글을 쓰고 사진을 찍지만 자신의 직업은 여전히 서점 직원이니까. 그녀는 사랑하는 애인의 성공을 온전히 축하해주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하는 마음으로 자리를 뜬다. 그리고 그 감정을 외면하고자 들어간 파티에서 에이빈드(할버트 노르드룸)를 만난다. 율리에에게 외면해야 할 감정을 선사하지 않는 사람을.

묵묵히 자신을 지원해주는 성향의 에이빈드는 율리에와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것 같은 사랑을 한다.에이빈드와 있을 때의 율리에는, 더 이상 작가를 꿈꾸지 않아도, 자신을 규정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이 좋다. 하지만, 일탈 같기만 한 에이빈드도 그녀의 모든 것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그런 자신에게 에이빈드는 율리에의 글 속에 자아가 담겨있다며 작가로서의 칭찬을 건네게 되는데 율리에는 이 말에 곧 불편함을 느끼고 '문학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이 있냐며'는 말로 그를 비난한다. 이런 갈등을 반복하던 차에, 율리에는 생각지 못했던 임신을 하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겪은 유산에 에이빈드와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그녀가 최악의 만남과 헤어짐, 이별을 통해 다다른 결론은 사랑은 '부수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의학을 공부하는 것은 자기 답지 않았던 길이었기에 돌아섰고, 사진을 통해 자신의 고향과 같은 존재를 찾았다. 악셀과 헤어진 이유는, 그와 있을 때면 자신이 자신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 속 조연이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따분히 커피만 퍼날라도 살 수 있는 사람 같아보이는 에이빈드와의 관계 속에서는 자신만이 존재한다. 결국율리에는 사랑함으로서 우월함과 열등감을 넘나들며 최악의 자신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최악의 선택들을 거쳐 자신이 되어가는 이 이야기는 사실 율리에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성장 이야기다.

에이빈드도 악셀도 모두 떠나고, 자신의 작업실에 앉아 생각에 잠긴 율리에가 그렇듯 화려한 찰나의 사랑을 지나면, 새롭게 만난 최악의 나와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나만이 남는다. 그때부터는 온전히 나와 나, 우리의 시간이다. 우리의 시간 속에서 나는 최악의 나를 바라보며 미워하고, 멸시하고, 동정하다, 비로소 인정하게 된다.

 

가장 최악의 나로 하는 사랑이 나에게 남기는 것은, 결국 나의 결점과 미성숙 했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생할 수 있게 만드는 시간이다. 최악의 나로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나의 미운 면모를 끌어안고, 그것이 결국 사랑임을 깨닫게 되며, 그 전보다 조금은 덜 최악인 내가 된다. 그리고는 넘어간다. 더 나아진 다음 챕터로.




*해당 글의 원문은 문화예술플랫폼이자 언론사 '아트인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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