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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버yeong Jun 08. 2024

결핍의 상대성

생활심리이야기

   단톡방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얼핏보니 마른 낙엽 위에 하얀 페인트를 흘린 듯해 보였다. 확대하여 유심히 살펴보니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버섯처럼 보였다. 오징어 빨판 같기도 하고 금붕어 입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곧 이어 이름이 따라 올라왔다. 수정난풀과의 '나도수정초'라는 꽃이라고 했다. 엽록소가 없어서 광합성을 못한다. 균류처럼 살아가면서 식물 또는 동물의 사체가 부패한 것을 먹고사는 부생식물(腐生植物)이라고 했다. 비록 몸체는 작고 여리지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바람에 맞서 생존하고 있었다.   

                                                              <나도수정초>


   다른 회원은 나도수정초 사진을 보고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근처 포스토이나 동굴 속을 불러내줬다. 그 곳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동물로 베이비드레곤으로도 불리는 프로테우스 올름(olm)이 떠오른다고 답글을 올렸다. 빛이 전혀 없는 동굴에서 살아남으려 온몸이 하얀, 도룡뇽 닮은 그것을 보기 위해 나도 수족관을 두리번대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처럼 결핍이 부족함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생명체가 물리적인 조건이 열악해지면 서서히 형태와 습성 등을 바꿔가며 적응하여 종족을 보전해 나간다고 생각한다.  

                                                                <프로테우스 올름(olm )>

  

   요즘 아기들은 예전의 아기들에 비해 속눈썹을 길게 타고난다고 지인이 말했다. 미세먼지를 완벽하게 차단해 줄 신체기관이 없으므로 이런 적응전략을 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유전적으로 3대째 열성인 것 같은데 자기 아들도 유난히 길다고 했다. 그럴수 있겠다 싶었다. 몇 년전 봄에 나는, 번식력 좋은 돌나물을 얻어다 아파트 내부 손바닥 만한 화단에 옮겨 심었다. 수분이 많은 식물이라 죽지 않고 살아내고 있길래 다행이다 싶었다. 가을바람이 차가워져 화단을 찬찬히 둘러보다 통통했던 잎이 햇빛을 받지 못한 탓인지 넙적해진 형태로 변한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었다. 옆에 있던 금낭화의 진분홍 꽃송이도 해마다 점점 옅어지더니 올해는 길쭉하게 큰 키로 흰색에 가까운 꽃송이를 주렁주렁 달고 피었다. 가르치지 않아도 살 궁리를 한다.     

   자연계의 구성원인 나도 부모님이 낳아주신 그대로 발 붙이고 살고 있다.  '의느님'을 떠 올리며 가끔 얼굴과 손에 스며든 세월의 흔적 앞에서 언니와 푸념을 늘어 놓았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다'는 조카의 한 마디에 뒤로 넘어갈 정도로 배꼽 빠지게 웃었던 기억이 났다. 그 후론 보톡스 한 방울 맞을 욕망마져 사그라든 채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다가도 나도 여자인지라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이번 겨울엔 피부과를 가 볼까 하다가도 금세 판이 뒤집어진다. 얼굴에 칼 댄 여자하곤 살고 싶지 않다는 한솥밥 남자의 말이 바로 따라온다. 그래서 그러기로 했다. 하지만 내면의 결핍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10대 초반의 학창시절, 수업 시간에 궁금한 것이 많아도 쭈뼛쭈뼛 질문도 못하고 보냈다. 엄한 가정에서 육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나는 딸로만 세어봐도 셋째다. 주목 받지 못하는 나는 생각이 있어도 삭혀 버리고, 의견이 있어도 지레 묵살 당할까봐 말 못하는, 그저 자리 하나 차지하고 앉은 뭇학생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교실에서는 물론 어딜가도 주목 받는 맨 앞자리는 아무리 비어 있어도 내가 앉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습성이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걸까? 넓은 공간의 자리는 지금도 뒷쪽 가장자리가 제일 편하다. 


