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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형 Jan 27. 2020

아들과 남편, 누구 옆에서 잘까

육아와 사색_30  독수공방 남편의 홀아비 냄새

 출산을 준비하던 무렵 아기의 잠자리를 어디에 마련할지 꽤 고민했다. 안방에서 부부 침대 옆에 아기 침대를 두고 함께 자는 방법과 아기 방에 아기 침대를 두고 따로 재우는 방법에는 각각 장단점이 따르기 때문이다. 결국 아기가 지내기 좋은 환경으로 열심히 아기 방을 꾸며 놓은 것이 무색하게 안방에서 다 같이 자는 걸로 정했는데, 안 그러면 남편이 육아에서 점점 멀어지고 정서적으로도 소외될 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하자면, 내가 피해의식이 생길 것 같아 자신이 없었다. 남편이 직접 아기를 돌보는 시간은 적더라도 아기 돌보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는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안방 부부 침대 옆에 아기 침대를 세팅해놓고 아기를 낳으러 갔다.


 예상보다 훨씬, 신생아와 함께 하는 밤은 고됐다. 2,3시간마다 일어나 수유를 하는 것은 물론 그 사이 작은 인기척에도 벌떡 일어나 아기 침대를 들여다보는 매일 밤이었다. 때로는 남편이 일어나 거들기도 했지만 어차피 모유수유를 하고 있으니 남편이 일어나 봤자 내가 더 잘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돌아보니 그 때라도 나와 아기의 잠자리를 옮겼다면 새벽 수유 등이 훨씬 수월했을 거라 생각이 들지만 당시엔 몰랐기 때문에 하던 대로 꾸역꾸역 안방 생활을 했다.


 그러다 아기의 인지가 더 발달하기 전 방을 분리하지 않으면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안방에서 함께 자야 한다는 말을 듣고 생후 6개월에 아기의 잠자리를 옮겼다. 밤중 수유 없이 제법 길게 자고 있어 안전이 확보된다면 내가 굳이 함께 자지 않아도 될 성싶었다. 그래도 첫 며칠은 아기가 낯설어할 테니 내가 함께 자기로 했다. 아기의 침대는 범퍼가 높고 그 옆에 내가 요를 깔고 누우니 아기의 시야에는 내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없는 듯이 옆에서 자다가 아기를 꼭 달래야 할 때만 얼굴을 들이밀며 며칠밤을 보냈다.


 그런데 웬걸, 나는 전에 없이 숙면했다. 사실 나는 결혼 전에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 요를 깔고 자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남편과 높은 침대에서 자는 것보다 바닥에 혼자 자는 게 훨씬 편안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기가 울 때 남편이 깨지 않도록 서둘러 아기를 데리고 나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울음을 진정시키는 연습을 하도록 조금은 울게 내버려 두기로 했기 때문에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많이 피곤할 땐 누워서 자면서 수유할 수도 있었다. 6개월 동안 안방 생활을 고집한 게 아주 조금 후회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며칠만 아기와 같이 자고 다시 안방으로 복귀하려던 계획이 많이 늦춰졌다. 처음엔 아기가 방을 낯설어할까 봐, 얼마 후엔 원더윅스인 아기가 계속 깨는데 매번 들락날락할 수 없어서, 그러다 나중에는 아기와 함께 맞는 아침이 너무 행복해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하루 중 아기의 기분이 가장 좋은 아침, 혼자 노는 소리에 잠이 깨어 아기 얼굴을 들여다보면 아기가 방싯 웃는다. 아기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니 이런 순간은 금방 지나갈 거라 생각하니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아기가 앉고 길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잠에서 깬 아기가 나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와 내 얼굴에 제 얼굴을 갖다 댔다. 잠을 몇 시간 못 자고 일어난 대도, 침이 가득한 뽀뽀 세례에 그저 행복한 아침이었다. 


 안방은 나의 활동반경에서 점점 멀어졌다. 거실과 아기 방에 제일 많이 생활하고, 주방에서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짧은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서재에서 글을 썼다. 킹사이즈 침대 하나 덜렁 놓여있는 안방에는 갈 일이 없었다. 종종 남편과 함께 침대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지만 침구 정리나 빨래 등에는 신경을 거의 못 썼다. 이제 안방이 남편의 공간으로 느껴졌고, 아기와 달리 남편은 나의 관리가 전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안일을 감지하는 레이더에서 안방이 제외된 것이다. 


 남편은 가끔 베개를 들고 아기와 내가 있는 방으로 들어와 함께 잠을 잤지만 바닥 생활이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 잠을 설치는 듯했다. 남편은 익살스러운 목소리로 "외로워~"하고 울부짖었고 나는 "혼자 편하게 잘 자면서~"라고 응수했다. 안방의 이름은 '독수공방'으로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잠옷과 침구에서 명백한 홀아비 냄새가 나 한참을 웃었는데 남편에게는 마냥 웃긴 일만은 아닌 '웃픈' 일인 모양이었다. 남편은 비교적(실은 나보다도) 깔끔한 사람이고 술, 담배도 안 해서 워낙 체취가 없는 편인데 몇 달간 독수공방의 외로움은 이토록 무서운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독감을 앓으면서 안방은 더 철저히 분리되었다. 냉정하지만 수건을 따로 쓰고 스킨십도 자제하게 했다. 예방접종을 하라고 그렇게 잔소리했건만 피하고 피하다가 결국 독감을 얻어온 죄인인 남편은 내 지시에 군말 없이 따랐지만 외로움이 극에 달한 눈치였다. 격리기간으로 설정한 5일이 끝난 날, 남편은 나를 껴안으며 외로웠다고 울부짖었다. 그리고는 "자기는 보석이랑 자니까 좋지?"라고 묻는데 차마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안방이 춥다고 둘러대고, 봄부터 안방으로 복귀하겠노라고 약속했다.


 봄에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아기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언제까지나 같이 잘 수는 없다. 부부 관계가 멀어질 정도로 자녀를 우선하거나, 엄마와 아들이 지나치게 밀착한 가족의 모습이 되고 싶지는 않다. 돌도 안 된 아기를 두고 벌써 그런 걱정인가 싶지만 이러한 가족 구도는 당사자들 모르게 수년에 걸쳐 서서히 만들어지는 법이니 조심해야 한다. 


 염려에 거창한 주석을 달아봤지만 실은 나를 찾는 아들과 남편 사이의 어디쯤 머무르는 게 좋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말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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