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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버yeong Jun 18. 2024

유리세면대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    

생활/환경이야기                                

                             

   밝고 투명한 얼굴로 우리에게 네가 왔어. 자그마한 키에 반듯한 자세로 서자마자 우리를 받아줬지. 여름엔 시원한 물을 내 주었고, 겨울엔 더 없이 따스하게 우리 네식구를 보듬어 줬어. 이렇다저렇다 불평 한 마디  없이 한결 같은 너였어. 하지만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 없지 뭐야. 네 몸 여기저기에 변화가 찾아오더라. 중심을 잃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목이 막혀 꾸루룩 꾸루룩 괴로워 한 적도 종종 있었잖아. 그럴 때마다 안타까움에, 난 너의 입 안을 들여다보며 가늘고 길게 엉킨 것들을 꺼내려 애를 쓰곤 했어.           


  다행히도 너는 기운을 차리고 다시 돌아와  자리를 지킬 때, 땀에 젖은 너를 깨끗이 닦아 주는 게 되살아난 것에 대한 보답이었어. 네가 우리 집을 떠날 때가 된 것 같다고 몸으로 말했을 때 나는 무척 서운했어. 그래서 너를 잘 아는 전문가에게 얼른 전화해서 증상을 알아보았지. 고맙게도 그는 뜻밖의 아주 간단한 처방을 주며 너를 되살아나게 해 주지 뭐야. 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양말 갈아 신 듯 부품 하나 바꿔 주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좋아졌었잖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여전한 네가 얼마나 기특했는지 몰라.          


  가까스로 힘을 내어 버뎌 온 지 3년이 넘은 어제였어. 너는 오른쪽 어깨가 내려 앉고 목이 꽉 막혀 오더니 흔들흔들 몸을 가눌 수 없지 뭐야. 이젠 더 이상 혹사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입주해서 지금까지 19년을  함께 해 준 너잖아. 그 세월 우리 부부는 먹고 살기 위해 월요일 새벽마다 고갯길을 넘나들며 출근했었지. 그러다가 금요일 저녁이 되어 집에 들어왔어. 그러면  일주일 동안 수고 많이 했다며 제일 먼저 나의 두 손을 어루만져 주던 너였는데 말이야. 그래서 그런 지 말 없는 너에게 둥글고 깊은 정이 많이 들었는데......


   어깨 쳐진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자동차 열쇠를 집어 들었어. 지난 번에 통화했던 전문점을 찾아 운전대를 잡은 그날은 촉촉이 비가 내렸지. 도착해서 네 상황을 말했더니 이젠 미련없이 새로운 인연을 찾으라고 하더라.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서운하고 아쉬웠어. 너를 떠올리며 담담하게 이것저것 둘러보다 다리 아프지 않을, 얼룩이 드러나지 않을 새로운 얼굴을 만나 눈인사를 하고 집으로 왔어. 그리고 너에게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 왔던 그 모습 그대로 네 몸 전체를 닦아 주었지. 한결같이 맑은 마음으로 살아온 너였기에 조금의 얼룩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싫었다.           

 

  한참이 지나서 불안하게 서 있는 너를 아저씨가 나사 몇 개 돌리자 하나, 둘 해체되는 몸. 미운 정 고운 정 가득한 네가 부서지는 모습이 안스러워 나는 자리를 피했어. 잠시 후 너의 몸은 화장된 뼈 수습하듯 한 순간에 현관 밖으로 내쳐지더라. 미안해. 아무도 없는 날이면 깜깜한 어둠 속에 우두커니 하루 종일 아니 일주일 물 한 모금 못 먹고 기다렸잖아. 수고 많았어. 네가 처음으로 세숫물 내어 준 고3 딸은 아기엄마가 되었고, 중3 아들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어서 무척 고마워. 열심히 살아 온 유리 세면대야, 잘 가. 안녕!          


   나는 이렇게 세면대와 이별했다. 이것은 말끔하게 닦아 놓고 1분 후에 사용해도 바로 물방울 얼룩이 생기는 것이었다. 누가 보면 며칠 청소 안 하는 집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손님이 아닌 아들, 딸이 온다고 해도 도착하기 직전에 닦아 놓아야 부끄럽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새로 마련한 세면대는 얼룩을 감춰주는 흰색의 도기제품이다. 물론 바닥과 맞닿는 지지대 부분도 없는 일체형으로 골랐다. 새 것으로 설치하고 보니 타일바닥 공간도 넓어졌고 예전보다 청소하기도 쉬워졌다. 전체적으로 화장실 분위기가 좀 더 깔끔해 보여서 좋았다          

  일상 속에서 나는, 무엇이든 쓸 만한데 조금 불편하다고 선뜻 새 것으로 바꾸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익숙함인 듯 하다. 항상 그 자리에, 항상 똑같은 방법으로 내 손에 다가오는 편안함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하나는 환경오염에 대한 알량한 책임감 때문이다. 몇 년 전에 뉴스에서 보았던 바다거북이의 죽음 앞에서 나도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고 단정했다. 그 날부터 마스크는 반드시 가위로 끈을 끊어서 버린다. 이런다고 쓰레기 산이 작아지기야 하겠냐만은. '나 하나 쯤이야......'와 '나 하나 만이라도......' 두 개의 화두에서 후자를 집어 든 내 삶의 질은 어느 정도인가요? 화장실 문을 닫으며 물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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