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쉬고 있던 북리딩 모임에서 슬슬 활동을 재개할 생각이었다. 출산과 육아 초기에는 단톡방에서 남들의 대화를 읽기만 하다가 오랜만에 입을 뗀 것인데 이 같은 코멘트가 날아왔다. 휴대폰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멈칫했다.
나쁜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애 보느라', '공부에 손을 놓다'는 표현이 참 껄끄럽다. "생각보다 육아 체질이더라고요."라고 태연히 답했지만 순간 채팅창의 열댓 명이 나를 '애 보느라 공부에 손 뗀' 사람으로 인식한다고 생각하자 모두가 옷을 입고 있는 가운데 혼자 벌거벗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나 역시 아이를 낳아보기 전에는 '집에서 애 본다'는 표현에 깔려있는 뉘앙스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운전에 서툰 여자 운전자에게 "집에서 애나 볼 것이지!"라고 소리치는 게 얼마나 무식한 소리인지는 집에서 애를 봐 봐야 안다. 운전은 집에서 애 보는 것에 비하면 말도 안 되게 쉬운 일이다. 구순 넘어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는 나를 보면 "집에서 애 보면서 심심해서 뭐 하고 지내냐"고 물으시곤 했다. 겪어보지 않아서, 몰라서 저지르는 무례다.
엄마가 이겨내야 할 허들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편견이다. 다행히 요즘 세상에는 육아의 어려움이 많이 알려진 편이지만, 여전히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무심한 한마디가 지쳐있는 아기 엄마의 가슴을 들쑤셔 놓기도 한다.
그녀 역시 아기 엄마이기 전에 한 젊은 여성이고, 직장인이었고 또다시 직장인이 될 수 있고, 배움과 발전에 대한 열망이 있는 청년이다. 다만 인생 여정에서 만난 - 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 고난도의 중요 과제, 육아에 매진하고 있는 중일뿐이다. 아이가 어려 전적인 도움이 필요한 일정 시기가 지나면 엄마는 본래 자기의 꿈을 찾아갈 수도 있고, 육아 자체를 자신의 더 중요한 꿈으로 삼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쉽지 않은 길인데, 저러한 타인의 무지한 판단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숙제까지 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