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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어만세 Dec 08. 2024

김여사, 나의 어머니 #4

나도 요즘 궁금한 나는 누구인가? #6

김여사가 입원해 계신 요양 병원 앞에는 작은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오전 시간에는 늘 손님이 저 혼자라서, 김여사 면회를 하고 나면 잠깐 앉아 글도 쓰고, 일도 하고, 가끔 울기도 합니다. 한 일주일 되니까 지정 좌석 비슷한 것도 생겼습니다. 카페 구석에 있는 콘센트 옆 하얀 테이블이 제가 정한 제 자리입니다.




대학을 졸업하던 겨울, 아들은 아버지를 데리고 나가 가타부타 말 한마디 없이 양복에 넥타이까지 일습을 맞춰 주었습니다. 철없는 남편은 졸업 선물을 되려 자기가 받았다며 좋아했지만, 눈치 빠른 김여사는 그게 아들이 해준 작별인사이자, 수의를 갈음하는 선물이라는 걸 대번에 알았습니다. 겁이 덜컥 난 김여사는 아들에게 인연을 끊을 것이냐 물었고, 아들은 내가 김여사랑 인연을 왜 끊냐고 다독였습니다만, 아버지가 알콜성 치매로 실종되었다는 연락이 올 때까지 한 십 년 가까이 집에 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남은 자식마저 반지하 단칸방을 얻어 완전히 나가자, 김여사는 다시 남편과 단 둘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30년 전과는 달리 김여사에게는 핸드폰이라는 무기가 생겼지만, 전화를 받고 달려온 아들이 진짜로 남편을 패 죽일까 봐 핸드폰을 열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아들이 평소에 정이 많고 살가운 놈이라 더 무서워했고, 김여사가 핸드폰을 들이대면 움찔하고 물러 났습니다만, 옛날처럼 손찌검을 하지 않는다 뿐이지 가시 돋친 혓바닥 때문에 김여사가 받는 고통은 여전했습니다.


그즈음부터 김여사는 자신의 원래 성격이 매우 밝고, 보스 기질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세를 놓은 집을 수리할 일이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모여있던 인부들은 자연스럽게 김여사에게 허드렛일을 시켰습니다. 김여사는 고분고분 청소도 하고, 잔심부름도 해주면서 여기는 이렇게 해주세요, 저기는 이렇게 해 주세요 부탁을 했는데, 작업하던 십장이 아줌마 뭔데 자꾸 참견이냐며 버럭 화를 냈습니다. 김여사는 닦던 창문을 마저 닦으며 집주인이라고 조용히 답했고, 잠깐의 침묵이 지나간 뒤 공사는 순조롭게 잘 끝났습니다. 김여사나, 저나, 큰누나나, 마나님께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지요.


또 어느 날인가는 김여사의 동네에 한 무리의 친절한 사람들이 나타나 공연을 보여주며 음료수에 떡에 뭐에 잔뜩 돌렸습니다. 전기장판에 옥을 붙였다나, 게르마늄을 붙였다나 하여튼 뭐 그랬다고 혼을 쏙 빼놔서 샀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영 쓰잘데기없는 물건입니다. 김여사가 다음날 가게를 찾아가 물러 달라고 하자, 그렇게 친절하고 싹싹하던 사람들은 이미 상품을 받았으니 절대로 안 된다고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김여사가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계속 부탁하자 높은 사람이 나오더니만 대뜸 자식은 몇이냐, 자식들 뭐 하냐, 집은 어디고 누구 명의냐 묻기 시작했습니다.


자식은 셋인데 첫째는 중앙일보 기자고, 둘째는 조선일보 기자고, 셋째는 무슨 연구원인데 콤퓨타 일을 한다고 대답하자, 높은 사람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응접실로 따로 불러 커피를 내주었습니다. 다시금 친절해진 높은 사람은 아들이 하는 콤퓨타가 뭔지 몹시 궁금해했고, 김여사도 정확하게는 모르고 집안 어른이 돌아가셨을 때 아들 회사에서 제일 큰 화환을 보내주었다고 얘기했습니다. 높은 사람은 원래는 환불이 안되는데, 어머님이 참 친절하셔서 특별히 환불해 드린다며 바쁜 자식들 걱정하니까 얘기하시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한 두 달 지나서 그 일을 알게 된, 조선일보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첫째와, 중앙일보에서 교정교열을 보던 둘째와, 게임 회사에 다니는 셋째는 한참을 웃었습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질색팔색하던 아들은 두 신문사에 대해 비호감이 1 내려갔습니다만, 애초에 비호감지수가 천 단위라서 크게 표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김여사에게는 자식들 모르는 비밀이 있었습니다. 동네 친구들과 지루박을 배우러 다닌 것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사교댄스. 전문 용어로 춤바람은 우리 사회와 가정을 파탄 낸다며 종종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곤 했습니다. 얌전한 고냥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세상 얌전한 줄 알았던 김여사가 춤바람이 났다는 소식에 자식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춤바람 난 사람이 입성이 이게 뭐냐. 접때 사준 빽가방은 어따 뒀냐. 비단 마후라라도 하나 둘러라. 목이 짧은데 마후라가 웬 말이냐. 가슴이 깊게 파인 걸 입어라. 아예 괜찮은 홀아비 있으면 이 참에 자빠트리고 와라. 오긴 뭘 오냐. 그냥 가서 살아라. 김여사는 얼굴까지 빨개지며 춤이라는 건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고 진지하게 항변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자식들은 지네들끼리 신나 했습니다.


김여사가 그렇게 잊었던 웃음을 찾아가는 사이, 김여사의 남편은 부쩍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행동이 눈에 띄게 굼떠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김여사가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는 게 못마땅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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