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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어만세 Dec 16. 2024

화이트데이 쿠키 만들기

마카다미아 같은 건 집에 한봉다리씩 다 있잖아요..

박력분, 버터, 우유, 계란, 설탕, 소금, 마카다미아, 호두, 아몬드 슬라이스를 준비합니다.


박력분, 중력분에 대해 쳇 GPT 님에게 물어봤더니, 박력은 강하게 밀고 나가는 힘, 중력은 물체가 당기는 힘.. 뭐 이런 설명이 나옵니다. 그대로 믿기에는 좀 미심쩍지만 뭐... 아무튼, 중력분은 당기는 힘이 있어서 박력분을 사용하나 봅니다.(응?)


인류 최대의 발명품 싹싹 주걱

아, 그리고 명필은 붓 가리지 않는다고 하던가요? 아닙니다. 명필이 똥종이에 글 쓰는 거 보셨습니까? 뭐든 장비빨입니다. 스뎅 그릇과 알뜰 주걱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다이소에서 천원도 넘게 주고 산 고오급 휘핑기입니다.

대충 준비가 되었으면 이제 계량을 합니다. 그동안은 레시피마다 온스와 ml, g이 막 섞여 나와서 속상하셨죠? ‘약간’이나 ‘적당히’ 같은 무책임한 표현들. 특히 '한 꼬집' 같은 단위를 볼 때마다 아주 그냥 온몸을 잘근잘근 꼬집어 버리고 싶을 때가 많으셨죠? 괜찮습니다. 자신의 예민한 감각을 믿고 눈대중으로 해 주셔도 됩니다. 버터나 밀가루나 어차피 다 살 많이 찌는 재료들입니다.




준비되셨나요? 그럼 이제 시작해 봅시다.


버터를 렌지에 돌려서 녹여 줍니다. 밀가루에 계란을 풀고 뜨거운 버터를 부으면 그대로 계란이 익으면서..


응?

익어?

왜 익어?..


뜨거운 버터에 계란이 익으면서 소보루처럼 알알히 덩어리 질 겁니다. 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시겠지만, 당황하지 마시고 소보루만 싹 건져서 잘게 다져 주세요. 그리고 반죽에 도로 넣어 주세요. 감쪽같죠? 자, 문제가 없으면 문제가 없는 겁니다.


자고로 수제 쿠키란 재료를 아끼지 않는 법

반죽이 완성되었다면, 마카다미아와 호두를 표준 6mm, 편차범위 2mm 크기로 썰어서 고르게 섞어 줍니다.


축하합니다.

여기까지 했다면, 이제 쿠키가 반은 완성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짤주머니도 결국은 내가 설겆이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

몇몇 레시피에는 짤주머니를 사용하라고 되어 있지만, 없어도 됩니다. 아니, 없어야 됩니다. 짤주머니 설거지도 결국은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유산지를 깔고 숟가락으로 뚝뚝 떠서 적당히 펴주세요. 컵케이크 팬이 있다면 활용해도 좋습니다.


이제 180도로 오븐을 예열해 주세요. 아마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대부분의 레시피가 10분에서 15분 동안 구우라고 돼 있을 겁니다. 편차가 무려 150%나 나죠? 이럴 때 남자들은 생각보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네.. 쿠킹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죠. 10~15분 대신, 딱 12분 30초 동안 굽겠습니다. 논리 그 잡채죠.


숙련된 제빵사는 조금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습니다. 12분이 넘는 시간 여유가 생겼으니 청소기를 꺼내서 주방을 청소해 주세요. 왜 때문인지 밀가루가 하얗게 내려앉은 렌지도 닦아 주시구요, 바닥도 구석구석 밀어주세요. 오늘따라 호두 조각 같은 게 많이 보이지만 기분 탓입니다. 대범하게 잊어주세요. 무릇 남자가 대업을 도모하다 보면 부수적 피해가 따르는 법입니다.


모양이 제법 그럴듯 하죠?

오븐에서 타는 냄새가 나면 호다닥 쿠키를 꺼냅니다. 청소하다 보면 띵-! 소리를 못 들을 수 있어요. 오븐은 잔열이 오래가기 때문에 그대로 두면 다 탑니다. 탄내가 약간이라도 나면 바로 꺼내 주세요.


거친 갈색, 고운 검은색, 심지어 광택까지. 참 종류도 다양합니다.

쿠키 바닥이 예쁜 검은색이 되었습니다. 단단한 광택이 너무 곱습니다. 당황하지 말고 집에 있는 포크 중 가장 두껍고 손잡이가 긴 포크를 찾아서 예쁜 검은색 부분을 긁어냅니다. 항상 강조하지만 요린이의 기본은 당황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연히 길이가 길수록 힘을 잘 받습니다. 작업이 좀 수월해 진달까요?

자, 이제 쿠키는 완성되었습니다.

흠... 이게 겉보기에는 사회통념상 "쿠키"라고 부르는 것과 좀 많이 다를 수 있는데요... 이때 판단 잘해야 됩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해 봅시다.


1. 쿠키를 굽겠다며 마카다미아를 샀습니다.

2. 청소기를 돌렸지만 아직 주방은 난장판일 테고

3. 쿠키 긁어낸다고 싱크대에는 검댕이 소복소복합니다.

4. 긁어내기 전에 버렸다면 잔소리 좀 듣고 말았겠지만

5. 지금은 이미 늦었습니다.


..네.. 이걸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하는 순간, 매우 높은 확률로 살해당할 수 있습니다. 아마 사인(死因)에는 쿠키라고 적히겠죠. 특이사항에 마카다미아라고 적힐 거구요.




100% 수제 마키다미아 쿠키 먹는 법


일단 먹을 만큼 쿠키를 꺼내서

컵에 담고 잘게 부숴 줍니다.

그리고 쿠키가 잠길 만큼 우유를 부어 주세요.

잠시 불도록 기다렸다가

호호.. 떠먹으면 됩니다.


정말 입에서 사르르 녹습니다.

게다가 제육볶음 같은 불맛이 일품이네요.




냐..반죽에 머리카락 들어 가잖아..

이건 영 아니다 싶었는지, 딸래미가 오븐 없이도 만들 수 있는 케익을 해 준다고 합니다. 유튭을 보면서 뭔가 열심 열심히 하는데 싸한 불안감이 엄습해 옵니다. 오랜 경험에서 오는 촉 같은 거죠..


저거는..와사비지? 아무리봐도 와사비야..

흠..

근데, 집에 왜 와사비가 있..

아, 이마트에서 초밥 사 왔지.

검은 대지에서 피어나는 새싹을 표현했구나.

강렬한 대조를 통해 대자연의 생명력을 표현.. 에라이.


그래..

너는.. 내 새끼가 맞는 것 같아.

이게 뭔가.. 생김생김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내 새끼가 맞는 것 같다.

우린 유전자단에 문제가 있어.



요즘, 힘든 겨울을 지나고 있어서, 블로그를 뒤져 가볍게 읽을 수 있을만한 포스트를 하나 옮겨 왔습니다. 포도송이 작가님의 예쁜 두 따님이 만드신 케익 이야기를 보고 풉 웃었거든요.

웃어야 지나갑니다.
웃어야 견딥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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