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청춘 속절없고/ 봄이 온다 세월 좋다./ 그리운 봄 언제 보냐!/ 노세 노세 젊어 놀아"
"안녕? 우린 꿀풀과 두해살이 공연단이야. 난 소리꾼 광대나물이고 옆에서 장단 넣어주는 친구는 광대수염이야. 자! 이제 공연이 시작되니 모두 마당에 모여 주세요" 그런데, 겨울날 축축한 들판, 우리 공연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구경꾼이 없었어. 세찬 겨울바람에 얼지 않고 견뎌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광대나물이 고맙게 공연을 함께 하기로 한 것이 천만다행이지. 엄마가 따뜻한 봄까지 기다려서 꽃 피어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지만 난 봄을 기다리는 것이 너무 답답했어. 내 멋대로 해서는 안되었는데, 가을이 끝나갈 무렵에 싹을 내고 서둘러 분홍색 꽃을 피웠어. 그런데 따스했던 가을볕도 잠깐이었고 찬바람이 불어오니 향기가 좋아도 아무도 찾아주지 않아 당황했어. 처음에는 패기 있게 '흥! 벌과 나비 따위는 필요 없어. 씨앗만 품는 두 번째 꽃을 내어도 되니까' 겉으로는 당당한 체하며 괜찮다고 위안했지만 속으로는 조급해진 마음과 밀려오는 걱정은 막을 수 없었어. 엄마는 봄 마당에서 너나들이 흥겨운 어울림을 누렸다는데, 내 놀이터는 관객도 없고 엉망진창이 돼버릴 것 같았거든. 그런데 광대수염이 함께 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어.
얼마 전 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주눅 들어있는 걸 보고 광대수염이 말했어. "넌 단, 하나의 존재이고 네가 좋아하는 공연을 한다면 아무도 널 찾지 않는다고 해도 난, 널 응원할 거야! 네 공연에 장단을 넣고 추임새로 흥을 돋워줄게" 그 말을 듣고 용기를 얻어 광대수염을 고수 자리에 앉히고 내 마당을 열기로 했어. 바로 오늘이야! 광대수염이 느린 장단을 넣었어. "덩덕 퉁 덕덕, 쿵쿵 덕쿠 쿵" 내 분홍 꽃은 나발이 되어 겨울바람을 타고 빈마당을 채우기 시작했어. "조용한 무대 위에 고독한 광대/ 분홍 분 바르고 어리숙한 미소 짓네/ 찬바람 마른 잎에 행복을 불렀죠/눈을 감아요. 그가 보이나요?/ 웃음을 전하는 고독한 목소리/ " 내 노랫말에 귀 기울여 들으며 바닥에 바짝 붙어있는 그를 보며 난 몰입했고 "암은", "으이", "그렇지" 하며 슬픈 추임새로 호응하는 광대수염의 떨리던 목소리에 힘을 얻었어. 푸념처럼 주절거리는 노래가 끝나자 광대수염이 박수를 보냈어. 난 댑바람 떨림을 수많은 관객의 환호인 양 고개 숙이며 말했어 "네 덕분이야. 나 혼자 손 놓고 있다가 아무것도 못 할뻔했어" 광대수염이 손사래를 치며 "우린 같은 광대의 운명, 네 공연이 내겐 고마운 배움터였어. 봄에 하얀 꽃이 피면 제대로 관객을 모아 봄 공연을 열자! 나도 노래 부를 용기가 생겼어. " 그 말을 듣고 말했지. "봄에는 내가 어릿광대가 되어 널 아리아리 응원할게." 우린 봄 공연을 약속했어.
내 겨울 잎이 코딱지를 닮았다고 해서 코딱지 나물이라고 불러. 그런데 눈곱이 코딱지 비웃을까? 하하 나도 웬만큼 해내고 나니 코딱지라는 비아냥은 콧웃음으로 넘길 만큼 자신감이 생겼어. 그와 난 우리 마당의 주인공이고 가장 열열한 관객이지. 광대수염이 없었더라면 나도 턱 떨어진 광대가 되었을 거야. 그가 자기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노래 부르면 난 그의 받쳐주는 배경이 돼야지. 무대에 올라간 그를 상상했어. 흰 꽃들이 가짜 수염을 달고 관객을 향해 활짝 웃는 광대수염의 사당패 마당이 보고 싶어.
이제 내 공연은 끝났고 불행하게도 호기롭게 피운 꽃은 씨앗을 맺지 못했어. 하지만, 오직 아이들을 위한 꽃을 피울 거야 그리고 우리 만의 무대를 열어야지. "겨울 들녘을 스치는 외로운 바람 하나/ 의지할 곳 없이 여기저기를 떠돌지만/ 두려움 설렘 모두 뜨거운 마음이야./ 너희는 망설이지 마! 봄은 네 안에 있어" 내 노래를 듣고 아이들도 멋진 소리패가 되어 그들의 마당을 열었으면 좋겠어. 따뜻한 봄날은 온다. 씨앗 맺으면, 개미들이 새로운 관객에게 데려다주겠지. 엄마 말 듣지 않고 나처럼 미리 꽃을 피우는 아이가 나올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관객이 있는 한 광대는 언제 어디서나 공연을 할 수 있으니까. 내 아니리가 길었지? 내 공연 제목은 그리운 봄, 내 꽃말이야.
- 광대나물은 꽃가루 받이에 실패하면 꽃이 진 뒤 꽃가루 받이가 필요 없는 폐쇄화를 피고 자가 수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