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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철희 Jul 31. 2024

우리가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어야" 하는 까닭

벼 화(禾)

벼 화()”

“벼가 이삭을 늘어뜨린 모양”을 본뜬 상형자로

“곡식”이라는 뜻도 있고

“곡식의 줄기”인 “짚”이라는 뜻도 있다.


우리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무릇, 생물은 먹어야 산다.

그러니 국가와 사회의 존망과 성쇠가

온전히 농업의 수확량에 달려있던 농경사회에서

“곡식”이 얼마나 중요했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그 시대 사람들의 공(公)적인 삶과

사(私) 생활과 관련된 중요한 글자에

“禾”가 들어있는 이유도 충분히 짐작이 될 것이다.


사사 사()”는 와 (사사 사)”가 결합된 글자다.

시라카와 시즈카는

“私”와 같은 글자로 통용되기도 하는 “厶”에 대해

“쟁기를 사용해 경작하는 사람을 가리킨다”라고 설명했다.

“내가 쟁기를 사용해 경작하고 재배한 곡식은 온전히 내 것”이라는 게

“私”의 뜻인 것이다.


한편, 역시 “厶”가 들어있지만

“개인적인 것(私)”하고는 정반대인

“공공의 것”을 가리키는 글자인

공평할 공()”의 구성 원리에 대해

옥편은 을 “등지다”로 해석하면서

“개인적인 것을 등지는 것이 공평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덟 팔(八)”에 어째서 뜬금없이

“등지다”란 뜻이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다.


“사람이 살면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죽음과 세금”이라는 말이 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말처럼

경작하고 수확해서 “내 것”인 곡식을 얻었다면

이제는 공공을 위한 활동에 쓰일 세금을 내야 할 차례다.

세금을 뜻하는 조세(租稅)”라는 단어를 보면

조세 조()”와 세금 세()”

모두 “禾”가 들어있는 게 보인다.

곡식을 수확한 농부에게서 곡식을 세금으로 거둬가는 것이다.


세금을 거뒀으면 그걸 공공기관의 창고로 옮겨야 한다.

옮길 이()”

“禾”와 많을 다()”가 결합된 글자인데,

“多”는 고기 육()”이 겹쳐진 글자다.

“移”는 “곡식과 고기를 제사상에 올려

재앙이 다른 이에게 옮겨가라는 뜻”이 담긴 글자라는 설명이 있는데,

억지스러운 구석이 있는 설명이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자.


재배한 곡식이건 조세로 거둔 곡식이건,

곡식을 얻었다면

그 곡식의 품질이 어떤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과목 과()”는 곡식의 품질을 확인하는 뜻을 담은 글자다.

말 두()”는 “곡식을 담는 바가지”를 가리킨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에 나오는

“되”와 “말”은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던 “용량의 단위”였는데,

“말(斗)”은 “약 18리터”에 해당한다.

“禾”와 “斗”가 결합한 글자인 “科”는

“벼의 품질을 가늠하려고 바가지로 쌀을 퍼내는 모습”을 상형화한 글자로,

여기에서 “품종, 등급, 분류, 종류” 등의 뜻이 파생됐다.


곡식 중에서 상등품에 해당하는 곡식을 가리키는 글자가

“우수(優秀),” “수재(秀才)” 등의 단어에 쓰이는

빼어날 수()”다.

“秀”는 “곡물의 이삭 부분이 늘어져 꽃이 핀 모양”을 가리키는 글자로,

그 상태가 가장 아름답고 빼어난 상태라는 뜻에서

“빼어나다”는 뜻으로 쓰였다.


대가족시대를 지나 핵가족시대를 거쳐

1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요즘에

누군가와 밥을 같이 먹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돼버렸다.

지금은 “혼밥”이 일상화되고 있는 시대다.

쌀밥()”를 누군가와 같이 먹는()” 것을 통해

“화목(和睦)”을 조성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돼버린 시대인 것이다.

화할 화()”라는 글자의 구성 원리에 대한

이와 같은 일반적인 설명과 달리,

시즈카는 “和”에서 “禾”는 군문(軍門)에 세워놓은 표식이고

“口”는 신에게 바치는 기도문인 축문(祝文)을 담은 그릇으로 봤다.

그러고는 “和”를

“군문 앞에 놓은 축문 앞에서 분쟁을 그치고 평화를 맹세하는 글자”라고 설명했다.


“和”의 유래에 대해서는

한자 연구의 권위자인 그의 설명이

옳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래도 “배가 불러야 화합도 되는 거지”하는 생각을,

“사람은 누구나 오래 굶주리면

먹을 것을 차지하려고 아웅다웅하거나

주먹다짐을 하게 마련”이라는 생각을

도저히 떨치지 못하겠다.


우리가 오랜만에 마주친 사람에게

“언제 밥 한번 먹자”는

(십중팔구는 빈말이 돼버릴) 얘기를

무심결에 하는 걸 보면

“밥을 같이 먹는 것”이 “화목”을 조성하는 행위라는

해석에 대한 미련을 도저히 버리지 못하겠다.

때로는 꿈보다 좋은 해몽을 믿고 싶을 때가 있는데,

“和”의 구성 원리에 대한 설명이 그런 사례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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