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요즘 궁금한 나는 누구인가? #7
입원하고 며칠 뒤, 동태탕을 드시고 싶다는 말씀에 처음에는 다행이다 싶다가, 이내 서늘한 느낌이 들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동태탕을 찬으로 밥 한 공기를 깨끗하게 다 드신 김여사는 그동안 밀린 잠을 한꺼번에 청하듯 계속 주무시기만 합니다. 발등부터 시작한 부종은 이제 종아리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병실 캐비닛에 여우 같은 손녀딸이 엉성한 솜씨로 그려준 엽서와, 여행가서 찍었던 사진들을 붙였습니다. 간호사님이 흘긋 보고는, 잠시 서 있다 못 본체 지나갑니다.
김여사의 남편은 늘 술에 취해 조용히 노려 보다 시답잖은 트집을 잡아 깐죽거렸습니다. 몇 번이고 경찰을 불러 봤지만, 되돌아 오는 답변은 가정문제라 우리도 손 쓸 방법이 없다거나,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않냐는 한가한 소리 뿐이었고, 그렇게 경찰들이 가고 나면 남편은 더 기가 살아서 지랄지랄을 했습니다. 절박한 김여사의 전화에 자식들은 시간 여유가 되는 순서대로 불려 왔지만, 남편의 술주정은 대부분 아들이 불려 오고 난 뒤에야 끝났습니다. 다들 아르바이트에, 학교 공부에, 과외에 정신없는 와중에 저 난리를 쳐놓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모습에 자식들의 증오와 피로감은 쌓여만 갔고, 김여사는 그게 자기 잘못인양 미안하고 죄스러워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철이 없고 혈기가 넘치던 아들은 김여사와 남편 모두에게 으르렁거렸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김여사는 남편이 뭔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습니다. 걸핏하면 화를 내고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는 건 여전한데 거기에 더해 식탐이 따라 붙었습니다. 가끔은 넘어져서 아프다고 울거나, 귤이 차가워 먹기 힘들다며 껍질채 냄비에 넣고 끓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은 술을 사러 나갔다가 집을 잃어버렸습니다. 급하게 연락을 받고 온 아들은 온 동네를 찾아다니다 경찰서에서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정말 지긋지긋해서 꼴도 보기 싫지만 그래도 피는 진해서, 울화통과 안도와 분노와 답답함이 함께 치밀어 올랐습니다. 은행 청소를 마치고 돌아온 김여사는 또 한번 길고 긴 한숨을 쉬었습니다.
남편이 입원을 하자 김여사는 쌈짓돈을 풀러 병원비를 댔습니다. 4층짜리 작은 빌라도 하나 있고, 세를 준 집도 하나 있었지만, 무슨 은행에 얼마가 들어 있는지, 통장이며 도장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김여사는 병원비를 마련하느라 이리저리 뛰어야 했습니다. 더구나 알콜성 치매로 입원한 게 아니라 간경화에 고혈압, 뇌졸중, 당뇨가 한꺼번에 덮친 것이었습니다. 어렵사리 살려 놓은 남편이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 의사는 다시 술 먹으면 진짜로 남편 죽는다고 김여사를 나무랐고, 김여사는 또 무슨 죄인이나 된 것처럼 연신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하지만 고작 며칠 뒤, 아들은 아버지가 다시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틀만에 다시 술을 마셨다고 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의사는 식구들을 따로 불러 '굳이' 대학 병원으로 옮길 것인지 물어봤습니다. 세월이 한참 지나 마흔을 넘긴 어느 날, 아들은 문득 그때 의사가 물어본 것이 무슨 의미였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김여사가 평소 ‘죽을 때 쉽게 못 죽는다’며 일체의 건강식품이나 영양제같은 걸 안 드신다는 게 무슨 얘기였는지 알아 듣고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날, 김여사의 아들은 영양제를 모두 쓰레기통에 쓸어 넣었습니다. 김여사가 그랬듯, 아들도 하나 있는 딸래미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간병비와 병원비는 매달 나갔습니다. 지금처럼 산정특례 같은 것도 없던 시절, 보험 하나 들어 놓은 것도 없고, 평생 직장 한 번 다녀본 적도 없는 사람의 병원비는 상당히 부담되는 금액이었습니다. 자식들은 자기들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아버지 병원비로 내놔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대신 집을 하나 팔아서 그 돈으로 병원비를 대기로 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르던 시절이니 논리적인 관점으로 보면 멍청한 결정이고 경제적인 관점으로 보면 미친 짓에 가까웠지만, 머리에서 뭐라고 말하던 심장은 그걸 받아 들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러 가던 날. 간호사들은 "꼴통" 할아버지에게 누가 면회를 왔다고 수근거렸습니다. 숨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대놓고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습니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복숭아 간스메가 먹고 싶다며, 우정국에서 카브를 틀면 큰 싸전이 있는데 거기 주인이 숨겨두고 판다며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우정국과 싸전을 듣고 잠시 생각하던 아들은 아버지가 1940년대 충무로의 어느 골목길을 헤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들은 가벼운 목 인사만 남긴 채, 무표정한 얼굴로 병실을 나왔습니다. 얼굴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김여사가 힘겹게 걷던 어두운 터널이 드디어 끝나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