   대학 새내기 2학기 중간에 있었던 일이다. 과대표를 다시 뽑아야 한다고 했을 때 나를 과대표로 뽑자는 이야기가 얼핏 들려왔다. 애써 못 들은 체 했다. 내 능력에서 볼 때 중압감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자취방에서 밤새 고민을 거듭한 결과, 당일에는 그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은 결석을 하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다. 다음날 가벼운 마음으로 강의실에 들어서자 과대표가 됐다며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아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민주주의 시대에 당사자 없이 뽑는 경우가 어딨냐며 흥분했지만 소용 없었다. 나름 강한 책임감으로 주어지는 일을 주선해 나갔다. 40명의 애들이 모두 내 맘 같지 않았다. 지도력 부족인지, 결핍에서 오는 마음의 빈곤인지 감당하기 싫어서 손을 털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쯤부터 생활의 작은 지표 하나 '매사에 폐는 끼치지 말고 마음 가는대로 살자'로 했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바둑판의 줄처럼 그어 놓은대로 되는 아니었다. 때론 하루 저녁에 2중으로 모임을 잡아서 등줄기에 진땀이 났었고, 직장 상사의 불의와 맞서 의지를 불태우다 불이익을 당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심지어 곰국을 올려 놓고 가스 불을 켜 놓은 채 출근해서 119소방차가 출동한 적도 있다. 연기 냄새를 맡은 이웃의 신고로 다행히 가스불을 껐다고 했다. 긴급출동 소음에 지독한 냄새. 내가 이런 민폐를 끼치다니! 지금도 멋대로 사는 나로 인해 남편이 겪어내는 황당함과 마주할 때는 내심 부끄러울 때가 많다. 남편은 내가 저질러 놓은 큰일 앞에서 그저 빙긋이 웃어 넘기며 수습해 주곤 한다.  


   결핍에서 비롯된 '마음 가는대로'의 자유가 오히려 방종으로 변질되었나 보다. 안팎으로 벌어지는 나의 해프닝을 세세히 알고 있는 직장 선배는 내 이름을 부르며  "000의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도대체!" 라고 말했다. 순간 어리둥절했다. 난감한 실수의 요체를 건망증이 아닌 '자신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었다. 평소 현상을 보는 시선이 예리한 선배라 무심코 흘려 들어지지 않았다. 그는 내 남편의 이해심 많은 사랑도 한 몫 한다고 했다. 또 다른 몫을 찾으려 곰곰히 나를 되짚어 보았다. 어린 시절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자신감이 중학교 시험성적이 서서히 끌어 올려주는 사이 고등학교에 진학 했다. 새롭게 싹튼 자기효능감에 열심히 공부하자 선생님들에게도 인정받으며 고교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교육대학 진학을 앞두고 맞이한 졸업식날엔 엄마도 오셨다. 생전처음 꽃다발과 함께 가족, 친지들이 길게 늘어서 기념사진을 찍던 날. 그 동안의 결핍이 충만하게 회복되는 날로 기억된다.  


   어릴 적 함께 자란 동네친구와 통화한다. 우리의 결핍이 결코 상처만은 아니라고 말이다. 물질적 결핍은 공부를 통해 나아갈 방향을 찾게 해줬고, 거듭된 칭찬은 자기효능감으로 채워져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작은 그릇에 채워진 일상에 만족하며 살아 갈 줄도 알게 되었다. 적금으로 어렵사리 목돈이 생길때면 때맞춰 돈 쓸 일이 터졌었고, 객지에서의 전셋돈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허무함도 맛 봤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 거실에는 AI 청소기가 가동되고 있다. 집안 곳곳의 먼지를 먹어 치우고 물걸레로 닦은 후 세탁 건조까지 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앉아 있으려니 더 이상 바랄게 없다. 나도수정초나 프로테우스 올름도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내일도 모레도 살아 갈 것이다. 그들처럼 결핍에 적응하며 받은 나의 선물, 이만하면 땡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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